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논평] ‘통치’로 번역된 트럼프의 ‘run’ 발언, 한국 언론의 선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 사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ㆍ압송 작전에 대해 말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 트럼프에 비판적인 NYT·CNN도 있는 그대로 보도…中 관영매체는 ‘관리’로
국내 언론은 대부분 ‘통치’로 번역…마르코 장관은 “일상 통치 아냐” 일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 이후 “베네수엘라를 일정 기간 운영(run)하겠다”고 밝힌 발언을 두고, 국내 언론과 외신의 접근 방식이 눈길을 끈다.
4일 국내 다수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의 마두로 압송 작전 성공 소식을 전하며 “정권이 이양될 때까지 통치할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기사 제목으로 뽑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운영’이라고 말했지만, 국내 언론은 이를 ‘통치’로 보도했다. 다만 기사 본문에서는 다시 ‘운영’이라는 표현으로 바꿔서 보도했다.
이는 어휘 반복으로 인한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한 편집일 수 있으나, 거의 모든 언론이 유사한 방식을 취했다는 점에서 공교롭다. ‘통치’라는 표현이 주는 강한 어감을 사건 전체의 인상을 전달하는 데 활용하면서도 실제 발언인 ‘운영’을 빼놓지 않아 왜곡 보도를 피한 모양새다.
같은 날 외신 보도와 비교하면, 국내 언론의 접근 방식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로이터, AP 등 주요 통신사들은 모두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그대로 옮겼다. 트럼프 행정부에 비판적인 기조를 유지해 온 진보 성향 매체 뉴욕타임스와 CNN도 제목과 본문에 ‘운영'(run)이란 표현을 그대로 사용했다.
이 같은 양국 언론의 차이는 원어와 번역의 문제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외신은 트럼프의 영어 발언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지만, 국내 언론은 번역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해석의 선택이 개입된다는 것이다.
다만, 미국 언론에서도 ‘통치’에 가까운 표현을 사용한 사례는 있었다. 미국 3대 지상파 방송사(NBC·ABC·CBS) 가운데 하나인 NBC는 “트럼프는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통치(govern)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통제(control)’나 ‘지배(domination)’보다는 행정적 운영의 측면이 강조된 표현이다.
해방과 군정…미국의 베네수엘라 개입 바라보는 두 관점
통치는 주권을 전제로 한 지배 행위를 의미하며 군정이나 점령, 식민지 지배를 떠올리게 한다. 미국의 한반도 군정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종료됐지만, 그 기억은 지금까지도 한국 사회에 깊게 각인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마두로 체포 이후 대(對)베네수엘라 조치를 ‘통치’로 묘사하면 반미 ·반제국주의 서사를 호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일부 국내 언론은 트럼프의 개입을 ‘사실상 군정 선포’, ‘미국의 직접 통치’로 규정하며 정치적 해석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가 강조한 ‘정권 이양까지의 조건부·한시적 성격의 국가 운영’은 상대적으로 덜 조명됐다. 지난 수년 간 베네수엘라를 탈출한 사람들이 770만 명에 이르며, 각국에서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이 마두로 체포에 환호하며 거리에 축하행사를 가졌다는 점도 언급되지 않았다.
국내 일부 진보 진영 매체와 단체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민노총은 3일 “미 제국주의의 전쟁 범죄, 베네수엘라 침공 단호히 규탄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경향신문도 사설을 통해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 제국주의식 주권 침탈 규탄한다”고 비판했다. 다만, 해당 사설에서는 트럼프 발언을 “운영”이라고 번역했다.
트럼프의 발언이 외국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정당화하기 위한 언어적 포장일 수도 있다. 다만, 베네수엘라 담당자로 지목된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4일 CBS 방송에서 “우리(미국)가 베네수엘라를 일상적으로 통치(govern)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트럼프 발언이 확대 해석되는 것을 차단했다.
통치는 외교적으로 매우 강력한 표현이기에 미국 정부는 공식 문서에서 이러한 단어 사용을 기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법적·외교적 분쟁 소지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방침이다.
중국공산당 역시 이번 미국의 마두로 체포 작전을 ‘주권침해’라고 규탄했지만, 트럼프의 발언 자체를 비틀진 않았다. 관영 신화통신은 논평을 통해 “(미국이) 21세기에 19세기 식민주의적 약탈을 되풀이한다”면서도 “트럼프는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관리(管理)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후 맥락을 설명했다.
중국어에도 ‘통치’ 혹은 ‘통제’에 해당하는 단어가 있지만, 신화통신은 트럼프 발언인 ‘운영'(run)에 가장 가까운 ‘관리’라는 표현을 택했다. 중화권 다른 매체들 역시 ‘개입’, ‘관여’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뿐, 통치라고 번역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정치적 입장과 별개로 외국 정치 지도자 발언 자체는 있는 그대로 전하는 선택을 내렸다.
트럼프의 베네수엘라 개입을 둘러싼 논쟁은 아직 진행형이다. 하지만 ‘통치’냐 ‘운영’이냐, 언론의 어휘 선택이 이미 독자들에게 서로 다른 출발선을 설정해 놓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결과가 나오기 전에 언어를 통한 프레이밍으로 먼저 판단을 이끌고 있는 셈이다. 빠른 판단이 강점일 수 있으나 그만큼 오류 가능성도 높아진다.
* 업데이트: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표현을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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