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크타임스

시진핑, 내쳤던 후진타오 권위에 의존…“권력 변동 신호”

2025년 06월 03일 오전 11:00

시진핑, 상하이 시찰 도중 13년 전 후진타오 ‘마지막 지시’ 언급
닛케이 “지금까지의 중앙집권과 정면 배치…정치적 전환”

중국 공산당 내부 권력투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퇴임한 후진타오(胡錦濤) 전 공산당 총서기의 2012년 고별 발언이 관영 매체에 의해 돌연 재조명되면서 정국 변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 관영 인민일보와 신화통신은 지난 19일, 후진타오가 퇴임 직전 당대회에서 남긴 “과학적 결정, 민주적 결정, 법에 의거한 결정을 고수해야 한다”는 발언을 나란히 게재했다. 특히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이를 1면 톱기사로 보도하며 중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해당 발언은 2012년 11월 제18차 당대회 당시 후진타오가 총서기직을 시진핑(習近平)에게 넘기며 남긴 마지막 지시였다. 당시 후진타오는 3대 지시 외에도 “당내 감시와 민주적 감시, 법치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집권 14년 차에 접어든 시진핑이 전임자의 발언을 갑자기 인용하고, 당 기관지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특히 ‘민주적 결정, 법에 의거한 결정’은 시진핑이 집권 후 추진한 1인 중앙집권 체제와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또한 ‘과학적 결정’은 후진타오의 통치 이념이었던 과학적 발전관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에 이번 언론 보도가 단순히 시진핑이 과거의 사건을 회고하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일종의 정치적 신호를 보낸 것이라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일본 닛케이 아시아의 선임 논설위원 나카자와 가쓰지(中澤克二)는 지난 29일 “시진핑 집권 13년 동안 당의 결정을 철저히 상명하달 방식으로 바꾸고 권력을 1인에 집중시켰다”며 “이는 후진타오가 남긴 메시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분석했다.

나카자와 위원은 이 발언이 지난 4월 30일 상하이를 시찰하던 시진핑이 언급한 것인데, 관영 매체가 3주 후에나 공식 보도한 점에 주목했다. 그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뭔가 이상한 흐름이 감지된다”고 짚었다.

나카자와 위원은 외부에서는 알기 힘든 중국 공산당 내부 소식을 자주 정확히 보도해 왔다. 그는 지난 2023년 중국 공산당의 비공개 모임인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당 원로들과 시진핑 사이에 긴장감이 고조됐으며, 시진핑이 당 원로들의 조언에 격분했다고도 전했다.

이번 시진핑의 후진타오 지시 재조명은 2022년 10월 전 세계에 충격을 줬던 제20차 당대회 폐막식 장면과 맞물려 그 파장이 깊어지고 있다. 당시 후진타오가 시진핑의 지시에 의해 강제로 퇴장당하는 모습은 권력 교체의 비정함을 나타낸 사건으로 회자됐다.

그러나 전 세계인 앞에서 후진타오에게 모욕 주기를 꺼리지 않았던 시진핑은 채 3년이 지나지 않아 후진타오의 마지막 지시를 소중한 가르침처럼 언급했다.

나카자와 위원은 “시진핑의 1인 독재 체제와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라며 “당내 권력 구도가 실질적으로 변화하면서, 시진핑이 불가피하게 후진타오의 권위를 빌린 것일 수 있다”고 관측했다.

그는 또 “군부 내 대대적 숙청도 여전히 진행 중이며, 시진핑의 측근으로 파격 승진했던 장성들마저 잇따라 낙마하고 있다”며 베이징 정국의 불확실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시 주석의 신임을 받아 중용됐던 먀오화(苗華) 전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겸 정치공작부 주임이 기율 위반 혐의 등으로 조사를 받고, 허웨이둥(何衛東) 중앙군사위 부주석이 실종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흥미로운 변화로 지적되는 것은 후춘화(胡春華)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부주석을 비롯한 공산주의 청년단(공청단) 계파 인사들의 최근 활동이 관영 매체에 빈번히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후진타오는 공청단을 대표하는 인물이었으며, 후춘화 부주석은 후진타오가 낙점한 시진핑의 후계자였다. 그러나 시진핑은 20차 당대회에서 2연임을 확정한 후 후춘화를 의도적으로 중앙 정계에서 배제했다.

이로 인해 후춘화는 실권이 약한 정협 부주석에 머물며 수년간 언론의 외면을 받았으나, 지난해부터 중국 여러 지방과 기관을 시찰하는 모습이 뉴스에 보도되기 시작했고 외국 방문 소식도 전해졌다.

나카자와 위원은 “20차 당대회에서 리커창(李克強), 후춘화, 왕양(汪洋) 등 공청단 출신 지도자들이 모두 권력 핵심에서 배제됐던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이들의 등장이 잦아진) 보도 경향은 정치 지형 변화의 징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닛케이의 분석은 ‘시진핑의 권력이 겉으로는 유지되고 있으나 실제로는 상당 부분 무력화됐으며, 후진타오와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 장여우샤(張又俠) 중앙군사위 부주석 등이 정국의 실세로 부상했다’는 중국 문제 전문가들의 견해와 궤를 같이한다.

2025년은 중국 정국에 있어 중대한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