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유럽, 내연기관 규제 완화로 전환…전기차 ‘올인’ 中 전략 시험대에
2023년 9월 11일 중국 장쑤성 쑤저우항 타이창항 국제 컨테이너 터미널에서 선적을 기다리는 BYD 전기차들이 쌓여 있다. | AFP/연합뉴스 중국, 글로벌 시장 내연기관 경쟁 열세 속 전기차에 ‘자원 집중’ 전략적 베팅
유럽은 전기차 전환 속도 조절, 미국은 기후변화 서사 비판…시장 환경 변화
중국 내수시장에선 전기차 업계 200곳 난립…해외 시장 막히면 ‘생존 게임’
글로벌 자동차 정책 기조가 전환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전기차가 비용, 에너지, 공급망 안전성 측면에서 한계를 드러내자 미국과 유럽이 전동화 일변도 정책을 재검토하는 분위기다.
유럽연합(EU)은 2035년 내연기관차 전면 금지 계획을 사실상 완화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시작했고, 미국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차 생산 조정에 나섰다. 반면 중국은 장기간 전기차에 정책·재정을 집중해 온 만큼 글로벌 정책 기조 변화가 산업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16일(현지시간) 2035년 신차 이산화탄소 배출 기준과 관련해 기존의 ‘100% 감축’ 목표를 ‘90% 감축’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로 했다. 이는 순수 전기차 외에도 감축 요건을 충족하는 일부 차량의 판매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내연기관차 전면 금지 기조를 완화하는 조치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내연기관 생태계는 ‘사실상 생존권’을 확보하게 됐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는 물론 감축 요건을 충족하는 내연기관차도 2035년 이후 시장에 남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EU 내 최대 정치 세력인 유럽국민당(EPP)의 만프레드 베버 대표는 “내연기관 금지 조치는 사실상 무력화됐다”고 평가했다.
이번 정책 조정은 중도우파 정치권과 자동차 산업계가 수개월간 로비를 펼친 결과다. 중국 전기차의 가격 공세, 미국의 통상 압박, 유럽 자동차 시장의 침체 등 현실적 요인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다만 이번 조정은 규제의 완전 철회라기보다는 기존 목표를 현실화하는 성격이 강하다. 최종 확정까지는 EU 회원국과 유럽의회의 입법 절차를 거쳐야 한다. 입법으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2035년부터 사실상 ‘무공해’ 신차만 판매하도록 한 규정이 적용된다.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달 초 바이든 행정부 시절 강화된 기업 평균연비(CAFE) 기준을 재설정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당 규제가 차량 가격 상승과 소비자 선택권 축소를 초래했다고 비판하며, 백악관은 새 정책으로 미국 가계가 총 1090억 달러(161조4000억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포드, 스텔란티스, 제너럴모터스(GM) 등 미국 주요 완성차 업체들은 정책 조정에 지지를 표명했다. 포드는 15일 195억 달러(약 28조9000억원) 규모의 자산 손상차손을 반영하고 일부 전기차 모델 생산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정책 환경 변화와 함께 전기차 수요 둔화에 대응한 조치로 해석된다.
미국에서 활동 중인 경제학자 데이비 웡은 “서방의 정책 선회는 환경 보호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후 변화 서사가 지나치게 정치화됐는지 재점검하는 과정”이라고 분석했다. 학계 일각에서는 기후 위기가 전기차와 친환경 에너지 보조금 확대의 명분으로 활용되며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높은 가격, 부족한 인프라…전기차의 현실적 제약
전기차 전환의 한계는 특히 상용차 부문에서 뚜렷하다. 영국 가디언은 유럽자동차제조협회(ACEA) 자료를 인용해 40톤급 전기트럭 가격은 약 30만 유로(약 5억2000만원)로 디젤 트럭의 두 배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ACEA 상용차 위원회에 따르면 유럽 전역의 대형 트럭용 공공 충전소는 약 1500곳에 불과하지만, 업계가 추산하는 필요 물량은 20배가 넘는 3만5000곳에 달한다.
EU는 2030년까지 전기 상용차 비중을 43%까지 끌어올리고, 2035년 65%, 2040년 90%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신규 등록 대형 트럭 중 충전식 전기트럭 비중은 2% 미만이다. ACEA는 현 추세가 지속될 경우 2030년 이후 탄소 배출 목표 미달로 업계 전체가 연간 약 20억 유로(약 3조5000억원)의 벌금을 부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승용차와는 다른 상용차 사용 환경도 고려 대상이다. 전기차 기술이 발전하고 있지만 주행거리, 충전 속도, 혹한기 성능 저하 등 구조적 문제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정책이 기술 발전을 촉진하기도 하지만, 기술이 성숙하기 전에 행정력으로 전환을 앞당기면 자원 낭비가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소비자 선택 다변화…전기차 이행 vs 내연기관차 회귀
전기차 전환은 특히 승용차 부문에서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라는 인식도 있지만, 실제로 소비자들의 선택은 다양해지고 있다.
영국 회계법인 EY가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자동차 구매자의 50%가 향후 24개월 내 내연기관 차량 구매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 대비 13%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반면 순수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차량에 대한 선호도는 각각 14%포인트, 16%포인트 하락했다.
다만 전기차의 비용 구조가 장기적으로 개선되고 있어 일부 소비자들의 전기차 전환 역시 꾸준히 이어질 전망이다. 블룸버그의 청정에너지·탄소시장 전문 분석기관인 블룸버그NEF에 따르면 2025년 기준 리튬이온 배터리 팩 평균 가격은 kWh당 108달러 수준까지 떨어졌다. 전기차 원가가 낮아질 수 있다는 신호다.
유럽연합도 부족한 인프라 확충에 힘을 쓰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유럽의 공공 충전기 수는 100만 기를 넘어섰고, 전년 대비 증가율도 35%를 웃돌았다. 유럽연합은 대체연료 인프라 규정(AFIR)을 통해 주요 간선 도로망에 급속 충전기 설치를 의무화하며 전기차 전환을 지원하고 있다.
전기차 산업, 정부 지원에 고속 성장
미·유럽의 정책 조정은 중국 전기차 산업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은 내연기관 차량의 핵심 기술인 엔진·변속기 분야에서 경쟁력이 부족해 해외 시장 공략에 실패해 왔다. 이에 중국 공산당은 대규모 보조금 정책으로 전기차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했고, 단기간에 200개 이상의 완성차 업체를 양산했다.
싼 전기요금도 중국 전기차 내수시장을 견인했다. 중국에서 휘발유·경유 가격은 경제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게 관리돼 왔다. 반면 전기요금은 산업용과 가계용 모두 정책적으로 낮게 억제됐다. 전기차의 주행 비용이 내연기관차에 비해 압도적으로 저렴해 보조금 축소 이후에도 주요 구매 요인으로 작용했다.
지방정부도 지원 사격에 나섰다. 각 지역에서는 표준 규격 준수보다는 속도와 접근성(양) 중심으로 충전 시설을 대량 구축하면서 전기차 구매를 고려하는 소비자들이 흔히 겪는 ‘충전 불안 심리’를 빠르게 해소했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는 동급의 내연기관차보다 전기차가 더 높은 가격 경쟁력을 지닌 경우가 많아졌다.
여기에 국민적 합의 절차 없이도 개인의 이동·소유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정치·행정 체제도 작용했다. 중국 주요 대도시에서는 차량 수 자체를 제한하는 ‘총량 규제’를 시행해 왔다. 환경 규제가 이유였다. 이 때문에 내연기관차를 새로 구매하면 수년씩 기다려 번호판을 추첨받거나 차값보다 비싼 값을 내고 경매에서 낙찰을 받아야 했다. 반면 전기차는 번호판 규제에서 제외, 구매 즉시 운행할 수 있어 신규 차량 구매 수요가 쏠렸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에이컨 경영대학원의 프랭크 셰 교수는 “중국의 집권 세력은 전기차가 빠르게 내연기관을 대체할 것으로 판단했지만, 시장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며 “보조금 축소와 해외 시장 제약이 본격화되면 내수시장 역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모두가 이런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중국 내수시장에서 전기차가 이미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만큼 산업 전반이 일괄적으로 붕괴하기보다는 선별적 재편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한다. 가격 경쟁력을 제외한 품질, 자율주행 기능, 서비스 등 분야에서 성패가 갈릴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EU의 규제 완화, 미국의 연비 정책 재설정, 소비자 인식 변화가 맞물리며 글로벌 자동차 산업이 정치적 서사에서 비용·에너지·안보를 중시하는 현실 평가로 돌아가고 있다고 분석한다. 국가적 차원에서 자원을 집중해 급속한 성장을 이룬 중국식 전기차 모델이 이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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