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위된 태자’ 후춘화, 시진핑 퇴진설 와중 존재감 ‘꿈틀’

후진타오 낙점한 후계자…최근 정치 활동 강화
부주석 신분으로 정협 상무위 회의 ‘이례적’ 주재
중국 공산당 총서기 시진핑(習近平)이 군 장악력을 상실한 채 퇴진 압박을 받고 있다는 관측이 이어지는 가운데, 베이징 고위층 내에 이상 징후와 정보 유출 정황이 잇따르고 있다.
이 가운데 최근 눈에 띄는 것은 후춘화(胡春華)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부주석의 공개 행보다.
후춘화는 지난 23일 베이징에서 ‘경제 체제 개혁 심화’를 주제로 열린 정협 전국위원회 상무위원회 회의(제12차)에 참석했다. 여느 때와 다른 점은 후춘화가 주재자로 이날 회의를 이끌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정협 상무위 회의는 대부분 정협 주석인 왕후닝(王滬寧)이 주재했다. 정협 주석은 한 명이지만, 부주석은 스물네 명이다. 서열도 1위부터 24위까지 세세하게 정해져 있다. 후춘화는 그중 서열 2위다.
시사 평론가 저우샤오후이(周曉輝)는 “부주석 중에서도 서열 2위인 후춘화가 정협 상무위 회의를 주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례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저우 평론가는 또 다른 특이점도 지적했다. 그는 “국무원 총리 허리펑(何立峰)이 회의에 보고자로 참석했는데, 분야별 개혁 추진 과정에서 협조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이전과 달리 먼저 시진핑을 언급하지 않고 뒤로 미뤘으며 과거처럼 치켜세우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후춘화 중국 공산당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부주석 | EPA/연합
후춘화는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이 ‘차기 후계자’로 점찍었던 인물로, 같은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출신 인사다. 그러나 2022년 제20차 당대회에서 공청단 세력이 전면 퇴장하면서 같은 공청단 파벌인 리커창(李克強), 왕양(汪洋)과 함께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폐위된 태자’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시진핑 체제에 이상 조짐이 감지되며 후춘화의 활동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당 기관지에 그의 이름으로 된 논설이 실렸고, 12월에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포럼에 참석, 시진핑의 축사를 대독하고 주요 인사들과 면담했다. 이는 국가 부주석인 한정(韓正)의 역할이었지만 정협 부주석인 후춘화가 대신했다.
후춘화는 올해 들어서도 3월 말 안후이성 시찰, 4월 서아프리카 3개국(나이지리아·코트디부아르·세네갈) 순방, 5월 주중 베트남 대사관 조문 방문, 6월 랴오닝성 농촌 산업 조사 등 활발한 공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간의 조용한 행보와는 매우 대비된다.
그 배경에는 후진타오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지난 5월 19일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1면 머리기사에서 ‘과학적 결정, 민주적 결정, 법에 의거한 결정’을 집중 조명했다.
이는 후진타오의 통치 이념이자 13년 전 그가 시진핑에게 총서기직을 이양하며 언급한 ‘마지막 지시’였다. 시진핑은 지난 4월 말 상하이 시찰 도중 이 발언을 거론했는데, 인민일보는 이를 기록해 뒀다가 보름 만에 ‘뒤늦게’ 돌연 신화통신과 함께 보도했다.
공산당 관영 매체들의 태세 전환은 점차적으로 후진타오와 그의 파벌인 공청단 세력이 떠오르는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는 게 저우 평론가의 견해다.
그는 “공식 직함상 ‘정협 부주석’에 불과한 후춘화가 정협 주석이나 국가 부주석과 비슷한 위상으로 등장하는 것은 배후 세력, 즉 공산당 원로들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정협 회의에서의 행보나 일련의 고위 외교 활동은 사실상 ‘정치적 자산 쌓기’에 들어간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내부 소식에 정통한 평론가 차이셴쿤(蔡慎坤)은 지난달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중국의 경제 침체와 비우호적인 국제 정세, 시진핑의 건강 이상이 겹치면서 당 원로들이 시진핑의 퇴진을 집단적으로 압박하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중국 민간에도 일정 부분 전해지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일 산시성 주민 수백여 명은 시진핑을 규탄하는 공동 서한을 발표했는데, 수신자가 후진타오와 왕양이었다. 이 서한에서는 시진핑의 ‘가짜 반부패’, ‘법치 붕괴’에 항의하면서 후진타오 등에게 해결을 요청했다.
대만에서 활동하는 시사 평론가 두정(杜政)은 대만 매체 ‘상보’ 기고문에서 “당내 원로들이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시진핑 퇴진을 공식 요구하게 된다면, 제4차 전원회의는 ‘책임 추궁 회의’로 전환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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