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돼지고기 가격 10주 연속 하락… 양돈 농가·업계 위기감
중국 상하이의 한 수퍼마켓 내부 돼지고기 코너 | 연합뉴스 가격 폭락·부채 압박·전염병 확산까지 “4년 만의 최악 상황”
도매가 10주 연속 하락… 1㎏에 2천 원대 할인 행사도
“정부가 ‘돼지고기 안보’ 이유로 공급과잉 초래…지금은 강제 감축”
중국의 돼지고기 산업이 ‘삼중고’에 처하면서 양돈업계 위기감이 짙어지고 있다. 올해 하반기 들어 돼지고기 가격이 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고, 수십조 위안의 부채를 짊어진 대형 양돈 기업들이 잇따라 자금난에 몰렸다.
여기에 아프리카돼지열병(ASF)과 ‘게타 바이러스(GETV)’ 등 전염병 확산까지 겹치면서 업계 전반이 생존 기로에 서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대기업 중심으로 유통시장을 재편해 가격 통제력을 강화하려는 것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세계 최대 돼지고기 생산국이자 소비국인 중국에서 돼지고기 가격은 정권 안정과 직결된 사안이라는 이야기까지 나돌기 때문이다.
중국 농업농촌부에 따르면 지난 21일 기준 전국 도매시장의 돼지고기 평균 가격은 1㎏당 17.7위안(약 3580원)으로 10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이는 지난해 8월 1㎏당 30.33위안에 비하면 40% 이상 떨어진 가격이다.
베이징 퉁저우의 한 대형마트에서는 1근(0.5㎏)당 7위안(약 1300원)짜리 돼지고기까지 등장했다. 업체 측은 “5근 이상 구매하면 1근에 7위안으로 할인 판매하는 행사가 진행 중”이라며 “도매가 수준”이라고 밝혔다.
유통업체의 초저가 경쟁은 생산 농가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허베이성의 한 양돈 농가 관계자는 “가격 경쟁이 붙으면서 표준 체중 돼지(출하돈) 매입가격이 1근당 5위안대로 떨어졌다”며 “팔수록 손해”라고 말했다.
시장조사업체 ‘줘촹’ 정보의 분석가는 “올해 들어 돼지고기 가격은 완만한 하락에서 급락 단계로 전환됐다”며 “2019년 ASF 사태 이후 최저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농업농촌부 통계에서도 10월 첫째 주 새끼돼지 가격이 전주 대비 3.6%, 전년 대비 26.6% 급락했다.
양돈업계 내부에서는 “대기업도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말이 나온다. 허베이의 양돈업체 관계자 런(任)모씨는 “부채 상환 압력을 받고 있는 대기업들이 가격을 낮춰서라도 재고를 빨리 처분해 현금화에 나서고 있다”며 “이자 비용이 감당 능력을 넘었다”고 했다.
양돈업계 조사기관 ‘주창둥리왕’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22개 상장 양돈 기업의 총부채는 3720억 위안(약 74조 9000억 원)으로 상당수 기업은 부채 비율이 70%를 넘었다. 정부 보조금 축소와 대출 규제도 기업의 유동성을 악화하는 요소다.
런 씨는 “지금 가격이라면 앞으로 3개월 동안 150만~200만 마리의 모돈(번식용 암퇘지)이 감축될 것”이라며 “연쇄 도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일부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가격 폭락이 단순한 시장 반응이 아니라 정부의 의도적 구조조정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허난성의 한 돼지고기 수매 업체 관계자 왕(王) 씨는 “9월 중순 정부가 25개 대형 양돈 기업을 불러 ‘모돈 감축 목표’를 제출하라고 지시했다”며 “감산에 응하지 않은 기업들은 ‘가격 압박’을 받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는 “정부가 일부러 가격을 떨어뜨려, 경쟁력이 약한 기업을 퇴출시켜 대기업 중심으로 산업 구조를 재편하려는 것”이라며 “몇몇 대기업이 전국 돼지고기 유통시장을 장악하면 가격 통제도 강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린성의 양돈 업자 가오(高) 씨는 “매일 손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며 “축사에 돼지는 너무 많다. 일반적으로 가을철에는 돼지고기 소비가 늘어나는데 올해는 오히려 소비가 줄었다”고 말했다.
가축 전염병도 소비 위축에 한몫
가격·부채 위기에 더해 돼지 전염병이 다시 확산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라 둔화된 상태로 지역 농가에 잠복해 있다”며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다시 급격히 퍼져 순식간에 전멸 수준의 피해를 일으킨다”고 말했다.
여름·가을철 모기 등을 매개로 번식하는 ‘게타 바이러스’ 확산도 심각하다. 9월 이후 광둥·푸젠·장시·허난·쓰촨 등 주요 생산지에서는 게타 바이러스 감염이 확인됐으며, 일부 지역은 새끼 돼지 감염률이 90%를 넘었다.
광저우의 육가공업체 관계자는 “일부 지역에서 감염 의심 고기가 1근당 2위안(약 400원)에 유통되고 있다”며 “정보 습득이 빠른 젊은 사람들은 ‘너무 싸면 사지 말라’고들 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어두운 노년층이 싼 맛에 구매할 것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단순한 가격 조정이 아닌 구조적 침체의 징후로 본다. 돼지고기는 중국 소비자물가지수(CPI)에 직접 반영되는 핵심 품목이다. 공급 과잉과 소비 위축이 맞물리면 물가 하방 압력이 커져 경기 둔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
한 전문가는 “중국 정부는 2018년 아프리카돼지열병 이후 ‘돼지고기 안보’를 이유로 양돈 규모를 대거 확대했다. 2020년부터 3년간 모돈을 약 4400만 마리로 ASF 이전보다 20%이상 늘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경기 둔화와 소비 위축으로 내수 수요가 정체되면서 공급 과잉 상태가 지속됐다”며 “결국 공급 과잉은 중국 정부의 정책이 빚어낸 사태였지만, 정부는 공급 조정을 명령식으로 집행하면서 또다시 시장의 자율 조정 기능을 마비시켰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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