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러시아 경제,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다

3년 넘게 지속된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러시아 경제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석유 수입 감소와 서방의 고강도 제재가 겹치면서 러시아 경제는 본격적인 둔화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막심 레슈트니코프 러시아 경제개발부 장관은 지난 6월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에서 “러시아 경제가 경기 침체 직전의 벼랑 끝에 서 있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곧바로 이를 반박하며 “서방의 압박에도 러시아는 강력한 회복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드러나는 숫자는 냉정할 수밖에 없다.
성장률 하향과 석유 의존의 한계
블룸버그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러시아 주요 산업 생산량은 일제히 감소했다. 가죽 산업은 17% 이상 줄었고, 운송업도 두 자릿수 하락세를 보였으며, 광업 역시 부진했다.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러시아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두 차례 인하했지만, 전문가들은 이를 “임시 처방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7월 러시아의 2025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5%에서 0.9%로 낮췄다. 2023년과 2024년 성장률은 각각 4%대 초반을 기록했지만, 이는 군사 지출에 힘입은 전시경제 효과 덕분이었다. 문제는 올해 들어 각종 지표가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연방 예산 수입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석유·가스 판매 수익은 올해 들어 크게 줄었다. 국제 유가는 8월 초 기준 배럴당 66달러 수준까지 하락했고, EU의 18차 제재로 러시아산 원유 가격은 40달러대 후반에 머물러 충격은 더욱 확대됐다.
중국·인도 ‘든든한 동맹’의 허상
일각에서는 “EU가 제재해도 중국과 인도가 있다”는 반론을 제기한다. 그러나 실제 수치는 이를 뒷받침하지 않는다. 2024년 중국의 석유 수입은 14% 늘었지만, 러시아산 수입은 오히려 감소했다. 중국은 수입 물량을 전 세계에서 늘리면서도 러시아 의존도를 줄여온 것이다.
러시아는 중국을 포함해 인도, 터키로 수출 대상을 돌리고 있으나 가격을 크게 낮추거나 중개자를 거쳐야 하기에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했다. 석유 외 분야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러시아 기업들은 필수 장비와 부품을 서방에서 들여오지 못해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결국 기존 장비를 분해해 여러 대를 조합해 겨우 하나를 가동하는 식의 궁여지책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이는 그동안 러시아 산업이 서방 기술에 얼마나 깊이 의존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전시경제의 빛과 그림자
러시아 경제가 전시경제 덕분에 한동안 성장세를 보인 것은 사실이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사 지출이 경제를 견인했던 미국의 패턴과 유사하다. 그러나 차이는 뚜렷하다. 미국은 전시경제 속에서도 금융 완화와 산업 확장을 병행했지만, 러시아는 긴축적 통화 정책을 택하며 정반대 길을 걸었던 것이다.
군사 지출은 필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불러온다. 이를 억제하기 위해 러시아 중앙은행은 2023~2024년 금리를 급격히 인상했고, 그 결과 실질금리는 세계 최고 수준에 달했다. 민간 투자가 위축되며 민간 경제는 침체로 빠져들었다. 전시경제의 성장 효과와 고금리 압박이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2025년 이후부터 성장 둔화는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통상 이런 상황이라면 군사 부담을 줄이고 민간 경제 회복을 위해 평화를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정반대로 움직인다. 군수 산업이 경제의 유일한 버팀목이 되는 순간, 평화는 오히려 더 멀어지게 된다.
군사화가 심화될수록 푸틴 정권은 전쟁을 교착 상태로 끌고 가며 장기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중요한 질문은 “언제 바닥을 치느냐”가 아니라 “러시아 경제가 얼마나 더 깊이 군사화의 깊은 곳으로 추락할 것인가”일 수 있다.
트럼프의 노림수와 국제 정세
러시아의 취약성을 가장 날카롭게 파악하는 인물 중 하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러시아 경제가 석유·가스 의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서방 제재와 고금리 정책에 짓눌려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읽고 있다. 트럼프는 이를 기회로 삼아 미·중 간격을 벌리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그는 러시아를 끌어안는 행보를 보이며, 러시아가 중국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도를 흔들려 하고 있다. 러시아가 경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투자와 교역 파트너가 절실하다. 트럼프는 바로 그 약점을 파고들며, 장기적으로 러시아가 친중 노선보다 친미 쪽으로 기울 수 있는 여지를 만들고 있다.
이는 단순한 외교 제스처가 아니다. 러시아의 경제적 고립과 군사화 심화를 국제 정치에 활용하려는 전략적 시도로 볼 수 있다. 만약 러시아가 중국 의존을 줄이고 미국과의 관계 회복을 모색한다면, 이는 글로벌 경제와 안보 지형에 거대한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러시아 경제의 위기는 단순한 경기 침체가 아니다. 군사화라는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가는 위험한 길목에 서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동시에 이 위기는 미국·중국·러시아 3각 관계의 균열과 맞물리며, 국제 정세 전반에까지 중대한 파장을 미친다. 러시아 경제의 미래는 더 이상 러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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