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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일본이 ‘대만 안보’를 자국의 생존 문제로 여기는 이유

2025년 11월 22일 오전 12:01
한국 역시 원유·가스 수입의 대부분을 대만해협과 남중국해를 지나는 해상 교통로에 의존하고 있어, 대만 주변 해역이 불안정해질 경우 에너지 조달과 산업 기반 전반이 즉각적인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대만해협의 안정은 일본뿐 아니라 한국의 장기적 국가 이익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 연합뉴스한국 역시 원유·가스 수입의 대부분을 대만해협과 남중국해를 지나는 해상 교통로에 의존하고 있어, 대만 주변 해역이 불안정해질 경우 에너지 조달과 산업 기반 전반이 즉각적인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대만해협의 안정은 일본뿐 아니라 한국의 장기적 국가 이익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 연합뉴스

대만해협을 둘러싼 긴장이 높아질 때마다 일본 정부는 ‘대만 유사(有事)는 일본 유사(有事)’, 즉 ‘대만에서 발생하는 위기는 곧 일본의 위기다’라는 표현을 반복한다. 이를 단순한 외교적 수사나 미국의 대중(對中) 견제를 돕는 정치적 구호로만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일본이 대만 안보 문제에 이처럼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이념, 외교적 문제, 동맹 정치 때문만이 아니다. 일본의 경제·안보·외교를 지탱하는 국가 시스템 전체가 대만 주변 해역의 안정성에 직접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이를 국가의 ‘운명’ 문제로 규정하는 데는 그만한 현실적 근거가 있다.

에너지 의존도가 만든 ‘국가 생명선’

일본은 고도화된 산업구조를 갖춘 경제대국이지만, 국가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 자원이 거의 없다. 원유·천연가스·석탄 어느 하나 자급할 수 없는 구조다. 미국은 셰일오일 혁명으로 일정한 에너지 자립 능력을 갖췄고, 러시아 또한 제재 속에서도 자체 생산 기반을 바탕으로 최소한의 자립이 가능하다. 반면 일본은 선택지가 극도로 제한된다.

일본이 필요로 하는 원유의 약 93%는 중동에서 수입된다. 일본의 발전·수송·산업 시스템은 이 에너지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문제는 이 원유가 반드시 해상을 통해서만 일본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초대형 유조선은 중동에서 출발해 말라카 해협을 지나 남중국해로 진입하는데, 이용 가능한 항로는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대만해협, 다른 하나는 대만 남쪽의 바시(巴士)해협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이 두 항로를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해상 ‘초크포인트(전략적 요충지)’로 여러 해 동안 지정해 왔다. 일본과 한국이 수입하는 에너지의 90%가 이 구간을 통과하기 때문이다. 대만 인근 해역은 사실상 일본의 ‘목줄’이 놓인 곳이다. 이 항로가 위협받는 순간 일본 경제는 즉각 구조적 위기로 빠질 수밖에 없다.

대만 주변 해역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장 깊이 인지하고 있는 곳은 일본 정부다. 일본 방위백서는 수십 년간 SLOC(Sea Lines of Communication·해상교통로) 확보를 국가 안보의 핵심 과제로 규정해 왔다. SLOC가 흔들리는 것은 군사적 패배나 외교적 실패보다 더 치명적일 수 있다. 일본의 산업·시장·생활 기반 전체가 그 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우회하면 된다’는 해법이 불가능한 이유

일각에서는 “대만해협이 위험하면 유조선을 태평양 쪽으로 우회시키면 되지 않느냐”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접근이다. 태평양 우회 항로는 이동 시간이 크게 늘어날 뿐 아니라 기상 변수, 해적 위험, 보험료 급등 등 여러 위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운항 시간이 늘어나면 연료비와 선박 운영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이로 인해 원유 조달 단가는 급격히 상승하고, 이는 곧 전기요금·교통비·제조업 생산비 등 일본 산업 전반의 비용 압박으로 이어진다. 일본 경제는 이미 고비용 구조와 인구 감소라는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에너지 비용까지 상승하면 제조 경쟁력은 급격히 약화되고, 산업 기반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결국 일본은 ‘우회하면 된다’는 방식을 사실상 사용할 수 없다. 대만 주변 항로가 위협받는 순간 일본은 단순한 물류 차질이 아니라 국가 기능 자체가 마비될 가능성을 우려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일본의 대만 접근은 감정적 연대나 가치 공유보다 훨씬 냉정한 ‘생존의 계산’ 위에 서 있다. 대만은 일본의 해상 생명선을 지키는 관문 그 자체라고 봐야 한다.

일본의 전략 변화…‘대만 유사(有事)’의 공개 선언

일본 정부는 오랫동안 대만 문제를 민감하게 다뤘지만, 이를 공식적으로 표현하는 데에는 신중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기조가 급격하게 변화했다. 일본의 보수·중도 진영 모두 대만을 둘러싼 군사적 위협을 일본 본토 방위와 동일한 사안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고이즈미·아베 정부를 거치며 강화된 안보 노선은 최근 다카이치 총리 체제에서 한층 공개적으로 드러났다. 다카이치 총리는 APEC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일·중 공동성명을 준수하겠다”고 언급하며 외교적 예를 갖췄지만, 회담 직후 대만 대표를 만나 ‘총통부 자문’이라고 지칭하며 사실상 독립 국가처럼 대우했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제스처를 넘어, 그동안 비공식적으로 유지해 온 미·일·대만 협력 구조를 명시적 정책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신호다. 일본이 더 이상 전략적 모호성에 의존하지 않고 대만 안보 문제를 자국 전략의 핵심으로 편입시킨 것이다.

일본이 스스로 강경해진 이유는 미국의 요구 때문이 아니다. 일본은 독자적인 전략 계산 끝에 대만 주변 해역에서 중국이 군사적 우위를 확보할 경우 자국의 해상 수송 자율성, 영해 방어 능력, 외교적 선택권이 동시에 축소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는 일본 입장에서 결코 감내할 수 없는 중대한 국가적 부담이다.

군사 제한국가에서 ‘자립적 안보국가’로

일본의 군사·안보 정책은 최근 몇 년 사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자위대는 장거리 미사일을 기반으로 한 ‘반격 능력’을 갖추기 시작했고, 방위비는 GDP 대비 2% 수준을 향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또한 일본은 미국·호주·인도·필리핀 등과의 안보 협력을 강화하고, 동남아 국가들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확대하며 지역 안보 환경을 ‘중국 견제형’으로 재편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국방력 확충이 아니라 일본이 ‘평화헌법 9조’의 제약을 넘어 실질적인 방위 능력을 확보하려는 흐름을 보여준다.

평화헌법 9조는 전후 일본이 군사력 보유와 무력 사용에 엄격한 제약을 받게 한 핵심 규범이다. 다카이치 총리가 내세우는 ‘자립적 안보국가’ 구상은 이러한 변화가 지향하는 최종 단계라 할 수 있다.

일본의 문제는 곧 한국의 문제이기도

일본이 대만 문제를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이유는 단순한 외교적 영향력이나 전략적 완충지대의 문제가 아니다. 대만이 무력으로 굴복할 경우 일본이 잃게 되는 것은 에너지 생명선, 제조업 기반, 해상 통제권뿐 아니라 미·일 동맹의 전략적 전진 배치 구조까지 포함된다. 일본 국가 시스템 전체가 충격을 받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의 대만 관여는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필요’다. 세계가 중국의 군사 행동 여부를 주목하고 있을 때, 일본이 느끼는 위기감은 훨씬 직접적이고 현실적이다. 대만의 안정은 일본의 에너지 공급과 산업 기반, 나아가 국가 존립과 직결돼 있다.

이러한 구조적 현실은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한국도 원유·가스 등 에너지의 대부분을 중동에서 수입하며, 그 물류 흐름은 대만해협과 남중국해를 거치는 동일한 해상 교통로에 의존하고 있다. 대만 주변 해역이 불안정해지면 한국 역시 에너지 조달, 교역, 제조업 기반이 즉각적인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본의 문제는 곧 한국의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국 역시 대만해협의 안정과 주변 해역의 안전 보장을 장기적 국가 이익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 지역의 지정학적 변화에 더욱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경찬 논설위원은 정치 PR 전문가로, 한국커뮤니케이션에서 정치 홍보를 담당하며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쌓았습니다. 이후 정치 보좌관으로 활동하며 정책과 정치 현장을 깊이 이해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에포크타임스 기자로 오랜 기간 활동하며 언론의 최전선을 경험했습니다. 현재는 미디어파이 대표로서, 정무·언론·홍보 전반에 걸친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이끌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