[인터뷰] 중국정부의 파룬궁 박해 피해서 한국 온 유학생 노회진 군

애나 조
2019년 07월 20일 오후 1:47 업데이트: 2024년 01월 16일 오후 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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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부터 철들 때까지 삶의 대부분을 중국 공산당의 박해 속에서 자랐어요. 그래도 원망하는 마음은 없습니다.”

중국인 유학생 노회진(盧懷眞·25, 중국명 루화이쩐)군은 2016년 한국으로 건너와 서울의 한 대학에서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평범한 유학생에 다소 내성적인 그의 모습만 봐서는 어려서부터 박해에 시달린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

“친구들과 다툼이 생기면 우선 내게 어떤 원인이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남의 흠집만 보기보다는 내 부족한 점을 찾아서 고쳐나가려고 해요. 친구들과 교우관계가 더 좋아지는 것 같아요.”

회진 군은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한다. 한창 즐거운 것을 찾아다닐 20대인 그가 명상수련법에 푹 빠졌다는 사실이 다소 의외지만 그는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따라 자연스럽게 수련하게 됐다고 말했다.

명상수련 혹은 기 수련은 중국에서는 생활체육에 가깝다.

교사였던 어머니는 질병으로 휴직하는 사이 친척의 권유로 파룬궁을 수련하게 됐다. 1997년 중국에서 파룬궁의 인기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다.

수련이 효과가 있었는지, 건강을 회복한 어머니는 이듬해 다시 교단에 설 수 있었다.

제2의 삶을 살게 된 어머니는 달라졌다. 집에서나 학교에서 항상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가족이나 학생, 동료교사들에게도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했다.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파룬궁의 가르침이 원동력이 됐다.

그런 어머니를 본 아버지도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아버지가 파룬궁 책 ‘전법륜’을 읽더니 곧 담배를 끊으셨어요. 아버지 스스로도 신기하게 여기셨죠.”

화목하던 가정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건 1999년 7월 20일 중국 정부가 파룬궁 탄압을 공식화하면서부터다.

아버지는 정부의 탄압이 잘못됐다며 베이징으로 향했다. 톈안먼 광장에 가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정부의 공정한 조사를 청원하기 위해서였다. 중국에서 법으로 보장하는 신문고 제도인 ‘상방(上訪)’의 한 형태였다.

당시 적잖은 파룬궁 수련자들은 “정부가 우리를 오해하고 있다. 톈안먼에 가서 호소하면 최소한 어찌 된 일인지 알아봐 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베이징에 간 아버지는 톈안먼 광장에 가서 연공을 시작하자마자 공안에 붙들려 고향으로 돌려보내져 15일간 갇혔다가 풀려났다. 그 후 중국 정부가 탄압수위를 높여가면서 사회 분위기도 어두워져 갔다.

“설 연휴 지나고 나서 사람들이 모여 전법륜을 읽고 있는데 경찰이 들이닥쳤습니다. 부모님과 나 그리고 형까지 가족 모두가 체포돼 노동교양소로 보내졌습니다.”

노동교양소는 강제노역을 당하며 노동을 통해 사상을 재교육받는 시설. 당시 중국의 수많은 파룬궁 수련자들이 노동교양소에 끌려가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혹사당했다.

다행히 회진 군 가족은 3일 만에 풀려났지만 이후 당국으로부터 수시로 감시를 받는 불안한 생활이 시작됐다.

아버지는 다시 청원을 시도하다가 결국 노동교양 2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됐고, 어머니도 파룬궁 모임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노동교양 2년형을 선고받았다.

그 사이 경찰은 툭하면 회진 군의 집에 들이닥쳐 가택수색을 했다. 허락도 없이 막무가내로 집에 들어온 경찰은 수색을 빙자로 값나가는 물건을 집어갔다. 강도나 다름없었다.

“어릴 적 부모님과 자주 헤어져야 했어요. 친척들은 공안당국의 눈치를 보느라 나를 외면했습니다. 버림받았다는 사실에 점차 내성적으로 돼 갔어요. 상처받는 게 무서워 사람들과 대면을 꺼리게 됐고요.”

그럼에도 회진 군과 가족이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지 않는 건 진선인에 따르는 삶이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신앙의 자유는 중국에서도 법으로 보장하는 권리다. 파룬궁 수련 역시 중국법에 위반되지 않는다.

잘못을 범하는 정부에 바른 말 하는 것도 회진 군과 가족들이 생각하는 ‘수련자로서 해야할 일’이다. 물론 그 방식은 평화롭고 선량해야 한다. 다만, 강제적인 의무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의 결과다.

그런 그가 한국 유학을 택한 건 자유로운 수련환경을 찾아서다.

어머니는 “옆집에 사는 이웃이 한국에 가보니 한국에도 파룬궁 수련생이 있다더라”며 회진 군에게 한국행을 권했다. 자녀가 더 나은 환경에서 자라게 해주고 싶은 부모마음은 누구나 똑같았던 것.

노 군에게 한국은 ‘신앙의 자유’를 느끼게 해준 국가다. | The Epoch Times

올해로 한국생활 3년째인 회진 군은 매일 아침 서울 종로 종묘공원에 나가 파룬궁을 수련한다. 공원에서 느릿한 동작을 하다가 조용히 서 있기도 하는 그의 모습이 이채롭긴 하지만, 한국인에게 특별한 사건은 아니다.

그러나 잡혀갈 걱정 없이 마음껏 수련할 수 있는 환경이 회전 군에게는 15년여만에 주어진 소중한 자유임을, 거리를 오가는 행인들은 쉽사리 체감하기 어려울 일이다.

회진 군은 아직 탄압 속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는 중국의 다른 수련자들에게 마음의 빚을 느낀다. 그가 휴일이나 여가시간에 거리에서 파룬궁 탄압을 알리는 홍보물을 나눠주는 이유다.

“중국에서는 박해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많은 어린이가 저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하루라도 박해를 빨리 끝내기 위해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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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7월 20일 중국 공산당이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시작한 이후 수련자들은 폭력이 아닌 평화로운 방식으로 박해에 대응해왔다. 최소 수천 명이 죽고 수십만 명이 투옥되는 시련 속에서도 수련자들은 여전히 진실·선량·인내의 가치를 따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