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크타임스

베네수엘라 사회주의 정권을 탈출한 사람들이 증언하는 진실

2026년 01월 08일 오전 11:10
(왼쪽부터) 회계사 카를로스 이게레이, 인권 운동가 자라이 마사, 정치 활동가 다니엘 티라도. 세 사람은 마두로 정권의 박해를 피해 베네수엘라를 탈출해 현재 미국에 살고 있다. | Courtesy of Carlos Higuerey, Zarai Maza, Daniel Tirado(왼쪽부터) 회계사 카를로스 이게레이, 인권 운동가 자라이 마사, 정치 활동가 다니엘 티라도. 세 사람은 마두로 정권의 박해를 피해 베네수엘라를 탈출해 현재 미국에 살고 있다. | Courtesy of Carlos Higuerey, Zarai Maza, Daniel Tirado

자라이 마사는 베네수엘라 정권에 평화적으로 항의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에서 정권 비판은 용납되지 않는다. 목소리를 내는 것은 본인과 가족의 목숨이 위협받는 일이다. 그녀는 본인의 차가 불에 타고 끔찍한 교통사고도 겪었지만 살아남았다.

그녀는 베네수엘라 독재 정권이 자기를 죽이려 했다고 믿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2014년에 저에 대한 박해를 시작했고, 그것은 2017년까지 지속됐다. 내 목숨을 노린 암살 시도가 세 번 있었고, 마지막 시도 후 나는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었다.”

마사는 눈물을 참으며 마지막 사건이 평범한 택시 탑승으로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녀는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고 몸에 감각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녀는 2017년 플로리다로 이주했고, 미국에서 2년간의 물리 치료를 받은 후 다시 똑바로 걸을 수 있게 됐다.

그녀는 번영하던 나라를 억압적이고 실패한 사회주의 국가로 만든 잔혹한 정권을 피해 탈출한 수백만 베네수엘라인 중 한 명이다. 그리고 국내외의 많은 베네수엘라인들처럼, 마사는 1월 3일(이하 현지시간) 베네수엘라 전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와 그의 아내를 체포해 마약 테러리즘을 포함한 혐의로 기소하기 위해 뉴욕시로 압송한 미군의 작전에 환호했다.

마두로 부부는 1월 5일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했다. 유죄 판결을 받으면 종신형에 처해진다.

에포크타임스는 수십 명의 베네수엘라 출신 망명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은 생존, 박해, 살해, 괴롭힘, 협박에 관한 끔찍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독재 정권에서 살아남은 후 어떻게 삶을 재건했는지 설명했다. 사회주의는 베네수엘라 가족들을 갈기갈기 찢어놓았을 뿐만 아니라 나라를 파멸로 몰아넣었다. 그들의 경험은 그 수많은 사례 중 일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새 정부로의 “안전하고 적절하며 신중한 이행”이 이루어질 때까지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대한 통제를 유지할 것이라며, 미국 석유 회사들이 베네수엘라 경제 재건에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베네수엘라 망명자들은 미국이 조국을 바로잡는 데 도움을 준다면 돌아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생존자 이야기

마사는 인권 운동가이자 플로리다주 도럴에 본부를 둔 ‘인권 수호자 재단(Guardians of Human Rights Foundation)’의 창립자 겸 이사다. 활동가로서 그녀의 활동은 약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녀는 여전히 조국에 살며 베네수엘라 중앙대학교에 다녔다. 그녀가 마두로 정권이 저질렀다고 믿는 세 차례의 암살 시도를 당하기 전이었다.

그녀는 베네수엘라에서 수년간 많은 동료 학생과 교수가 부당하게 투옥됐다고 말했다. 괴로운 표정으로 그녀는 첫 번째 암살 시도를 떠올렸다. 캠퍼스에서 평화 시위를 하던 중 베네수엘라 볼리바리아 국가방위군이 그녀와 동료들을 쫓아온 사건이었다.

자라이 마사가 2016년 베네수엘라에서 실시한 인권 세미나 현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마사는 베네수엘라 정권에 평화적으로 항의한 후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박해를 받았다고 말했다 | Courtesy of Zarai Maza

마사는 “미국인들은 단지 어떤 장소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느낄 수 있는 그 두려움을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SUV에 겨우 탑승했지만, 그들이 차량에 불을 붙였다. 마사의 어머니가 창문을 발로 차 깨뜨려서 불타는 차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마사는 나중에 에포크타임스에 어머니도 “보호를 위해” 베네수엘라를 탈출했으며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고 전했다.

마사는 두 번째 암살 시도에 대해서는 아예 말을 하지 않았다. 기억이 너무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그녀는 “자신이 살고, 사랑하고, 자란 지역 어디에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상상해 보라. 그들은 어디서든 당신을 추적한다. 나는 거의 무너질 지경”이라며 치를 떨었다.

세 번째 암살 시도에서는 차량이 마사가 탄 택시를 들이받아 전복시켰고, 그녀의 척추가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마사는 “몸을 움직이거나 느낄 수가 없었다. 당시 나는 25살이었고, 단지 조국을 위해 싸우려고 했을 뿐이다. 그들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무슨 짓을 얼마나 할 수 있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그녀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여전히 고통을 받고 있다.

약하게 주먹을 쥐며 그녀는 “아직도 고통을 겪고 있다. 손에 충분한 힘을 줄 수가 없다. 지금도 어딘가에 서 있을 때 오토바이가 오면, 그 소리를 듣게 되면…”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그녀는 미국으로 이주한 후 밤에 편안하게 잠들 수 있게 되기까지 수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압박과 살인

카를로스 이게레이는 국영 기업에서 수년간 일한 후, 가족들이 연이어 사망하는 사건을 겪고 2018년 미국으로 갔다.

그는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가스 회사에서 12년간 회계사로 일하며 은밀한 부패 관련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다. 가족 중 일부가 베네수엘라 야당 정치에 관여했던 탓에, 고용주들은 그를 반정부 세력인 ‘에스쿠알리도(escuálido)’나 ‘차비스모(Chavismo)’와 연결된 사람으로 간주했다.

가족의 첫 비극은 2010년 아버지의 죽음으로 시작됐다.

그는 “아버지는 약을 복용해야 했지만, 당시 베네수엘라에서는 약을 구할 수가 없었다. 정부가 모든 약국의 약을 몰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말 많은 사람이 죽었고, 나는 그들을 매장했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10일도 안 돼서 그의 이모와 이모부가 집에서 살해당했다. 이게레이는 그 사건의 배후에 마두로 정권이 있다고 믿는다.

그는 “벽에 피가 묻어 있었다. 공포 영화 같았다. 정말 끔찍했다”고 회상했다.

누가 그런 짓을 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주저 없이 “정부”라고 답했다.

아버지와 이모, 이모부가 세상을 떠난 지 불과 5개월 후, 이게레이의 형제도 정치적 이유로 살해됐다. 수년간의 압박과 가족들이 살해당하는 일을 겪은 후, 그는 2018년 잠시 쉬기로 결심하고 미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당시 그는 이 여행이 수년간의 체류가 될 줄 몰랐다.

그는 “여기 도착한 다음 날 휴대폰을 확인했다. 이웃들로부터 메시지가 와 있었다. 내 여동생이 납치됐다는 거였다”고 말했다.

정부 요원들이 그녀를 데려가는 것을 이웃들이 목격했다. 요원들은 실제로는 그가 석유 회사에 대해 알고 있는 비밀 때문에 이게레이를 찾고 있었다. 여동생은 다음 날 풀려났지만, 이게레이는 영혼을 짓누르는 선택에 직면했다.

그는 “베네수엘라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우울증 속에 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면이 무너졌다. 마음이 완전히 부서졌다”며 괴로워했다.

2025년 1월 3일 플로리다주 코랄 게이블스에서 카를로스 이게레이가 마두로 체포 소식을 듣고 다른 지지자들과 함께 베네수엘라 국기를 들어 올리고 있다. 국영 석유∙가스 회사에서 수년간 일한 후 2018년 미국으로 온 이게레이는 가족들의 연쇄 사망과 관련, 베네수엘라 정권을 비난한다. │ Courtesy of Carlos Higuerey

그의 여동생(55세)과 매형(65세)은 나이와 능력 등 여러 이유로 베네수엘라를 떠날 수 없었다.

이게레이는 2018년 베네수엘라를 떠난 이후 돌아가지 않았다. 자신의 삶과 나라, 가족을 뒤로하고 떠나기로 한 결정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었는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다른 수많은 베네수엘라인들도 이런 괴로운 결정을 강요받았다.

그는 “베네수엘라의 모든 가족이 무너지고 헤어졌다. 작별 인사를 해야 했다. 사랑하지만 작별을 고했다. 조국을 사랑하지만 그곳에 머물 수 없었다. 그곳에는 미래가 없다. 평화도 없다”고 개탄했다.

그에 따르면, 수천 명의 베네수엘라인이 그가 내린 것 같은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갇혀 있다. 그는 나라를 떠나느니 차라리 자살을 선택한 두 사람을 언급했다. 그는 사회주의 정권 아래서 이런 식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수천 명에 이르지 않을지 의문을 제기했다.

새로운 나라에서 삶을 다시 시작하는 것, 특히 아무것도 없이 시작할 때는 두 배, 세 배의 시간을 투입하고, 두 가지 일을 하고, 임시 숙소에서 살면서 동시에 깊은 상실감을 안고 살아야 한다.

그는 하지만 미국으로 이주한 이후 더 많이 농담도 하고 웃게 됐다고 말했다.

끊임없는 괴롭힘

베네수엘라에 남아 있는 친척들에 대한 보복이 두려워 익명을 요청한 한 남성과 그의 가족은 정권이 어떻게 그의 사업을 무너뜨렸는지 설명했다.

그를 위해 통역을 맡은 그의 딸은 아버지가 베네수엘라인들에게 통조림 식품을 공급하는 일을 시작한 경위를 설명했다.

딸은 아버지를 얘기하며 “식량 공급이 너무 부족해서 아빠는 뭔가 하고 싶으셨다. 그런데 마두로 정권이 매번 일정 금액을 가져갔다. 그 금액이 점점 더 커지더니 결국 물건을 다 가져갔다”고 말했다.

이윽고 돈도 다 가져갔다. 군인들이 매달 아버지의 사무실로 와서 할당량을 제시했다. 협상의 여지는 없었다.

딸이 “‘안 돼요’라고 말할 방법이 없었다. 그들이 가족을 납치할 수도 있었으니까…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었다”라고 통역했다.

2026년 1월 6일 카라카스의 식료품점에서 한 여성이 식자재값을 지불하고 있다. 미군이 베네수엘라 전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를 체포한 이후의 모습이다. 마두로는 2013년 권력을 잡았으며,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1년까지 베네수엘라의 GDP는 약 75% 감소했다. │ Carlos Becerra/Getty Images/연합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처벌은 보통 부모에게 가해지지 않았다. 대신 자녀들을 납치하고 고문하는 게 다반사였다.

그는 베네수엘라에 있는 친척들이 자신이 보내는 돈으로 생계를 유지한다고 말했다. 그들의 월급은 단 1달러라고 한다.

마두로는 2013년 권력을 잡았고, IMF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1년까지 베네수엘라의 국내총생산(GDP)은 약 75% 붕괴됐다.

인플레이션은 2018년 13만% 넘게 급등했고, 최신 IMF 데이터가 보여주듯 2025년에도 600%를 넘는 수준을 유지했다.

마두로가 지도자가 된 지 1년 후 실업률은 8%였다. 그 후 실업률은 급격히 상승했고, IMF의 최신 이용 가능 데이터에 따르면 2018년 35.6%에 달했다.

그는 “사회주의는 암과 같다”고 말했다.

베네수엘라나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바로잡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그 남성은 주먹으로 손바닥을 쳤다. 그는 엘살바도르의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이 거리에 군대를 배치해 폭력적인 갱단원들을 색출하고 투옥하는 등 자국을 바로잡는 올바른 정책을 펼치는 지도자라고 말했다.

베네수엘라 군인들은 예전에 매우 명예롭고 존경받는 사람들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완전히 정반대라고 그 가족은 말했다.

그는 “너무나 조금씩 조금씩 진행돼서 모두가 그냥 신경 쓰지 않게 됐다. 군대도 있고 무장 조직도 있는데, 어느 쪽이 어느 쪽인지 구별할 수가 없다. 군대든 무장 조직이든 누가 당신을 잡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들은 당신을 때린다. 당신 물건을 훔친다. 그냥 당할 뿐”이라고 분노했다.

마두로 정권은 무엇이든 빼앗아 갔다. 그는 한번은 가족과 해변 여행을 갔던 일을 떠올렸다. 검문소를 통과할 때 군인들이 의자, 비치타월, 모자 등을 포함해 그들의 소지품 일부를 훔쳐갔다.

2026년 1월 3일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미군이 니콜라스 마두로를 체포한 후 무장한 마두로 지지자들이 미라플로레스 대통령궁 근처에 모여 있다. │ Federico Parra/AFP via Getty Images/연합

결국 그 가족은 살아남기 위해 탈출했다.

딸은 “아빠가 저를 언니와 함께 여기로 보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조국이 그가 젊었을 때의 그 나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때야 비로소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딸은 “아빠는 조국에서 죽고 싶어 하시지만, 필요에 의해 이곳으로 왔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 여기에 머물고 싶어서가 아니라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가족은 사회주의 정권에서 살아남아 새로운 나라에서 삶을 다시 시작하는 일은 플로리다주 도럴 같은 곳의 베네수엘라 이민자 공동체의 지원이 있어야만 가능한 과제라고 말했다.

정치 권력, 박해, 그리고 두려움

다니엘 티라도는 10대 때부터 정치에 뛰어들어 일찍부터 잔혹한 마두로 정권의 반대편에 섰다.

그는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고 말했다.

베네수엘라의 “심각한 민주주의 위기”를 보며 그는 행동에 나섰다. 마두로 정권 반대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학생운동과 시위에 나섰고, 야당 지도자들을 직접 지원했다. 티라도는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게임을 하고 있는지 빠르게 깨달았다.

그는 “내 친구 한 명은 내가 살던 도시의 시의원이었는데, 아마 세 번 정도 구타를 당했다. 그들은 거의 그를 죽일 뻔했다. 나는 여러 번 집에 숨어야 했다. 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콜렉티보스(colectivos)”, 즉 친정부 조직의 공격도 받았다. 이들의 목적은 정권 반대자들을 위협하고 처벌하는 것이었다. 이런 공격을 받은 사람들은 보복이 두려워 신고도 못 했다. 집권당이 지방 당국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니엘 티라도는 10대 때부터 정치에 참여하기 시작해 일찍부터 마두로 정권 반대편에 섰다. 그는 학생운동, 시위, 야당 지도자 지원 활동에 참여했다. │ Courtesy of Daniel Tirado

그는 “정부에 맞서 싸우려고 했다. 하지만 이런 범죄 조직과 싸울 때, 그것은 단순히 당신 자신만의 생존이 문제가 아니다. 당신 가족에게 무슨 일을 당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의 여동생과 아버지는 정치적 괴롭힘과 위협의 희생자다. 경찰이 두 사람을 체포하려 했고 결국 그들은 탈출했다. 이런 사건들이 끊임없는 공포 상태를 만들었고, 그의 가족 중 점점 더 많은 사람을 망명으로 내몰았다.

그는 “베네수엘라 정부는 내 신원, 정치적 이력, 활동을 완전히 알고 있다. 나는 망명 중에도 여전히 정권의 적으로 간주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 난민 지위 때문에 친척들을 만나러 미국을 떠날 수가 없다. 지금까지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었다.

그는 “가족과의 이별은 길고 고통스러웠다. 망명 생활은 가족의 단합보다 안전을 선택하는 것을 의미했다. 결코 하고 싶지 않았지만 살아남기 위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희생”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베네수엘라 밖에서 살고 있지만, 정권은 여전히 어디든 손을 뻗칠 수 있다”고 경계했다.

2017년 4월 21일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프란시스코 파하르도 고속도로에서 다니엘 티라도(왼쪽)가 동료 시위자들과 함께 “암 같은 정권”에 맞서 싸우기 위해 줄지어 서 있다. │ Courtesy of Daniel Tirado

도럴 지역 공동체의 많은 구성원이 베네수엘라의 잔혹한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우고 살아남았다.

티라도는 “베네수엘라에서는 결코 안전하지 않다. 무엇을 하든 상관없이 그렇다. 정치 활동가든, 학생이든, 전문직 종사자든 상관없다. 정권에 반대하는 생각을 하거나, 그들에 맞서 행동하려 하면, 당신은 정치적 표적이 된다”고 말했다.

살인적인 사회주의 정권에서 살아남고 지속되는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견뎌왔지만, 에포크타임스가 만난 베네수엘라인들은 짓눌려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마사는 아메리카, 유럽, 남아시아 전역에서 민주주의와 교육을 발전시키는 사업을 이끌고 있다. 이게레이는 여전히 회계 업무를 하고 있다. 익명을 선택한 남성은 에어컨 사업을 운영하는 것을 돕고 있다. 티라도는 정치와 관련된 일을 하며 남부 플로리다와 워싱턴에서 가족과 직장 생활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

*한강덕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