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크리스마스, 풍요가 아닌 비움을 생각하는 시간
안토니오 다 코레조의 작품 ‘성스러운 밤(The Holy Night)’(1528~1530년경)의 부분. 독일 드레스덴 국립미술관 소장. | Public Domain 이번 주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몇몇 상점을 들렀을 때, 소비 열기는 이미 절정에 달해 있었다. 사람들은 상자와 쇼핑백으로 가득 찬 카트를 두세 개씩 밀고 다녔고, 한 여성은 계산대 앞에서 줄을 세워놓은 채 2천 달러에 가까운 금액의 기프트카드를 결제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갖고 싶은 것을 요구하며 소리를 질렀고, 부모들은 그에 맞서 언성을 높였다. 매장 통로는 값싸고 화려한 색상의 물건들로 만든 거대한 진열대로 빼곡했다. 대부분 외국에서 제조된 플라스틱 제품들로, 몇 주 지나지 않아 부서지거나 금세 흥미를 잃을 것들이며 결국 쓰레기가 될 물건들이었다.
어느새 크리스마스는 ‘소비의 축제’가 된 듯했다. 이 광경을 보자, 필자의 양어머니가 라틴어로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뜻을 지닌 텍사스의 코퍼스크리스티 시를 이야기할 때마다 하던 말이 떠올랐다. “코퍼스(육체)는 많고, 크리스티(그리스도)는 별로 없다”는 말이다. 바로 그 문장이 소란스러운 쇼핑 풍경 속에서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현시대의 크리스마스도 마찬가지다. ‘크리스마스’는 넘쳐나는데, 정작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다. 실제 크리스마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한다면 이 대비는 더욱 분명해진다.
하나님은 화려함이나 부유함 속에서 오시지 않았다. 권능과 사치 대신 한 여성의 태(胎) 안에 감싸인 채 이 땅에 오셨고,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셨다. 돌봄과 보호가 필요한 연약한 존재로 세상에 오셨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주신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 ‘덜한 것’을 선택하셨다는 데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크리스마스는 어느새 ‘물류 관리’를 하는 날이 되어 버렸다. ‘모두에게 충분한 선물을 챙겼는가’ ‘사람마다 금액은 적당한가’ ‘제때 포장은 끝냈는가’, 이런 체크리스트들이 성스러움을 밀어낸다. 생각과 묵상의 자리는 효율과 계산으로 대체되고 있다.
우리는 성육신—영원한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사건—을 기념한다며, 장기적 가치가 거의 없는 값싼 물건들을 산더미처럼 교환한다. 소비가 끊기지 않도록 하기 위한 행위가 대부분이다. 연간 소비지출의 20~30%가 연말 홀리데이 시즌에 집중된다. 우리는 묵상하기보다 소비하는 데 시간을 쓴다.
그러나 지나온 크리스마스를 돌아보면, 정작 선물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특별한 몇 가지 선물이 물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건 시간이다.
할머니와 함께 쿠키를 만들던 기억. 크리스마스 아침마다 집안을 가득 채우던 할아버지의 ‘계란·감자·베이컨’ 오븐 요리 냄새. 채식주의자였던 탓에 먹지는 않았지만, 그 따뜻하고 익숙한 향은 집 안 곳곳에 퍼지며 하루의 시작을 알렸다.
크리스마스 과자집을 만들고 과자를 몰래 떼어 먹던 일, 가족과 하던 제스처 게임, 거실에서 터져 나오던 웃음소리, 예고 없이 찾아오던 이웃들, 주방 조리대에 차려진 치즈와 크래커, 끝없는 간식과 단 것들, 깊게 이어지던 대화들.
해마다 어느 조부모 집에 가느냐에 따라 교회 예배나 미사에 갔던 기억도 있다.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유니테리언 교회에서 할아버지가 설교를 하곤 했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 기억과 전통 위에 의미를 엮어내던 그 설교를 듣기 위해 나는 늘 기다렸다.
결국 오래 남는 건 이런 것들이다. 선물은 사라지지만, 함께했던 시간과 나눔은 남는다.
무언가 빠르게 소비하고 새것을 갈망하는 이 과도한 소비문화 속에서, 우리는 성스러운 것을 텅 빈 것으로 만들어버린 건 아닐까. 크리스마스는 온갖 물건으로 가득하지만 정작 의미는 비어 있고, 소비는 넘쳐나지만 성찰은 부족하다.
하지만 성육신이 보여주는 메시지는 다르다. 하나님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보다 함께 존재하는 것, 재물을 쌓는 일보다 사람과의 관계, 머릿속의 개념보다 몸을 가진 실제 인간의 삶을 더 소중하게 여기신다.
하나님은 풍요와 화려함으로 인간을 구원하지 않으셨다. 인간의 일상적이고 복잡한 삶 속으로 들어오심—즉 친밀함으로 구원을 이루셨다.
크리스마스는 애초에 요란하거나 화려한 날이 아니었다. 작은 아기를 바라볼 만한 조용함, 사람들이 함께 모일 수 있을 만큼의 느림, 무언가를 얻는 날이 아니라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했던 날이었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이 빈손으로 우리에게 오셨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우리는 비로소 끝까지 움켜쥐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순간, 크리스마스가 본래 지니고 있던 의미를 비로소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몰리 엥겔하트는 ‘소브린티 랜치’에서 재생 농업과 목축을 실천하는 농장주로, 식량 주권, 토양 회복, 그리고 자급자족·자립형 교육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Debunked by Nature: 당신이 음식, 농업, 그리고 자유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뒤집다’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비건 셰프이자 LA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그녀가 손으로 흙을 만지는 ‘진짜 농부’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담은 솔직하고 강렬한 기록으로, 자연이 어떻게 그녀의 문화적 고정관념을 산산이 부숴버렸는지를 보여줍니다.
*윤승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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