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베네수엘라 이후, 트럼프가 그리는 ‘서반구 재편’ 구상
3일,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별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 이후 기자회견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AP/연합뉴스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전격적으로 공격한 이후 국제 사회의 시선은 단순히 중남미 한 나라의 정정 불안에 머물지 않고 있다.
워싱턴이 다음으로 쿠바, 콜롬비아, 심지어 그린란드까지 거론할 수 있다는 관측이 잇따르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구상하는 장기 전략의 윤곽이 점차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흐름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서반구(미주 지역) 재정비’이며, 그 최종적인 겨냥점은 중국이라는 해석에 점차 힘이 실리고 있다.
이번 사안은 개별 국가를 대상으로 한 일회성 압박이 아니라, 미국이 다시 서반구 전체를 전략적 우선 공간으로 재규정하고, 그 안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구조적으로 차단하려는 시도의 일부로 읽힌다. 베네수엘라에서 시작된 강경 조치는 쿠바, 콜롬비아, 그린란드로 이어질 가능성이 거론되며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이 일련의 움직임이 외교·군사·경제를 분리하지 않고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기존의 점진적 압박이나 외교적 경고 수준을 넘어, 실제 행동을 통해 질서를 재편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평가된다.
베네수엘라, 경고가 아닌 실행으로 시작된 신호
베네수엘라 사태는 트럼프식 대외 전략의 성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은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전통적 명분에 더해, 마약·범죄·국가 안보라는 프레임을 결합해 개입의 정당성을 구축했다. 이는 전면전이나 장기 점령이 아니라, ‘문제 정권을 제거하는 단기 고강도 작전’이라는 형식으로 제시됐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 그 자체보다도, 미국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실제로 행동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했다는 점이다. 이는 중남미 국가들뿐 아니라,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온 외부 세력에게도 직접적인 경고로 작용했다.
베네수엘라는 중국과 긴밀한 경제·외교 관계를 유지해 온 대표적 국가 중 하나다. 그런 국가가 미국의 강경 대응을 받았다는 사실은, 워싱턴이 더 이상 서반구에서 중국의 존재를 묵인하지 않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더 나아가 이번 조치는 향후 유사한 노선에 서 있는 국가들에게 ‘정치적 선택의 비용’을 선명하게 각인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중국과의 밀착이 단기적 경제 이익을 제공할 수는 있어도, 전략적 충돌 국면에서는 국가 존립 차원의 위험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쿠바, 서반구 구상에서 다시 주목받는 이유
쿠바는 오랫동안 미국 대외정책에서 서반구에 남은 공산주의 이념의 상징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최근 흐름에서 쿠바는 상징을 넘어 실질적 전략 거점으로 재인식되고 있다. 베네수엘라와 쿠바는 정치·군사·정보 영역에서 긴밀히 연결돼 있으며, 쿠바는 베네수엘라 체제 유지의 중요한 축으로 기능해 왔다.
트럼프 행정부가 쿠바를 다시 거론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베네수엘라를 흔든 이후 쿠바까지 압박할 경우, 중남미 반미 축의 연결 고리를 근본적으로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체제 비판이 아니라, 서반구에서 중국과 협력하는 국가들이 더 이상 ‘안전지대’에 있지 않다는 메시지를 주는 효과를 갖는다.
또한 쿠바는 지리적으로 미국 본토와 가장 가까운 국가 중 하나다. 이곳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상황은 워싱턴 입장에서 전략적 부담이 크다. 쿠바를 압박하거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은, 중국이 서반구에서 활용할 수 있는 상징적·실질적 거점을 동시에 제거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쿠바 문제는 인권이나 체제 논쟁을 넘어, 미국 안보 전략의 전방선으로 다시 부상하고 있다. 쿠바를 둘러싼 변화는 단일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카리브 전체의 전략 균형을 흔드는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콜롬비아, ‘마약’ 명분 아래 드러난 전략적 계산
콜롬비아는 전통적인 미국의 우방국이지만, 동시에 트럼프 전략에서 매우 민감한 위치에 놓여 있다. 마약 생산과 유통이라는 고질적 문제는 미국이 언제든 강경 개입을 정당화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문제를 단순한 범죄 차원을 넘어, 미국 사회의 안전과 직결된 국가 안보 사안으로 규정해 왔다. 이는 국내 정치적 지지를 결집시키는 동시에, 대외 개입의 문턱을 낮추는 효과를 낳는다.
콜롬비아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지리적 위치다. 이 나라는 카리브해와 태평양을 동시에 접하며, 중미와 남미를 잇는 관문에 해당한다. 콜롬비아의 정세와 정책 방향은 중남미 전체의 물류·에너지·안보 흐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최근 중국은 콜롬비아를 포함한 중남미 국가들과 인프라·무역 협력을 확대해 왔다. 항만, 도로, 통신 분야에서의 협력은 경제적 성격을 띠지만, 미국의 시각에서는 전략적 영향력 확대로 받아들여진다.
콜롬비아에 대한 미국의 압박은 특정 국가를 겨냥한 조치라기보다, 중남미 전반에 “중국과의 밀착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짙다. 이 과정에서 콜롬비아는 ‘경고용 사례’로 기능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압박이 가시화될수록, 인근 국가들 역시 외교·경제 노선 재조정을 고민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린란드, 서반구를 넘어 북극으로 확장되는 전략
쿠바와 콜롬비아가 중남미의 남쪽과 중심을 잇는 축이라면, 그린란드는 이 전략의 최북단에 위치한다. 겉으로 보면 중남미 문제와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구상 속에서 그린란드는 서반구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
그린란드는 북극 항로, 군사 감시, 미사일 경보 체계 측면에서 중요한 지점을 차지한다. 기후 변화로 북극 항로의 가치가 커지면서, 이 지역은 미국·러시아·중국이 동시에 주목하는 전략 공간으로 부상했다. 미국이 그린란드에 강한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북극에서 중국의 진입 여지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린란드는 희토류를 포함한 자원 잠재력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중국이 장악해 온 글로벌 희토류 공급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국은 정치적으로 신뢰 가능한 지역에서 대체 자원을 확보하려 한다. 그린란드는 이러한 전략적 계산과 맞물려 있다.
결국 그린란드는 단순한 영토 문제가 아니라, 북극을 포함한 미래 경쟁 구도의 선점 여부를 가르는 상징적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공통된 방향은 중국을 겨냥한 ‘사전 봉쇄’
베네수엘라에서 시작해 쿠바, 콜롬비아, 그린란드로 이어지는 일련의 움직임을 종합하면, 하나의 공통된 방향이 드러난다. 이는 특정 국가를 응징하는 단기 정책이 아니라, 서반구와 북극을 잇는 광범위한 공간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장기 전략이라는 점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과의 경쟁을 더 이상 아시아나 무역 분야에 국한하지 않는다. 서반구, 즉 미국의 전통적 영향권에서 중국이 발판을 넓히는 것 자체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그 첫 시험대였고, 쿠바와 콜롬비아는 그 연장선에 있으며, 그린란드는 최종적인 상단 봉쇄선에 해당한다.
이 전략은 동맹국과의 마찰, 국제 사회의 반발이라는 비용을 수반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가 이 노선을 유지한다면, 이는 중국을 상대로 한 ‘사전 차단형 경쟁 전략’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베네수엘라 이후의 세계는 더 이상 개별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하나의 큰 지도 위에서 전개되는 구조적 재편의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경찬 논설위원은 정치 PR 전문가로, 한국커뮤니케이션에서 정치·선거 전략과 홍보를 담당하며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축적했습니다. 이후 한국정치사회연구소 연구위원과 정치 보좌관으로 활동하며 정책과 정치 현장에 대한 이해를 넓혔고, 에포크타임스 기자로 오랜 기간 활동하며 언론 현장의 최전선을 경험했습니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 에포크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