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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中 영향력 차단 ‘외국 대리인 등록제’ 조속 시행 촉구

2025년 12월 09일 오후 3:08
캐나다 토론토에 위치한 중국 공산당 해외 비밀 경찰서 3곳 중 한 곳으로 지목된 편의점 | AP/연합캐나다 토론토에 위치한 중국 공산당 해외 비밀 경찰서 3곳 중 한 곳으로 지목된 편의점 | AP/연합

법안 통과 1년 지났지만 등록기관 출범은 여전히 미정
미·영·호주·러시아 이미 시행…한국은 입법 논의 단계 머물러
쿠퍼 의원 “외교·경제 이유로 안보 방치, 민주주의 신뢰 흔들”

캐나다 정치권에서 중국 공산당(중공)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국 내 협력 세력에 대한 규제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연방의회(하원) 절차·운영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이자 보수당 중진인 마이클 쿠퍼 의원은 지난달 25일 글로벌 위성방송 NTD와의 인터뷰에서 중공의 국경을 뛰어넘는 언론자유 탄압에 관해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진단했다.

쿠퍼 의원은 “캐나다 정부가 베이징의 개입에 맞서기 위해 반드시 활용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수단 가운데 하나는 외국 대리인 등록제의 도입”이라며 “법까지 만들어 놓고 등록소 출범을 계속 미루는 것은 더 이상 용납하기 어렵다”고 정부 당국의 행동을 촉구했다.

캐나다 연방의회는 지난해 6월 ‘외국 간섭 대응법(C-70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외국 영향력 투명성과 책임성법(FITAA)’을 포함했는데, 이를 통해 캐나다 정부에 외국 대리인 등록제를 도입하도록 명시했다.

외국 대리인 등록제는 외국 정부나 그 대리인과 계약을 맺고 캐나다의 정치·행정 과정에 영향을 주려는 개인 및 단체에 대해 등록하고 활동과 인원, 자금 내역을 정기적으로 보고하도록 하는 제도다. 해당 정보에 관한 공유와 위반 시 형사처벌 체계도 대폭 강화했다.

이 법은 지난 2022~2023년 중공의 선거 개입 의혹과 캐나다인 협박 사건이 연달아 불거진 일이 배경이 됐다. 캐나다 보안정보국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중공은 연방 총선 과정에 개입하고 중국계 커뮤니티 영향력이 큰 지역에서 특정 후보 낙선 운동을 전개하거나 친중공 성향 인사를 지원한 정황이 드러났다.

또한 중공 외교관이 캐나다에 체류하고 있는 중국계 반체제 인사의 중국 거주 가족을 협박하는 등 ‘국경을 뛰어넘는 탄압’을 가한 사실이 폭로됐다. 여기에 중국계 커뮤니티를 통한 여론전과 비밀 경찰 거점 의혹까지 더해져 정치권과 사회 전반에 강한 충격을 줬다.

이런 사태는 “캐나다가 외국 국가의 영향력 공작에 사실상 무방비 상태”라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미국·호주·영국은 이미 외국 대리인 등록제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 비교되며, 제도적 공백에 대한 문제 제기가 본격화됐다.

그 결과 당시 저스틴 트뤼도 총리가 이끌던 진보 성향의 자유당 정부는 외국 영향력 투명화, 정보기관 권한 강화, 외국 대리인 등록제 도입을 한 묶음으로 처리하는 ‘C-70 법안’을 마련해 2024년 의회를 통과시켰다. 막연한 위협이 아닌 중공의 침투를 실제로 겪고 난 후 추진된 입법이었다.

마리-조제 호그 판사가 2024년 5월 3일 오타와에서 연방 선거 과정과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외국의 개입에 관한 공개 조사 후 중간 보고서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 The Canadian Press/Adrian Wyld

캐나다, 中 선거 개입 논란 후 ‘외국 간섭 대응법’ 입법 급물살

하지만 ‘외국 영향력 투명성법’은 법률 공포 후에도 “추후 국무회의 명령으로 시행일을 정한다”는 조항만 남겨 둔 채 등록소(외국 대리인 등록기관) 출범이 계속 늦춰졌다. 관할 부서인 캐나다 공공안전부에 따르면, 세부적인 제도 설계와 전담 공무원 임명, 전산 시스템 구축 등이 진행 중이다.

쿠퍼 의원은 이 법의 시행이 지나치게 지연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는 처음에 ‘1년이면 준비가 끝난다’며 올해 6월 출범을 이야기했다가 이어 9월로 연기했다. 현재는 이미 연말”이라며 “중국의 선거 개입과 협박, 이민자 커뮤니티에 대한 압박이 이미 드러난 상황에서, 외국 대리인 등록제를 일부러 늦추는 것처럼 비칠 정도”라고 지적했다.

캐나다 의회의 촉구에도 캐나다 정부가 주저하는 이유로는 중공과의 외교·경제 문제가 꼽힌다. 그러나 선거제도라는 국가 핵심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것을 막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쿠퍼 의원은 강조했다.

그는 앞서 6월 의회 토론회에서도 “캐나다 정부는 중국의 정보전에 대응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며 “외교·경제 관계를 이유로 외국 간섭 문제를 덮어두거나, 초국가적 탄압을 애써 축소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외국 대리인 등록제는 최소한의 ‘투명성 장치’일 뿐”이라며 “이조차 제때 가동하지 못한다면 캐나다 민주주의의 신뢰를 스스로 깎아 먹는 셈”이라고 했다.

각국 외국대리인등록법, 어디까지 와 있나…미국 앞섰지만 호주 ‘가장 강력’

외국대리인등록법은 겉으로는 외국과 무관한 개인 혹은 단체(기업)를 내세우면서, 뒤로는 외국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세력을 ‘투명화’시키는 법이다. 이 세력들의 정체를 드러내고 활동 비용(연례 보고서 제출)을 증가시킴으로써, 위법 행위를 방지하고 스스로 위축되도록 고안됐다.

선두는 미국이다. 미국은 1938년 제정된 ‘외국대리인등록법’(FARA)을 통해 자국민을 위장한 외국 세력을 견제했다. 냉전 종식 후 이 법은 수십 년간 적용되지 않아 사문화됐지만, 2017년 이후 트럼프–러시아 스캔들 등을 계기로 민주당 측에서 되살려냈다. 아이러니하게도 2019년 이후에는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 측에서 법안을 개정하고 하위 규칙을 추가하며 미국에 침투한 중공 대리인들을 폭로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호주는 2018년 ‘외국 영향력 투명성 제도법’(FITS)을 시행했다. 외국 주체를 위해 연방 차원의 정치·정부 영향 활동을 수행하는 개인·단체에 등록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공공 등록부 형태로 공개한다. 등록 의무를 위반할 경우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이 법(호주 FITSA)은 교수·학계, 언론, 싱크탱크 등도 일정 조건하에 등록하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미국(FARA)은 로비·대정부 활동·정치 컨설팅·홍보(PR) 등 정치적 활동에 초점을 맞춘 반면, 호주는 정책이나 여론에 영향을 주는 활동 전반을 포괄하도록 했다.

호주에서는 원칙적으로 외국 정부 예산으로 정책 보고서를 작성하는 교수, 외국 국영기업 요청으로 세미나를 개최해 여론에 영향을 주는 싱크탱크, 외국 대사관 요청을 받아 기고하거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언론인 등이 모두 이 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미국에서는 FARA법에 등록된 대상은 외국 정부의 직접적인 지시를 받고 활동하는 로비스트나 PR 대행사, 중국 자본이 대거 투입된 언론사 등 외국 대리인 성격이 명확한 조직들이 대부분이지만, 호주는 특정 직업과 관련 없이 ‘어떤 활동을 하느냐’를 기준으로 삼았다. 훨씬 강력한 투명성을 요구했다고 풀이된다. 다만, 호주 정부는 민간 분야의 과도한 위축에 대한 사회적 우려를 받아들여, 순수 학술·언론 활동에 대한 제한을 완화해서 시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은 2023년 ‘국가안보법’(NSA)에 ‘외국 영향력 등록제’(FIRS)를 포함시켰고, 올해 7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 제도는 정치적 영향 활동을 중심으로 한 일반 등록 계층과, 러시아·이란 등 ‘고위험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강화된 등록 계층’(Enhanced Tier)으로 이원화돼 있다. 고위험 계층에 속한 국가를 위해 정치 영향 활동을 하면서 등록하지 않으면 최대 징역 5년까지 처벌될 수 있다.

캐나다의 ‘외국 영향력 투명성법’은 미국과 호주, 영국 법안을 모두 참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 정부·정당·국가기관·관변 단체 등과 일정한 계약이나 합의를 맺고, 캐나다 내 정치·행정 과정에 영향을 주는 활동을 하는 경우 등록 의무를 부과하고, 이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핵심이다. 다만, 법안은 통과됐지만 실제 등록제 시행은 아직 ‘준비 중’ 단계로 남아 있어, 쿠퍼 의원 등 보수당과 일부 전문가들은 “입법과 집행 사이에 공백이 길어지고 있다”고 우려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영미권 국가들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한국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지난해 7월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와 중공도 유사한 법제를 갖고 있다.

러시아는 2013년 ‘외국대리인법’(FAL)을 제정해 외국 자금을 받는 비정부기구(NGO)와 개인을 외국 대리인으로 등록해 이들의 활동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중공은 2017년 ‘해외비정부기구활동관리법’을 시행해, 중국에서 활동하려는 모든 해외 NGO에 반드시 대표기관을 설립하고 공안부서에 등록하도록 했다.

중국의 비밀 경찰서 의혹이 제기된 서울 송파구의 중식당 ‘동방명주’의 모습. 현재는 문을 닫았다. | 에포크타임스

한국, 2022년 중국 비밀경찰서 의혹으로 시작…법 제정은 아직

한국에서도 최근 몇 년 사이 북한·중국 등 주변국의 여론전과 온라인 공작 우려가 커지면서, ‘한국형 외국대리인등록법’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2월 ‘월간중앙’은 2022년 불거진 ‘중공 해외 비밀경찰서’ 국내 거점 의혹을 받은 서울의 중식당 ‘동방명주’ 대표와 아내에 관한 재판 소식을 전하며 외국대리인등록법의 필요성을 심층적으로 다뤘다.

당시 검찰은 동방명주 대표와 아내에 관해 식품위생법과 여신전문금융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현행 간첩법(형법 제98조)은 처벌 대상과 관련해 ‘적국’을 북한으로만 한정하고 있어 북한 이외 나라의 간첩 활동을 법적으로 막을 방법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었다. 이에 간첩법 개정과 함께 안보 공백 최소화를 위해 ‘한국형 외국대리인등록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2024년 미국외교협회 선임 연구원인 한국계 미국인 수미 테리가 미국 정부에 외국 정부 대리인으로 등록하지 않고 한국 정부를 위해 일했다가 FARA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건과 관련, 국내 법조계 학자의 기고문을 통해 “한국판 외국대리인등록법”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같은 해 7월 전했다.

국회에서도 관련 발의가 이어지고 있다. 2023년 국민의힘 최재형 의원이 중공 해외 불법 경찰서 운영과 관련해 ‘한국판 외국대리인등록법’을 국내 최초로 발의했으나 국회 회기 종료로 자동 폐기됐다. 당시에는 진보, 보수 진영을 떠나 이 법의 필요성에 관한 공론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유사한 법안은 22대 국회에서도 다시 발의됐다. 지난해 7월 국민의힘 최수진 의원이 ‘외국대리인 등록에 관한 법률안’(의안번호 2202367)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은 외국 대리인이 법무부 등록 없이 활동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최 의원은 미국, 호주, 싱가포르에도 유사 법안이 있다며 “세계적 추세”라고 밝혔다.

같은 달에는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간첩죄 적용 대상을 ‘적국’에서 ‘외국’으로 확대하는 형법 개정안(의안번호 2202166)을 국회에 제출했다. 해당 법안은 박 의원의 정보위원회 비공개 회의 브리핑을 인용한 일부 언론 보도를 통해 ‘외국대리인등록법’ 성격의 입법으로 소개됐으나, 실제 조문에는 외국 대리인 등록이나 공개 의무에 관한 규정은 포함돼 있지 않다.

이 개정안은 ‘적국’이 아닌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를 위해 국가기밀을 탐지·수집·중개하거나 이를 방조한 행위를 처벌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정책이나 외교 관계에 영향력을 행사한 행위에 대한 처벌도 규정했지만, 이때는 그 행위의 목적이 ‘외국을 위해’가 아닌 ‘적국을 위해’로 한정했다. 즉, 개정안은 국내 개인 혹은 단체가 외국 대리인으로 활동할 경우 이를 등록해 활동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하지는 않았다. 형법 체계에 따른 처벌 규정에 국한했다.

한편, 9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간첩법(형법 98조) 개정안’은 지난 3일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해 본회의 처리만을 남겨 두고 있다. 비슷한 시기 발의된 ‘외국대리인 등록에 관한 법률안’은 아직 국회 소위원회 심사 단계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