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베이징 열병식, 한국과 일본 지도자 불참의 배경

중국은 오는 9월 3일 베이징에서 대규모 군사 열병식을 개최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번 행사를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이끄는 일본 정부는 유럽과 아시아 각국 지도자들에게 행사 불참을 요청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불참을 확정하며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한다”는 기존 노선을 공식적으로 폐기하겠다고 선언했다. 흔히 ‘친중’ 성향으로 평가받던 양국 지도자들이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중국의 반일 감정 자극과 일본의 대응
중국은 최근 반일 감정을 고조시키며 일본을 향한 불안과 분노를 부추기고 있다. 일본 교도통신은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일본 정부가 외교 채널을 통해 각국에 “베이징 열병식에 참석하지 말라”고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이번 행사가 중국의 역사적 주장을 바탕으로 강한 반일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중국 외교부는 일본에 강하게 항의하며 해명을 요구했다. 일본이 전통적으로 온건한 대중 정책을 취해왔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처럼 중국에 맞서는 태도는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예야오위안 미국 세인트토머스대 국제학과 교수는 “패전국 일본은 과거 중국의 승전 기념 행사에서 발언을 자제해 왔으나, 이제는 피상적인 평화를 유지하기보다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2008~2009년 이후 중국의 반일 감정 조장으로 양국 관계는 이미 긴장이 고조됐으며, 현재 일본 내에서도 반중 감정이 확산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린셴선 국립대만사범대 동아시아학과 교수는 “시진핑 주석은 민족주의를 고취해 애국심을 자극할 필요가 있고, 일본이 가장 적합한 상대가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중국 내에서 일본인을 겨냥한 폭행이나 살해 사건이 발생하고 있어 일본 정부가 당연히 경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7월 말 난징 대학살을 다룬 영화 ‘난징 사진관’이 개봉하면서 반일 감정이 더욱 증폭됐다. 이에 주중 일본 대사관은 7~9월 중국 내 일본 국민들에게 안전 유의를 긴급히 당부했다.
또한 일본 정부는 8월 26일 ‘경영·관리’ 비자의 투자 요건을 강화해 최소 투자금액을 500만 엔에서 3000만 엔으로 올리고, 신청자의 학력·경력 조건도 대폭 상향했다. 이전에는 이 비자를 통해 입국한 외국인의 절반이 중국인이었기에, 사실상 중국인을 겨냥한 조치라는 해석도 나온다. 특히 중국인들이 자위대 기지 인근 토지를 매입하는 사례가 보도되면서 일본 사회의 경각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한국, ‘양다리 전략’ 폐기 선언
올해 6월 취임한 이재명 대통령은 8월 25일 방미 기간 중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한 뒤 워싱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설에서 “한국은 더 이상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길을 가지 않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를 “한국이 오랫동안 유지해온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기대는 이른바 ‘양다리 전략’을 공식적으로 포기한 것”으로 해석한다. 과거 미국이 이를 용인했던 이유는 미국 역시 중국과 긴밀한 경제적 이해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미·중 무역전쟁 이후 미국은 동맹국들의 이중 전략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이러한 기조는 더욱 분명해졌다. 한국이 안보 문제에서 미국 편에 설 수밖에 없는 구조가 굳어진 것이다. 실제로 이재명 대통령은 과거 중국 문제에 비교적 온건했지만, 이번 결정은 분명한 변화라는 평가다.
역사적 교훈과 중국 의존의 한계
이재명 대통령은 오는 9월 열병식에 직접 참석하지 않고 우원식 국회의장을 대신 파견하기로 했다. 이는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 퍼레이드에 직접 참석했던 것과 대조된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중국이 북한 위협을 완화해 줄 것이라 기대했지만, 이듬해 북한은 연속적으로 핵실험을 강행했다. 시진핑은 박 전 대통령의 전화를 받지 않았고, 중국 국방부는 한국 국방장관과의 통화도 거부했다.
결국 한국은 사드(THAAD) 배치를 허용했고, 중국은 ‘한한령’으로 보복에 나섰다. 이는 한국이 중국에 지나치게 기댔을 때 얻을 실익이 제한적이라는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전문가들은 이재명 대통령이 이번에 방중을 피한 것도 이러한 경험을 의식한 결과라고 본다. 즉, 중국에 기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미·중 전략 경쟁 속 한국과 일본의 선택
최근 국제 정세 역시 한국과 일본의 선택을 뒷받침한다. 미·중 갈등은 장기화되고 있으며, 미국은 한국·일본과의 안보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한국과 일본이 안보와 경제 모두에서 미국과 협력을 확대하고, 중국과의 거리를 조절하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경제적으로도 중국의 매력은 크게 줄었다. 일본 역시 과거만큼 중국 시장에서 얻는 이익을 누리지 못한다. 따라서 실리를 중시하는 양국 지도자들이 중국보다는 미국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번 베이징 열병식을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결정은 단순히 참석 여부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는 미·중 전략 경쟁의 본격적 편 가르기 속에서 두 나라가 ‘미국 편에 선다’는 신호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물론 앞으로의 정세 변화에 따라 변수가 생길 수 있겠지만, 일단 이번 불참 결정은 양국이 실리를 우선시하며 미국과의 연대를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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