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사례로 보는 중공의 유튜버 회유…핵심 기준은 ‘시진핑 비판’ 여부
중국 베이징 시내의 한 거리를 중국인 여성이 걷고 있다. 벽에는 시진핑 신시대 선전 현수막이 걸려 있다. | AFP/연합 대만의 반중공 유튜버, 최근 포섭공작원과 전화 녹취록 공개
공작원 “공산당 비판도 가벼운 건 OK… ‘객관성’ 확보 차원”
“대놓고 친중보단 중립적인 척”… 대외선전 요원 포섭 실태
중국 공산당의 이른바 ‘대외선전’ 활동을 어떻게 식별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의가 중화권 사회에서 확산하고 있다. 이번 논란은 중국어권에서 군사·국제 정세 분야 유튜버로 활동하는 한 인물이 중공 당국으로부터 선전 협조 제안을 받았다는 녹취를 공개하면서 촉발됐다.
유튜버 ‘쉬모인(徐某人)’은 지난 21일, 구독자 34만 명의 자신의 채널 ‘진실을 말하는 서모 씨’를 통해 중공 측으로부터 매달 4만 유로(약 6900만 원)를 지급하겠다는 제안을 받았다며 약 43분 분량의 녹취 파일을 공개했다. ‘쉬모인’은 한국어로 ‘서모 씨’ 정도의 의미다.
해당 녹취록은 중공 공작원 A씨와 쉬모인 간의 전화 통화 내용을 담고 있다. A씨는 쉬모인을 해외 선전 요원으로 포섭하려 하고, 쉬모인은 제안을 듣는 척하며 유도 심문을 통해 공작의 내막을 파헤친다(영상 링크).
다만, 특정 부분에서 대화 주제가 갑자기 바뀌거나 생략된 듯 매끄럽지 않게 넘어가는 지점들이 있어, 긴 통화 혹은 여러 차례 나눈 대화의 일부를 편집해 공개한 것으로 추측된다. 상대방의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구체적인 지명과 이름, 개인정보 등은 삭제됐을 가능성이 크다.
대화에서 A씨는 자신을 중공 체제 내에서 정보 업무를 담당하다가 현재는 대외선전 요원을 모집하는 일종의 ‘헤드헌터’라고 소개했다. 또한 자신의 가족이 미국 필라델피아에 거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중공의 해외 선전 요원이라고 해서 중국에 대한 모든 비판이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 중공의 핵심 이익과 직결되지 않은 사안은 언급해도 무방하며, 가벼운 비판은 오히려 ‘객관성’ 담보 차원에서 허용된다. 다만, 최고지도자인 시진핑 주석에 대한 비판만은 절대적 금기 사항이다.
노골적인 친중 선전 역시 경계 대상이다.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은연중에 시청자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전략을 취한다. 통화에서는 이를 ‘봄비가 소리 없이 만물을 적시듯’이라고 표현했다. 중공은 자유 진영의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비판해 내부 분열을 유도하는 콘텐츠를 높게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포섭 대상은 대형 유튜버보다 신원이 확실한 중소 규모 인플루언서다. 군사, 음악, 요리, 맛집 탐방, 자동차 정비 등 정치와 무관한 전문 분야에서 영향력이 있는 이들을 선호한다. 평소 정치색을 드러내지 않아야 역설적으로 메시지의 ‘객관성’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보수는 월 4만 유로 수준이며, 인지도에 따라 조정된다.
두 사람의 통화는 “정보가 너무 많아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 “채널의 방향성 등을 고려해 응답하겠다”는 쉬모인의 답변에 “한번 생각해 보라”는 A씨의 당부로 끝난다. 이때 A씨는 ‘오랜 친분’을 강조하며 외부 발설 금지를 요청하는데, 이는 최종 제안에 앞서 공작원이 오랜 시간 공들여 유대 관계를 쌓았음을 짐작게 한다.
에포크타임스는 A씨가 실제 중공 공작원인지, 해당 통화가 실재하는지 등을 독립적으로 확인하지는 못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작은 사안에서는 비판을 허용하되 핵심 문제에서는 중공을 옹호한다’는 뜻의 ‘샤오마따빵망(小罵大幫忙·소매대방망)’ 방식이 이미 정보기관 사이에서 널리 알려진 포섭 수법이라고 평가했다.
일본 산케이신문 베이징 특파원을 지낸 중국 전문가 야이타 아키오는 자신의 SNS를 통해 이번 사건에서 도출할 수 있는 세 가지 결론을 제시했다.
첫째, 대만 인플루언서 상당수가 이미 중공의 접촉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유럽에서는 중공 자금을 받은 인플루언서의 여론 공작 시도가 이미 여러 차례 보도된 바 있다. 녹취록에서 보수 단위가 ‘유로화’로 언급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야이타는 지리적 인접성과 전략적 중요성을 고려할 때, 중공이 대만을 상대로 공작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분석했다.
둘째, 거부하기 힘든 금전적 유혹이다. 야이타는 “매월 4만 유로의 보수는 대만 유튜버에게 엄청난 수입”이라며 “월 수입 15만 대만달러(약 700만 원)만 넘어도 성공한 축에 속하는 현실에서 10배에 달하는 보수는 거절하기 힘든 유혹”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부 유명 인플루언서들이 대만 주권이나 민주주의 등 핵심 현안에서 베이징과 일치된 입장을 취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셋째, 대외 선전 요원을 판가름하는 결정적 기준은 ‘시진핑 주석에 대한 공개 비판 가능 여부’다. 야이타는 중공 체제가 극단적으로 중앙집권화되어 있어 최고지도자를 비판할 경우 유튜버뿐만 아니라 그를 포섭한 공작원과 윗선 조직 전체가 위험에 처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따라서 평소 중국을 비판하더라도 시진핑에 대해서만은 침묵한다면 선전 요원인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중공이 특정 사안만을 ‘금기선’으로 제시한다는 주장은 과거에도 있었다. 1989년 톈안먼 사태의 주역인 탕바이차오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중공 측으로부터 톈안먼 추모 활동이나 민주화 요구는 계속해도 좋으니 파룬궁 지지만은 하지 말아 달라는 조건으로 금전적 지원을 제안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이번 녹취 공개와 관련해 자신의 X(옛 트위터) 계정에 “중공의 대외선전은 매우 교묘한 방식으로 진행된다”며 “여론이 또다시 이러한 공작에 휘말리지 않도록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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