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중국 서해 구조물 설치…한미 공동 대응 돌입
중국이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 인근에 설치한 해양 구조물. 중국은 민간·과학 목적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감시·통제 기능을 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군사적 활용 가능성을 둘러싼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연합뉴스 중국이 한국 서해의 한중 잠정조치수역에 설치한 해양 구조물이 단순한 외교 마찰이나 환경·민간 논쟁의 범주를 넘어, 한미가 공동으로 대응해야 할 중대 안보 위협으로 급속히 격상되고 있다. 중국은 민간과 과학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서해의 군사 질서와 국제법 체계를 단계적으로 잠식하는 회색지대 공세를 전개하고 있다는 평가가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미국의 유력 싱크탱크가 중국의 구조물 설치 실태를 위성사진과 함께 공개하며 이를 ‘점진적 주권 확장 전략’으로 규정한 이후, 미국 정부 역시 이 사안을 인도·태평양 전략 차원의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워싱턴에서는 이 문제가 더 이상 한중 간 국지적 현안이 아니라, 한미 동맹이 직접 관리해야 할 안보 사안으로 성격이 전환되고 있다는 판단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산하 북한 전문 분석 사이트 ‘비욘드 패럴렐’은 중국이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과 인접 해역에 총 16개의 해상 시설을 일방적으로 설치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2018년 이후 한국과의 사전 협의 없이 13개의 부표를 배치했고, 여기에 대형 심해 양식 플랫폼 2기와 종합 관리 플랫폼 1기를 추가로 건설했다.
문제의 수역은 2001년 체결된 한중 어업협정에 따라 잠정조치수역으로 지정돼 있다. 이 구역은 어느 일방도 배타적 관할권을 행사할 수 없고, 양국이 공동으로 관리하도록 명확히 규정돼 있다. 그럼에도 중국은 영구적 성격의 구조물을 설치하고, 일부 해역을 일방적으로 항행 금지 구역으로 설정하며 사실상 통제권을 확대하려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민간 시설 뒤에 숨은 군사 전진기지
중국의 서해 구조물을 둘러싼 가장 심각한 우려는 해당 시설들이 민간 시설을 위장한 군사 전진기지로 전용될 가능성이다. 외형상으로는 해양 관측이나 양식 시설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군사적 활용을 염두에 둔 이중 용도 시설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중국이 설치한 13개의 부표는 단순한 수온·염분 측정 장비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대만 국방안전연구원의 선임연구원 선밍스(沈明室)는 이 부표들이 수중 음향 감청 장비를 탑재할 경우 잠수함, 특히 핵잠수함의 이동을 추적하는 수중 감시망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냉전 시기 미국이 구축했던 SOSUS와 유사한 체계를 서해에 형성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대형 플랫폼 역시 단순한 양식 시설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평시에는 민간 시설로 운영되다가, 유사시에는 레이더와 전자전 장비를 탑재하고 무인기·무인수상정·무인잠수정의 전진 발진 기지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물이 서해에 고정적으로 자리 잡을 경우, 중국은 군사적 충돌 없이도 해당 해역에 대한 감시권과 접근 거부 능력을 동시에 확보하게 된다.
이는 한국 해군의 작전 항해를 근본적으로 제약하고, 한미 연합작전의 은밀성과 기동성을 크게 훼손할 수 있다. 서해가 사실상 중국의 접근거부·지역거부 체계에 편입될 경우, 군사적 균형은 구조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다.
서해에서 재현되는 남중국해 수법
중국의 행보는 이미 남중국해에서 검증된 수법을 서해에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민간과 과학을 앞세워 시설을 설치한 뒤, 시간이 지나면 “기존에 관리해왔다”는 논리를 내세워 관할권을 주장하는 방식이다. 서해 역시 국제법상 공동 관리 수역이라는 성격이 점차 희석되고, 중국이 실질적 통제권을 행사하는 회색지대로 전락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CSIS에 따르면 2020년 이후 한국 측 선박은 중국 시설의 성격과 활동을 확인하기 위해 135차례 접근을 시도했지만, 이 가운데 27차례는 중국 해경에 의해 직접 차단됐다. 이는 단순한 경고를 넘어, 해당 수역을 자국 관리 수역으로 간주하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행동으로 해석된다.
이 같은 흐름이 고착될 경우, 서해는 남중국해처럼 ‘분쟁은 없지만 자유도 없는 바다’로 변질될 수 있다. 국제법 질서는 형식적으로 유지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중국의 힘이 곧 규칙이 되는 상황이다. 이는 한국의 해양 주권 문제를 넘어 국제 해양 질서 전반에 심각한 선례를 남길 수 있다.
북한·대만 위기와 맞물린 서해 변수
서해 구조물 문제는 단독 사안에 그치지 않는다. 중국의 감시·통제망이 구축될 경우, 이는 북한과 대만이라는 동북아 핵심 안보 변수와 직접적으로 결합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과 미군의 서해 활동 정보가 북한으로 유입될 경우, 한반도 유사시 한국의 전략적 대응 여지는 크게 줄어들 수 있다.
대만 해협에서 충돌이 발생할 경우, 중국은 서해를 한·미 전력을 분산·차단하기 위한 구역으로 활용할 수 있다. 서해에서의 감시와 통제가 강화되면, 중국은 동시다발적 위기 상황에서 전략적 주도권을 쥘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과정에서 한미일 연합 억제력 역시 직접적인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안보 불안이 경제로 번지는 파장
군사적 불안은 곧바로 경제와 산업으로 전이된다. 서해 항로에 대한 위험 인식이 높아질 경우 해상 보험료와 운송비는 즉각 상승한다. 평택·인천·군산 등 서해 연안 항만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반영된 ‘안보 할인’을 피하기 어렵다.
외국 투자자들 역시 한국의 리스크 프리미엄(추가 위험 부담분)을 재평가할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 배터리, 정유, 철강 등 수출 의존도가 높은 산업은 물류와 안보 불안이 곧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서해의 불안정성은 추상적인 안보 문제가 아니라 산업 현장과 기업 경영에 직결되는 현실적 위험 요인이다.
중국의 서해 해양 구조물 문제는 이제 외교적 항의나 기술적 논쟁으로 다룰 사안이 아니다. 이는 서해의 군사 균형, 국제법 질서, 한반도와 대만 위기의 연동, 한국의 경제·산업 기반까지 흔들 수 있는 구조적 안보 위협이다. 미국이 이 문제에 직접 개입해 한미 공동 대응을 검토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판단의 연장선이다.
중국의 회색지대 공세를 초기에 차단하지 못할 경우, 그 비용은 시간이 지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 서해는 이미 시험대에 올랐고, 선택의 시간은 길지 않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서해 문제, 한미 공동 대응 국면
미국의 개입은 더 이상 상징적 차원에 머물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워싱턴은 중국의 서해 해양 구조물 설치를 남중국해 군사화의 ‘전 단계 모델’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를 초기에 저지하지 못할 경우 동아시아 해양 질서 전반이 되돌릴 수 없는 방향으로 기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서해를 한반도 주변의 국지적 분쟁 공간이 아니라,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전선으로 공식 인식하고 한국과의 공동 대응 수위를 단계적으로 끌어올릴 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파악된다.
우선 한미는 해양 감시와 대응에서 사실상 공동 작전 체계에 가까운 수준으로 협력을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위성·정찰·해저 감시 자산과 한국 해군의 현장 대응 능력이 결합될 경우, 중국이 ‘민간 시설’을 내세워 유지해 온 모호성은 크게 약화된다.
단순한 정보 공유를 넘어, 추가 설치나 기능 전환 움직임이 포착되면 즉각 공동 대응 절차가 가동되는 구조로 전환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외교·국제법적 대응도 한층 공세적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미국은 이 문제를 한중 간 갈등이 아닌 국제 해양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하고, 동맹과 우방을 결집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이 여기에 적극 나설 경우 중국의 점진적 기정사실화 전략은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서해는 이미 선택의 기로에 놓였으며, 지금의 대응은 향후 한반도 안보와 동아시아 질서의 방향을 가를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제기된다.
*이경찬 논설위원은 정치 PR 전문가로, 한국커뮤니케이션에서 정치 홍보를 담당하며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쌓았습니다. 이후 정치 보좌관으로 활동하며 정책과 정치 현장을 깊이 이해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에포크타임스 기자로 오랜 기간 활동하며 언론의 최전선을 경험했습니다. 현재는 미디어파이 대표로서, 정무·언론·홍보 전반에 걸친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이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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