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크타임스

‘불통’ 행정에 좌절한 상하이 시민들, 공원·지하철서 “공산당 타도”

2025년 12월 23일 오후 5:52
2025년 12월 17일, 중국 상하이 시정부에서 '민원인의 날'로 정한 이날, 민원 접수가 거부된 시민들이 청사 인근 공원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자, 경찰이 출동해 해산시켰다. | 구궈핑 제공/편집 에포크타임스2025년 12월 17일, 중국 상하이 시정부에서 '민원인의 날'로 정한 이날, 민원 접수가 거부된 시민들이 청사 인근 공원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자, 경찰이 출동해 해산시켰다. | 구궈핑 제공/편집 에포크타임스

‘체제 전환’보다 생활 밀착형으로 변한 저항
행정구제·권리회복에 초점…정치 아닌 생계의 문제

중국의 ‘경제 수도’ 상하이에서 최근 공공청사와 도심 공원, 지하철 객차 등 서로 다른 공간에서 시민들의 항의 장면이 잇따라 포착되고 있다. 불공정한 행정 처리와 사법 판단을 문제 삼는 목소리가 공식 민원 창구를 벗어나 공공·일상 공간으로 옮겨가는 모습이다.

지난 17일 상하이 시정부 신방판공실(종합민원실)이 지정한 ‘민원인의 날’을 맞아 수십 명의 민원인이 청사 뒤편 인민공원에 모였다. 이들은 각자의 사연이 적힌 피켓과 민원 청구 서류를 들고 장기간 해결되지 않은 민원에 대한 조속한 조치를 요구했다.

현장에 있었다는 인권 활동가 구궈핑 전 상하이대 교수는 “사람들은 행정기관이나 법원의 결정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서류를 펼쳐 보이며 ‘불공정’을 외쳤다”며 “일부에서는 ‘정부 타도’, ‘공산당 타도’, ‘자유는 인민의 것’ 같은 구호도 나왔다”고 전했다.

구 전 교수에 따르면 고령자가 많았던 시위대는 경찰이 출동하면서 즉각 해산됐고, 경찰에 저항을 시도한 3명이 강제 연행됐다. 그가 촬영한 진압 당시 사진을 보면 수십 명의 경찰이 시위대를 에워싸고 푯말을 들지 못하도록 제지하는 장면이 담겼다.

시위에 참여했다는 추이모 씨는 자신과 어머니(95)가 경찰에 연행됐으며, 연행 당시 한 경찰관으로부터 “나중에 두들겨 맞을 것”이라는 위협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다만 고령의 나이 등이 감안돼 별다른 조사 없이 이날 오후 경찰서를 찾아온 거주지 관할 민원 책임자에게 인계돼 풀려났다고 밝혔다.

닷새 뒤인 22일에는 중국 소셜미디어 더우인(중국판 틱톡)에 상하이 지하철 7호선 객차 내부에서 촬영한 영상이 게시됐다. 영상에서 뒷모습만 드러난 고령의 여성은 “사법부 타도”, “공산당 타도”를 외치며 다른 객차로 이동했다.

중국 소셜미디어에는 게시물 작성 지역이 표시된다. 작성 지역이 상하이로 표시된 이 게시물에는 “이후 경찰관 두 명이 그녀를 체포하기 위해 지하철에 탑승했지만 찾지는 못했다”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현재 해당 영상은 삭제됐지만, 더우인 검색창에는 관련 검색어가 제시되고 있으며 이용자들의 재게시 요청도 이어지고 있다.

두 사건은 별개의 사례지만, 공원이나 지하철 등 공공 공간에서 이뤄진 개인들의 즉흥적 행위라는 공통점을 보인다. 공식 민원 창구를 통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공산당 타도’라는 외침이 일상 공간으로 확산하는 흐름으로도 읽힌다.

민원 창구 뒤 공원 집회는 집단적 움직임으로 나타나긴 했지만, ‘민원인의 날’을 맞아 그동안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민원이 접수되기를 기대한 이들이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집회였다. 지하철 사례는 조직이나 준비 없이 발생한 개인의 외침이었고, 영상 촬영 역시 우연히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청사 항의에도 해결 없었다… “공산당 타도”로 번진 불만

상하이에서 외쳐진 “공산당 타도” 구호는 처음부터 거리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항의의 출발점은 관공서였다. 올해 6월 상하이 징안구 주민 류둥바오(70)는 징안구 기율검사위원회(공직자윤리위원회)를 찾아가 청사 내부에서 “공산당 타도”를 외쳤다.

그에 따르면 사건의 발단은 2023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재개발 구역 정비 등을 명목으로 30여 명의 도시관리 요원들이 예고 없이 들이닥쳐 자택 주변에 놓여 있던 생활용품을 파손·압수했다는 것이다. 사전 통보를 받지 못한 그는 징안구청을 찾아가 책임 규명과 소지품 반환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후에는 구금 조치까지 당했다고 주장했다.

류 씨는 2025년 3월까지 모두 다섯 차례 구금됐다 풀려나면서도 민원 제기를 이어갔으나 공식적인 답변을 받지 못했다. 결국 그는 상급 기관인 베이징 중난하이 국무원 민원실에 직접 호소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다시 붙잡혔다.

그를 제지한 것은 상하이 시정부에서 파견한 이른바 ‘치안 유지’ 요원들이었다. 중국 지방정부들은 관할 지역 민원인들이 베이징 중앙정부로 상방(上訪)에 나서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별도의 인력을 운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과정에서 류 씨는 ‘소란 혐의’로 형사 구금됐다.

형사 구금은 정식 체포 이전 단계에서 피의자의 신체를 구속하는 중국의 형사사법 절차로, 법원의 영장 없이 공안 판단만으로 최대 14일간 구금할 수 있다. 사안에 따라 최장 37일까지 연장된다.

류 씨가 올해 6월 상하이 기율검사위원회를 찾아가 공개적으로 “공산당 타도”를 외친 데에는 이러한 이력이 배경이 됐다. 그는 “지방 당국자들은 ‘공산당 타도’ 구호 자체보다도 중앙정부를 찾아가 민원을 제기하는 행위를 더 두려워한다”며, 일선에서 가장 기피하는 것은 체제 비판이 아니라 자신들이 감수해야 할 불이익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민원인들은 강제 토지 수용과 철거, 법원의 부당한 판결이나 행정기관의 편파적 결정을 마주했을 때 제도적 구제 통로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호소해 왔다. 오히려 질서 파괴나 소란 행위 등으로 처벌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항의 방식은 특정 기관을 향한 청원에서 벗어나 공원이나 지하철 등 다중 이용시설로 옮겨가고 있다. 지방정부 주도의 아파트 개발에 투자하거나 관영 금융투자기관에 노후 자금을 맡겼다가 손해를 본 이들 역시 “공산당 타도”를 외치는 대열에 합류했다.

한 시사 유튜버는 “최근 중국 소셜미디어, 특히 더우인에서 정부나 최고 지도자를 겨냥한 비판 게시물이 심심찮게 발견된다”며 “그 대신 우마오당(인터넷 댓글부대·여론 감시원)의 활동은 눈에 띄게 줄었다”고 말했다.

상하이는 중국 내에서 생활 수준이 가장 높은 도시이자 법치와 행정 면에서 국제 기준에 가장 근접한 지역으로 평가된다. 그만큼 시민들의 의식 수준과 정부에 대한 기대치도 높은 편이다. 중국의 다른 지역에서는 실망으로 끝날 민원이 상하이에서는 ‘불공정’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이미 고령인 상하이 시민들이 외치는 “공산당 타도”는 급진적 정치 변화나 체제 전환을 요구하는 정치적 구호라기보다는, 행정·사법적 분쟁의 해결과 권익 회복을 요구하는 절박한 언어로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