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내고 출근’ 유료 인턴십 성행…달라진 中 취업 풍속도

강우찬
2024년 06월 19일 오후 3:39 업데이트: 2024년 06월 19일 오후 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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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IT기업은 웃돈 줘야…중개업체 믿다가 사기도

중국의 대졸자 취업문이 해마다 좁아져 가는데, ‘스펙’이 아쉬운 청년층을 겨냥한 유료 인턴십이 급증하면서 중개업체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중국어로 ‘비용을 지불하고 출근한다’는 의미의 유료 인턴십(付費上班)은 대졸(예정)자들이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거나 혹은 무료로 인턴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돈을 주고 인턴에 채용되는 경우를 가리킨다.

이때 대졸자들이 돈을 건네는 대상은 인턴십 기업이 아니라, 인턴십 채용 중개업체다. 즉 소개비를 내는 것이다.

이는 심각한 취업난에 인턴십 경쟁마저 치열해지면서 생겨난 중국의 신(新)풍속이다. 중국 경제가 잘나가던 시절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지만 지금은 현실이다.

게다가 ‘좋은 회사에 인턴으로 넣어주겠다’며 알선비만 챙기고 내빼는 사기가 기승을 부리면서 청년들을 울리는 일도 늘어나고 있다.

베이징 청년보 등 현지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올해 대학 졸업 예정자들은 높은 청년실업률과 치열한 취업 경쟁으로 인한 심각한 고용 불안감 속에서 인턴십 중개업체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중국 소셜미디어에는 “돈을 내면 가고 싶은 업종이나 유명 기업에 인턴십 채용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며 이력서 컨설팅, 인턴십 알선부터 정규직 전환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업체 홍보들이 쏟아진다.

일반적으로는 기업 인턴십에 채용되려면 이력서만 제출하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유급 인턴십’을 받으려면 업종에 따라 적게는 8천 위안(약 151만원)에서 1만9천 위안(약 360만원)에 달하는 알선비를 주선업체에 내야 한다.

중국 대표적인 온라인 구직·구인 사이트 ‘즈롄’이 올해 1월 발표한 작년 4분기 중국 도시별 임금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한 상하이의 평균 월급이 1만3888위안(약 263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웬만한 도시 근로자의 한두 달 치 월급을 알선비로 줘야 하는 실정이다.

업계에서 잘 알려진 회사의 경우 웃돈을 얹어줘야 할 때도 있다. 구직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중국의 유명 인터넷 기업은 인턴십 알선 수수료가 1만5천~2만5천 위안에서 시작한다. 인턴십 채용 성공률은 50%로 알려졌지만 정확한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이러한 중개업체의 광고에는 “유명 기업에서 인턴십을 하면 이력서에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 “인턴십 승진을 통해 새로운 직장으로 옮길 기회를 얻는다”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기업 입장은 중개업체들의 이야기와 다소 차이가 있다. 한 기업 관리자는 “인턴십 비용을 지불하고 채용되는 대학졸업생 상당수가 인턴십을 진행할 만한 수준이 아닌 경우도 있다”며 “자신이 인턴십에 지원할 역량이 있는지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유료 인턴십을 내세운 사기도 기승을 부린다. 최근 중국의 소비자 불만 접수 사이트에는 ‘허위 광고’, ‘소비자 사기’, ‘환불 거부’ 등 유료 인턴십 중개업체에 대한 불만이 다수 접수됐다.

지난달 한 소비자는 “한 중개업자가 국유기업 여러 곳에 연줄이 있어 바로 인턴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약속하면서 “정규직 발탁 노하우 교육비 등으로 추가적인 비용을 언급하며 2만 위안(약 379만원)을 요구했다”고 신고했다.

또 다른 불만 사례로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사기에 속은 피해자만 수십 명에 피해액은 약 100만 위안(약 1억 8천만원)으로 전해졌다.

중국에서 ‘유료 인턴십’이란 말이 등장한 것은 지난 2022년 한 구직 전문가가 “업무 경험을 쌓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제안하면서부터다.

그의 제안에 따르면 유료 인턴십 중개업체들은 수수료의 일부를 기업에 제공하고, 기업들은 이를 통해 중국 경제 침체를 해쳐나갈 자금 조달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만 위안의 돈을 내고서 계약서 없이 혹은 무급으로 2~3개월 근무하고도 그대로 인턴십 종료와 함께 다시 실직자 신세로 돌아가는 현상이 이어지면서, 일부 기업들이 이 관행을 악용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중국 전문가 리닝은 “유급 인턴십은 극심한 취업난으로 빚어진 중국의 기현상”이라며 “공짜로 노동력을 이용하려는 기업에서 좋은 경험을 쌓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