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② 반공(反共)하려 만든 자매도시, 중공 통일전선 도구로 전락
중국공산당의 올가미, ‘자매도시’

미국이 다른 나라의 도시와 자매도시가 된 것은 1931년 오하이오주 톨레도와 스페인 톨레도가 처음이었다. 2차대전 이후 1947년에 영국 브리스톨과 독일 하노버가 전쟁의 상처를 보듬고 자매도시가 됐다. 이를 참고해서 미국에서 자매도시 프로그램이 본격화된 것은 1956년 9월, 당시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People-to-People Conference를 개최하고부터였다. 자유세계 도시 간 민간 교류를 통해 연대를 강화하고 공산주의의 확산을 견제하려는 외교 전략의 일환이었다.
이 회의에서 논의된 ‘자매도시’는 1924년 설립된 전국도시연맹(National League of Cities: NLC)의 한 프로그램으로 채택됐다. 이후 NLC가 나서서 1957년에 미국 시애틀과 일본 고베 간에 자매도시가 체결되도록 하는 등 참여 도시를 늘려 갔다.
1967년 NLC에서 자매도시 사업을 분리하여 이를 전담하는 비영리 법인 Sister Cities International(SCI)을 출범시켰다. 당초 문화예술, 스포츠, 교육, 청소년 교류가 주된 프로그램이었으나 지금은 무역과 투자 등으로 그 범위가 크게 확장됐다. 지금은 미국 내 500개 이상의 도시가 145개국과 약 2,000개의 자매도시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2023년 기준으로 미국과 중국의 자매도시 쌍은 234개, 자매주/성(province/state) 쌍은 50개로 집계됐다. 수도인 워싱턴은 베이징과, 뉴욕은 베이징·상하이와, 샌프란스시코는 상하이와, LA는 광저우와, 시카고는 상하이·선양과 자매도시이다. 미국 최초의 중국과 자매도시 결연은 1979년 미중 수교 직후에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와 중국 난징 사이에서 이루어졌고, 그 직후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와 상하이가 뒤를 이었다. 이들 두 도시가 중국 도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지 45년이 넘었다. 다른 도시들도 꽤 오랜 세월 중국과 밀접하게 ‘교류’해 왔다.
자매도시가 되면 외견상 전혀 해로울 게 없는 각종 교류를 시작한다. 서로 수출입도 하고 투자도 한다. 자매도시와 관련, 자유진영에서 간과하고 있는 것이 적어도 세 가지다.
첫째, 교류 주체가 자유진영은 지방자치단체이지만 중국은 지방정부다. 중국의 지방정부는 중국공산당의 일사불란한 지휘와 통제하에 움직이지만, 자유진영의 지자체는 자율성을 갖고 움직인다.
둘째, 자유진영은 우호와 협력을 위해 교류하지만 중국은 공작을 위해 교류한다.
셋째, 자유진영은 지자체의 지도부가 선거를 통해 주기적으로 교체되지만, 중국은 중국공산당이 70년이 넘게 1당독재를 고수하면서 대외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한다. 중국은 적어도 30년을 내다보고 장기적, 전략적으로 공작을 수행한다. 중국에서 자매도시 사업을 관장하는 것은 중국공산당 통일전선공작부 산하의 중국인민대외우호협회(CPAFFC)라는 이름을 가진 조직이다.
이들은 자매도시를 체결하면 상호 왕래하면서 각종 교류를 통해 상대 도시의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사회, 언론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우호적으로’ 누구든 만날 수 있다. 다양한 접촉을 통해 상대방의 욕구와 약점 등을 파악, 필요한 것을 제공하면서 ‘내 편’으로 만든다. 중국에 대한 우호적 여론을 조성하고, 정보를 수집하며, 중국공산당의 인권 탄압 등을 비판하는 사람을 고립시킨다. 자매도시를 미국 진출을 위한 거점으로 만든다. 지방의 여론을 장악하면 그것을 토대로 중앙, 즉 연방정부의 대중 정책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방의 유망한 정치인을 키워서 연방의회 의원으로 도약하도록 선거운동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한다. 친중 정치인을 중앙으로 진출시키는 것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리 멀지 않은 장래에 친중 미국 대통령을 배출할 수도 있다.
팡팡이 접근했던 인물 중에 주목해야 할 사람이 있다. 미국 민주당 소속 연방 하원의원 에릭 스왈웰이다. 1980년으로 45세에 불과한데 벌써 7선의 중진이고, 2019년에는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했었다. 팡팡과 스왈웰이 처음 만난 것은 2012년 10월이다. 당시 팡팡은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이스트 베이(CSU East Bay)에서 중국학생회 회장과 아시아태평양섬계 미국인 공공정책협회(APAPA) 캠퍼스 지부장을 맡고 있었고, 스왈웰은 캘리포니아 알라메다 카운티의 더블린시 시의회 의원이었다. 알라메다는 이미 2009년 중국 우시 관내의 장인(江阴)과 자매도시가 됐다.
스왈웰은 팡팡을 만나기 한 달 전인 2012년 9월에 연방 하원의원 선거 출마를 선언했고, 만난 후 11월에 32세의 나이로 당선되었다. 팡팡이 이 선거에 관여했는지 여부는 드러난 바가 없으나, 2014년 스왈웰의 재선 유세 당시에는 선거자금 모금 활동에 참가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2015년 스왈웰 의원 측에 팡팡에 대해 경고를 보냈고, 그 직후 팡팡은 갑자기 미국을 떠났다. 악시오스는 “중국공산당은 현재의 시장과 시의회 의원들이 미래에 주지사 및 연방의회 의원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평가했다.
팡팡은 주(駐)샌프란시스코 중국영사관과 비정상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는데, 당시 그녀가 만나던 또 하나의 중요한 인물이 바로 러셀 로우라는 중국계 미국인이다. 그는 1930년대에 미국으로 밀입국한 부모에게서 태어나 1960년대 후반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 들어갔다. 대학 시절부터 중국계 이민자들의 권익 신장을 위해 활동한 그는 이후 마오쩌둥에 경도된 단체CAA(Chinese for Affirmative Action)의 핵심 인물로 성장했다. CAA는 중국진보협회(Chinese Progressive Association), 자유의길(Freedom Road Socialist Organization: FRSO) 등 마오주의 단체들과 함께 샌프란시스코 중국인 사회를 친중으로 기울게 하고 미국 전역으로 좌파 이념과 조직을 확산시켰다.
그런 그가 1993년 샌프란시스코 시장 출신으로 당시 캘리포니아를 대표하는 상원의원이었던 다이앤 파인스타인의 보좌관이 되었다. 그는 2014년까지 무려 20여 년 간 파인스타인의 샌프란시스코 사무소장(Office Director)으로서 현지에서 그녀를 대리해 활동했다. 샌프란시스코 인구는 80만 명을 넘나드는데, 약 20%에 해당하는 16만여 명이 중국계이다. 이 지역 정치인들은 화교 사회와 우호적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다. 러셀 로우는 화교 사회를 좌우하는 인물이었다.
파인스타인은 1978년부터 1988년까지 10년 간 샌프란시스코 시장을 역임했고, 1992년에는 연방 상원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그녀는 2023년 90세를 일기로 사망할 때까지 무려 31년 간 상원의원으로 재직하면서 상원 정보위원장 등 요직을 섭력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게 있다. 파인스타인은 샌프란시스코 시장으로 당선된 이듬해, 즉 1979년 상하이와 자매도시를 체결했다. 공식적으로는 세인트루이스와 난징이 미국과 중국 간 최초의 자매도시지만, 샌프란시스코는 자기들이 최초라고 주장한다.
당시 상하이 시장은 장쩌민이었다. 그는 1989년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되어 2003년 후진타오에게 그 자리를 물려줄 때까지 무려 15년 간 중국을 지배했다. 후진타오 총서기 재임 10년 동안에도 장쩌민은 상왕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파인스타인은 1979년에 자매도시 시장으로서 처음 만난 장쩌민과의 교류를 더욱 긴밀하게 이어갔다. 한 사람은 미국 정가에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상원의원이 됐고, 다른 한 사람은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됐다. 자매도시로 시작된 이 둘의 ‘우정’은 세계사적인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미국의 친중화에 파인스타인이 지대한 기여를 했다. 1995년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 시절에는 중국측에 무역 특권을 주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파인스타인은 중국을 왕래하면서 중국공산당 거물들과 만날 때마다 남편 리처드 블룸과 동행했다. 블룸은 중국에 투자해서 엄청난 돈을 벌었다. 그의 재산은 2019년 당시 환율로 무려 1조1천800억원(10억 달러)이었다. 파인스타인 본인도 당시 연봉이 약 2억원(174,000 달러)이었는데, 재산은 약 700억원(5,850만 달러)에 달했다. 그녀와 남편의 재산 축적에 중국공산당과의 ‘우정’이 어떤 역할을 했을까?
러셀 로우는 2014년에 파인스타인의 사무실을 떠났다. 그 전해에 FBI가 파인스타인에게 로우와 중국공산당과의 연계 가능성에 대해 경고했기 때문이다. FBI는 그 5년 전에도 파인스타인에게 “참모가 중국 간첩이라는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음”을 알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인스타인은 그를 5년이나 더 데리고 있었다. 2018년 8월에야 미국 언론이 파인스타인의 상원 정보위원장 재직 시절을 포함해서 20년 간 중국공산당 간첩이 그 의원실에서 일했다고 뒤늦게 보도했다.
로우는 이후에도 지금까지 CAA와 계속 관계를 갖고 중국공산당을 위해 일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위안부’ 문제에 관심이 많다. 2017년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사회정의교육재단(Education for Social Justice Foundation)을 만들었다. 그 단체 홈페이지 첫 화면에 스스로의 사명(mission)을 “역사의 변두리로 밀려난 과거의 불의에 대해 교육을 제공(provides education on past injustices relegated to the sidelines of history)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단체는 조선인 위안부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로우는 2017년 10월에 한겨레신문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 위안부 문제에 대해 강연도 했다. 윤미향 전 의원 측과도 긴밀하게 왕래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행되고 있는 세계 각지의 불의에 대해, 특히 탈북여성들이 중국에서 겪고 있는 고초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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