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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행 항공편 취소에서 드러난 中 공산당의 주변국 압박

2025년 12월 24일 오후 12:14
일본 항공 여객기 | CNA일본 항공 여객기 | CNA

민간 내세워 책임 회피…자국 관광객을 전략적 자산으로 활용
한국은 ‘한한령’ 계기로 세계 시장 공략, 일본은 ‘뚝심’ 대응

중국과 일본 간 외교 관계가 악화되는 가운데, 중·일 항공 노선 항공편 최대 46개가 전면 취소됐다. 취소 기간은 향후 2주 동안이다. 자국 관광객을 전략적 수단으로 이용하는 중국 공산당의 회색지대 전술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23일 중국 매체 펑파이신문(澎湃新聞)은 항공 데이터 통계를 인용해, 내년 1월 중국에서 일본으로 향하는 항공편 2195편이 취소돼 항공편 취소율이 40.4%에 달한다고 집계했다. 또한 12월 23일부터 내년 1월 5일까지 46개 중·일 항공 노선이 전면 취소됐다고 보도했다. 일본과 중국에서 총 38개 공항이 영향을 받았다.

노선별로는 취소된 항공편이 오사카 노선에 가장 집중됐고, 나고야가 그 뒤를 이었다. 이 밖에도 후쿠오카, 삿포로, 센다이, 오키나와 노선이 영향을 받았다. 반면 도쿄행 노선의 취소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 창사·쿤밍·스자좡·옌타이에서 출발하는 4개 노선만이 취소 대상에 포함됐다.

중국 공산당의 여행 자제령 이후 올해 급증했던 일본행 중국인 관광객의 증가세는 한풀 꺾였다. 일본 국가관광국은 지난 17일 발표한 자료에서, 11월 일본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 수가 56만26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3%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는 10월 증가율(22.8%), 올해 1~11월 기준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37.5%)에 비해 크게 둔화된 수치다.

다만 11월 일본을 찾은 전체 외국인 입국자는 352만 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4% 증가했다. 일본 국가관광국은 “11월 사업·여가 목적 방문객 모두 증가세를 유지했다”며, “2025년 일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수는 39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中 ‘여행 자제령’, 정부 차원 대응 까다로운 압박 수단

중국의 ‘여행 자제령’은 우선 관계 부처인 외교부와 문화여유부(문화관광부)가 “일본 여행을 당분간 자제하라”는 성명을 발표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를 주요 언론이 일제히 보도하면서 이른바 ‘여행 자제령’이 내려졌음을 알린다. 중국 영사관과 대사관도 소셜미디어에 공지를 띄워 일본 방문을 피하라고 권한다.

뒤이어 여행업계의 후속 반응이 나온다. 중국 주요 여행사들이 일본행 여행상품 판매 중단을 발표하고, 국유·대형 여행사들이 일본행 단체 관광 취소 결정을 내린다. 마지막으로 항공사들이 일본행 항공권에 대해 일정 기간 수수료 없이 취소·환불하는 정책을 내놓는다. 중국인들의 ‘자발적’ 여행 취소를 지원하기 위해서다.

이는 정부가 법령이나 규제로 일본 여행을 금지하거나 여행자 출국을 막는 방식은 아니다. 상대국에 외교적 압박을 가하면서도 공식 제재로 보이지 않도록 하는 ‘회색지대’ 전술의 전형적인 사례다.

이번 항공편 축소는 관광 수요가 집중되는 연말연초를 앞둔 지난 23일 발표됐다. 일본 관광 산업에 미칠 충격을 극대화하려는 목적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항공편 축소는 국제선 조정 승인, 물자와 승무원 배치 등 최소 2주 전부터 준비가 필요하다. 일본을 압박하기 위한 하나의 카드로 사전에 준비됐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중국 공산당의 대외 압박에는 ‘공식적 제재 없이 체감 비용을 누적시키는’ 회색지대 전술이 자주 사용돼 왔다. 항공·관광 분야는 군사나 무역 제재에 비해 정치적 부담이 적으면서도, 상대국 지방경제와 특정 업종에 즉각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영역이다. 중앙정부보다 먼저 지방 공항, 호텔, 소상공인, 관광업계가 영향을 받는 구조는 상대국 이해관계자들이 자국 정부에 사태 해결을 요구하도록 압박하는 효과를 낳는다.

한국도 사드 배치 후 한한령…민간에서 해법 찾아

이 같은 방식은 한국이 사드(THAAD) 배치 결정 이후 겪었던 상황과도 닮아 있다. 당시 중국 공산당은 공식적인 제재 조치를 발표하지 않았지만, 중국 단체 관광을 사실상 중단시키고 항공·여행 플랫폼을 통한 판매를 제한했다. 그 결과 피해는 먼저 한국의 관광·유통·문화 산업, 특히 특정 지역과 업종에 집중됐다. 외교적 갈등의 비용을 민간과 지방경제로 전이시켜 내부 갈등을 증폭시키는 구조였다.

다만 중국 공산당의 이번 압박은 한국의 사드 갈등 당시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자신의 발언에 대해 일본 국민에게 사과했지만, 입장을 철회하지는 않았다. 이는 ‘민폐’를 끼쳤을 경우 잘잘못을 떠나 우선 사과하는 일본 특유의 정치·사회적 문화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압력에 굴하지 않은 총리의 선택은 긍정적 반응으로 이어졌다. 닛케이신문에 따르면, 닛케이와 TV도쿄가 지난 19~2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다카이치 내각 지지율은 75%로 나타났으며,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을 ‘철회할 필요가 없다’는 응답은 67%로 ‘철회해야 한다’(11%)를 크게 웃돌았다.

일본의 관광 산업 역시 다른 국가 관광객 증가로 일정 부분 방어되고 있다. 특정 지역과 노선은 중국발 수요 감소로 인한 타격이 불가피하지만, 그동안 일부 중국인 관광객의 행태로 불편을 호소하던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는 중국인 관광객 감소를 오히려 반기는 반응도 나온다.

中 공산당, 한·일 압박 국면에서 회색지대 전술 한계 노출

그동안 회색지대 전술은 상대국 입장에서 대처하기 쉽지 않은 압박 수단으로 작동해 왔다. 법적 제재나 외교적 충돌로 규정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민간과 지방경제에 비용을 전가하면서도 책임 소재를 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은 이번 일본행 항공편 대량 취소 사태에서도 항공업계나 관광객의 자발적 선택이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를 통해 외교적·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면서 민간 차원의 문화·관광·인적 교류를 상대국에 대한 외교적 압박 수단으로 전환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동시에 회색지대 전술의 한계도 노출했다. 이러한 압박에도 일본 정부의 정책 기조나 정치적 지형에는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으며, 일본 국민의 정부 지지율은 오히려 공고해졌기 때문이다.

앞서, 한국도 2017년 ‘한한령’으로 중국 시장 접근이 차단됐다. 당시 환구시보는 “미국의 총알받이가 될 것”이라고 막말 비난을 퍼부었다. 하지만 이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세계 시장으로 눈을 돌리며 경쟁력을 키우는 전환점이 됐다. 민간 분야의 활력이 글로벌 K-POP 확장이라는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낸 셈이다.

일본은 한국처럼 민간의 활약이 두드러지진 않지만, 기존 입장을 지키는 총리를 중심으로 대중 정책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유지하고 내부 결속을 강화하며 압박에 대처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상대국 정부를 직접 겨냥하기보다 민간과 지방경제에 비용을 전가해, 위축과 내부 분열을 유도하는 전략을 구사해 왔다. 이에 한일 양국은 각각 ‘역동성’과 ‘결속’이라는 해법을 도출하며 정확한 대척점을 짚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