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일대일로’가 만든 캄보디아의 범죄 단지…장기 밀매까지

지난 8월, 캄보디아 깜폿주 보코산 인근에서 한국인 대학생이 변사체로 발견됐다. 이 지역은 시아누크빌과 인접해 있으며, 이미 여러 차례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건이 발생한 ‘스캠 콤파운드(Scam Compound·일명 웬치)’ 밀집 지역이다.
현지 경찰은 사건을 “단순 범행으로 보인다”고 서둘러 발표했지만, 사건의 배경을 추적한 결과 이곳이 단순한 범죄 현장이 아니라 국제 범죄 네트워크의 중심 거점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 배후에는 중국 자본이 주도한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그 속에서 뿌리내린 온라인 사기·인신매매·장기 밀매 산업이 얽혀 있었다.
시아누크빌, 일대일로 중심에서 ‘범죄의 수도’로
캄보디아 남서부 해안 도시 시아누크빌은 한때 평화로운 어촌이자 관광지였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이 도시는 중국 자본의 대규모 유입지로 급변했다.
중국 국영기업들이 항만과 산업단지를 건설했고, 수십 개의 카지노와 리조트가 들어섰다. 캄보디아 정부는 이를 ‘경제 도약의 신호탄’으로 내세우며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개발 열풍의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2019년 중국 정부가 본토 내 온라인 도박과 사기를 강력히 단속하자, 중국 내 범죄 조직들이 규제가 느슨한 시아누크빌로 대거 이동했다.
카지노와 호텔 단지는 순식간에 온라인 사기와 인신매매가 결합된 복합 범죄 단지로 바뀌었다. 피해자들은 고수익 일자리나 IT직으로 속아 입국한 뒤 여권을 빼앗기고, 폭력과 협박 속에서 온라인 사기를 강요당했다.
캄보디아의 항구와 공항은 이 불법 사업의 물류망이 됐다. 인신매매된 피해자들이 불법 화물과 함께 국경을 넘었고, 도시는 범죄 자본의 거점으로 변질됐다. 시아누크빌은 더 이상 관광 도시가 아니라 중국계 자본과 범죄 조직이 지배하는 반(半)치외법권 구역이 됐다.
프린스 그룹, 일대일로 ‘1등 후원자’에서 범죄 핵심으로
중국계 대기업 ‘프린스 그룹(Prince Group)’은 시아누크빌 개발의 핵심 투자자로 알려져 있다. 이 그룹은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해 항만·리조트·부동산 개발을 주도했지만, 현지 인권단체와 언론은 이 회사의 일부 자금이 불법 도박, 마약, 인신매매 조직으로 흘러들어 갔다고 지적한다.
프린스 그룹 산하 일부 계열사는 중국계 범죄 조직과의 연계 정황으로 조사 대상에 오른 적이 있으며, 2023년 캄보디아 경찰의 단속 당시 일부 프로젝트 현장에서 감금 피해자와 불법 서버실이 적발되기도 했다. 국제 인권단체 관계자는 “일대일로 자본이 캄보디아 경제를 살린 것이 아니라, 범죄 구조를 정착시켰다”고 비판했다.
인신매매와 감금, 그리고 장기 적출 공포
시아누크빌과 그 주변에서 드러난 사건들은 단순한 감금이나 강제노동을 넘어선다. 2022년 하반기, 대만과 캄보디아를 잇는 인신매매 사건이 폭로되면서 피해자들이 장기 적출 위협을 받았다는 증언이 잇따랐다.
대만 자이(嘉義)와 타오위안(桃園) 지방검찰청은 그해 말, 캄보디아로 청년들을 유인해 장기를 적출해 판매하려 한 대만인 조직원을 인신매매 및 살인예비 혐의로 기소했다.
구출된 피해자들은 “실적이 저조하면 장기를 적출해 팔겠다”는 협박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일부는 폭행과 전기 고문을 당했고, 탈출을 시도하다 행방불명된 사례도 있다.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프놈펜의 ‘프레아 켓 미알레아 병원(Preah Ket Mealea Hospital)’ 등 일부 병원이 장기 적출 수술에 이용됐다는 증언이 다수 확보됐다.
2023년 인도네시아에서 적발된 장기 밀매 사건에서도, 캄보디아 내 브로커 조직이 ‘수술 대상자’를 공급한 정황이 포착됐다. 주요 대상은 신장과 간이었으며, 장기 구매자는 대부분 중국 본토인이었다.
캄보디아 경찰은 이 조직에서 활동한 중국인 의사와 교수를 포함해 9명을 체포했다. 범죄 조직의 상층부가 중국계 인물로 구성돼 있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는 이 사건을 중국의 불법 장기 거래 네트워크와 연관된 것으로 주목하고 있다.
장기 적출 협박, 범죄 단지의 잔혹한 통제 수단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 갇혔던 한국인과 다국적 생존자들은 장기 적출 협박이 조직의 핵심적인 통제 수단이었다고 증언한다. 피해자들은 온라인 사기 실적이 저조하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장기를 적출해 팔겠다는 위협을 받았다.
“너의 신장은 중국에서 비싸게 팔린다”는 직접적인 협박부터 “통장이 잠기면 손가락을 자르고, 빚이 생기면 안구를 적출하겠다”는 식의 위협까지 이어졌다. 이는 조직이 피해자들에게 가하는 폭력의 잔혹한 실상을 보여준다.
외교적 공백 속에 버려진 피해자들
이 범죄 구조의 복잡한 배경에는 외교 문제가 깊게 얽혀 있다. 캄보디아 정부는 중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하며 대만과 외교 관계를 유지하지 않는다. 그 결과 대만 정부는 캄보디아 내 자국민 구출에 공식 채널을 활용할 수 없었고, 민간 네트워크(GASO 등)에 의존해야 했다.
2016년 캄보디아 경찰은 체포한 대만인 범죄 용의자들을 대만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중국으로 송환했다. 이는 “피해자가 중국인이기 때문”이라는 중국 측 논리를 수용한 결과였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캄보디아 내 한국인 실종·사망 사건이 잇따르고 있지만, 현지 경찰의 구조적 부패와 중국 자본의 막대한 영향력으로 수사가 제대로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외교부에 따르면, 2023년 이후 한국인 피해 사례는 급증세로, 2년간 피해 신고는 300건 이상이었고 행방불명자는 약 80명에 달한다. 그중 상당수가 시아누크빌 일대에서 발생했다.
피해자 대부분은 온라인 구인 광고를 보고 입국한 20~30대 청년들로, ‘단기 IT직’이나 ‘번역 아르바이트’ 등의 명목으로 유인된 뒤 감금되거나 협박을 당했다.
한국인 대학생 살해 사건, 구조적 폭력의 한 단면
최근 시아누크빌 인근에서 발생한 한국인 대학생 살해 사건은 이러한 구조적 폭력의 한 단면으로 볼 수 있다. 피해자는 캄보디아에 체류하며 온라인 거래 관련 인물들과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살해된 장소는 ‘범죄 단지’로 악명 높은 지역과 불과 수십 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
사건 직후 한국 대사관과 캄보디아 경찰이 합동 수사에 착수했지만, 현지의 비협조로 진전은 더뎠다. 그러나 국제적인 관심이 높아지자 캄보디아 당국은 중국인 용의자 3명을 구속했다.
사건 현장 부근은 중국어 간판의 카지노와 숙박업소가 밀집해 있었으며, 이 일대는 사실상 중국계 조직이 통제하는 구역이었다. 지역 주민들은 “그곳은 경찰조차 함부로 들어가지 않는다”며 “외국인이 실종돼도 조사조차 어렵다”고 증언했다.
일대일로의 부작용, 그리고 아시아의 구조적 침묵
시아누크빌 사태는 단순한 범죄 사건이 아니라, 일대일로를 매개로 한 중국 자본 확장과 그로 인한 구조적 부패의 결과로 평가된다. 중국의 대규모 투자가 캄보디아의 경제적 의존을 심화시켰고, 그 틈새에서 범죄 조직이 성장했다. 캄보디아 정부는 중국의 지원에 의존해 경제 성장을 도모했지만, 주권적 통제를 잃었다.
국제 인권단체와 UN 인신매매 감시기구는 시아누크빌을 ‘현대판 노예시장의 중심지’로 규정한다. 이곳에는 중국, 대만, 한국, 말레이시아, 미얀마 등 아시아 각국의 청년들이 감금돼 있으며, 일부는 장기 매매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 인권단체 관계자는 “일대일로의 도시는 개발이 아니라 통제의 구조 속에 세워졌다. 지금 시아누크빌에서 사라지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라 국가의 주권과 인간의 존엄”이라고 말했다.
한국인 대학생의 죽음은 그 구조 속에서 일어난 비극의 한 조각에 불과하다. ‘일대일로의 비극’은 단지 캄보디아의 문제가 아니라, 아시아 전체가 맞닥뜨린 어두운 미래의 단면이 되고 있다.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감시와 공조 없이는 이 비극 속에서 또 다른 젊은 생명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경찬 논설위원은 정치 PR 전문가로, 한국커뮤니케이션에서 정치 홍보를 담당하며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쌓았습니다. 이후 정치 보좌관으로 활동하며 정책과 정치 현장을 깊이 이해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에포크타임스 기자로 오랜 기간 활동하며 언론의 최전선을 경험했습니다. 현재는 미디어파이 대표로서, 정무·언론·홍보 전반에 걸친 통합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이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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