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리창 총리 언급한 ‘미중관계 부부론’…왕양 복귀 복선되나

리창 총리, 미 정재계 인사 간담회서 ‘미중은 부부 사이’ 비유
권력 다툼서 밀려난 왕양 전 정협 주석이 처음 사용한 용어
AP “시진핑, 뒤로 물러나 충성파 내세운 위임통치 가능성”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가 미국에서 돌연 제기한 ‘미중관계 부부론’의 등장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강경 일변도였던 중국의 대미 외교가 과거의 유화적 노선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강경 외교가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의 정책 기조였다는 점에서, 정책 주도권이 다른 인물에게 넘어가고 있을 가능성도 점쳐졌다.
지난 25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을 방문 중인 리창 총리가 미국 재계와 학계 인사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미중 관계를 ‘다툼이 있더라도 결국은 서로가 필요한 부부 사이’에 비유했다고 보도했다.
WSJ은 과거 중국 지도자들이 미중 관계를 부부 사이에 비유하곤 했으나 양국 관계가 악화된 최근에는 볼 수 없게 된 표현이라며, 중국이 미국과 관계 회복을 희망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풀이했다.
‘미중관계 부부론’은 2013년 당시 왕양 부총리가 워싱턴 미중 경제회의에서 처음 언급한 것이다. 시진핑이 집권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실력을 키우며 때를 기다림)’가 외교 기조였던 시절이다. 그러나 시진핑이 권력을 독점하게 된 19차 당대회(2017년 10월)를 계기로 중국의 외교 노선은 ‘늑대 전사(戰狼·전랑) 외교’로 전환됐다.
개혁파에 속하는 왕양은 한때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직까지 올랐으나, 시진핑이 3연임에 성공한 20차 당대회(2022년 10월)를 계기로 다른 개혁파 인사들과 함께 권력의 중심에서 완전히 배제됐다. 그는 이듬해 정협 주석직도 내려놓으며 정계에서 은퇴했다.
중국 관례상 권력에서 밀려난 지도자는 그의 발언이나 정책에 관한 언급이 금기시된다. 리창 총리가 미국 정·재계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왕양의 ‘부부론’을 언급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특히 왕양은 일부 해외 매체에서 시진핑 권력 이상설과 관련해 후계자 후보군에 올라 있는 인물이다. 그는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출신은 아니지만, 후진타오·리커창으로 이어지는 공청단에 가까운 인사로 분류된다. 공청단은 시진핑과 경쟁 관계에 있는 집단이다.
AP통신 “한 걸음 물러선 시진핑, UN서 측근 전면에”
리창 총리는 이번 유엔총회에서 시진핑 대리자 역할을 했다. 이는 AP통신 기사에서 잘 드러난다. 통신은 25일 자 ‘한 걸음 물러선 시진핑, 유엔 회의에 측근 내세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시진핑이 해외 활동을 줄이고, 핵심 측근에게 업무를 위임하는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다.
통신은 중국 공산당이 국제적 영향력을 키울 무대로 유엔총회를 중시해 왔다며 2015년과 2020년 유엔 회의에 각각 직접·화상으로 참석했던 시진핑이 “올해는 리창 총리에게 자리를 맡겼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리창 총리의 유엔 연설은 평이했다는 평가다. 그는 평화 발전, 국제 정의, 다자주의, 보호무역 반대 등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며 형식적 메시지를 전하는 데 그쳤다.
중화권에서는 오히려 리창 총리의 ‘부부론’ 발언이 나온 미국 정·재계 인사들과의 모임이 더 중요한 자리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모임 참석자들은 미국에서 중국에 우호적인 활동을 펼치는 대표적 인사들이었다. 이들에게 대미 외교를 ‘대립’에서 ‘부부 같은 관계’로 전환했음을 알리는 게 중국 공산당의 진짜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AP통신은 전문가들을 인용해 “시진핑은 국제 무대 전면에서 한 발 물러나 리창 총리에게 역할을 맡기고 있다”며 “이는 권력 이양이 아니라 충성파에게 집행을 맡기는 ‘위임 통치’에 가깝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라고 전했다.
지금까지 중국에서 충성파를 내세운 위임 통치에 성공한 지도자는 마오쩌둥과 덩샤오핑뿐이다. 둘에 이어 3세대 독재자로 분류되는 장쩌민 역시 총서기직을 후임 후진타오에 내주고도 10년 가까이 권력을 휘둘렀으나, 결국 그의 세력은 청산당했다. 차이점은 군권의 유무였다.
시진핑, 전임 독재자들처럼 위임 통치 시도하나?
마오쩌둥은 대약진운동 실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가 문화대혁명으로 재집권했고, 덩샤오핑은 퇴임 후에도 군권을 쥐고 중앙고문위원회를 통해 수렴청정했다. 장쩌민은 후진타오 시절에도 측근 장성들을 통해 군권을 발휘하며 막후 권력자로 군림했으나, 시진핑 집권 후 반부패로 군부 측근이 청산되며 세력이 크게 약화됐다.
덩샤오핑이 구축한 도광양회 기조에서 집권한 시진핑은 마오쩌둥의 종신 집권을 뒤따르고 있지만, 장쩌민과 같은 말로를 피할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장쩌민은 2022년 11월 병사하기 전, 2020년부터 본격화된 시진핑의 반부패 사정에 최측근들까지 숙청당하는 수모를 겪으며 불안감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에 비하면 시진핑은 임기 중에 권력 이상설이 제기되는 등 밀리는 모양새다. 올해 7월에는 권력 이상설이 중국 내부를 넘어 국제사회에 확산되기도 했다. 여기에는 내부에서 흘러나온 루머 외에 6월 말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보도된 ‘당 중앙 의사결정 조정 기구'(이하 조정기구) 설립 지시도 한몫했다. 중국 내부에서 권력 분산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 기구 설립이 후진타오 등 당 원로들의 요청에 따른 것이며 왕양이 대표를 맡게 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번 리창 총리의 ‘미중관계 부부론’ 발언과 맞물리는 지점이다. 왕양의 이름이 등장한 것은 중국 내 여러 의사결정 분야에서 시진핑의 권한이 위임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시진핑은 집권 3기에 성공하며 권력 집중을 강화했지만, 독재자 한 명이 모든 것을 결정함으로써 발생하는 재난을 피하려 했던 중국 집단지도체제의 필요성을 당 안팎에서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신화통신은 29일 중국공산당 제20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4중전회)가 10월 20~23일 베이징에서 열린다고 보도했다. 이번 4중전회는 공산당의 발전 방향 및 주요 인사 결정은 물론, 시진핑이 장악한 권력의 현주소가 어디인지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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