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유럽 의회 비판에도 파룬궁 탄압
우크라이나 침공 후 대중 의존성 높아…5월 푸틴 방중 관련성도
러시아 당국이 “바람직하지 않은 단체의 불법 활동” 등을 이유로 자국 내 파룬궁 수련자들의 자택을 압수수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서 시작된 심신수련법인 파룬궁과 그 수련자들은 중국이 가장 우선적으로 탄압하는 대상이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대중 의존도가 높아진 러시아가 중국 공산당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RIA 등 러시아 국영매체는 3일 러시아 연방수사위원회 발표를 인용해 모스크바 경찰이 모스크바에 거주하는 파룬궁 수련자의 자택들을 기습해 4명을 연행하고 파룬궁 수련서와 관련 문서 등을 압수했다고 보도했다.
체포된 수련자들에게는 러시아 연방 형법에 따라 블랙리스트로 지정된 단체에 소속돼 불법 활동을 벌인 혐의가 적용됐다.
해당 블랙리스트는 러시아 법무부가 작성한 ‘바람직하지 않은 단체’ 목록으로 2015년 제정된 관련법에 따라 지금까지 약 100개 이상의 단체가 등록됐으며 현 체제를 비판하는 언론인이나 인권 활동가들을 추적·압박하는 데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법에 따르면, 블랙리스트에 등록된 단체의 목적을 수행하는 활동에 참여할 경우 최고 6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러시아 국영매체들은 이번 소식을 전하면서 ‘금지된 중국 종파’, ‘중국서 체제 전복 시도’ 등 중국 공산당이 파룬궁을 탄압할 때 사용하는 구실을 언급했다.
공식 대외 창구인 파룬궁 정보센터의 레비 브로우드 대변인은 “러시아 국영매체들이 중국 공산당의 거짓 선전을 그대로 되풀이 했다”고 주장했다.
브로우드 대변인은 “러시아의 파룬궁 수련자들은 명상을 하거나 파룬궁의 수련원칙을 연구하며 진실, 선량, 관용(인내)을 생활에서 실천하려고 했을 뿐”이라며 “러시아 당국이 이런 이유만으로 수련자들을 체포한 것은 잘못된 조처”라고 밝혔다.
그는 이번 사건의 배후에 중국 공산당의 압력이 있을 것으로 추측하면서 “현재 파룬궁은 전 세계 100개 이상의 국가에서 자유로운 수련 환경을 보장받고 있다”며 “하지만 공산주의 중국은 유독 파룬궁 수련자들을 악마화하고 박해한다”고 덧붙였다.
신변 안전을 이유로 익명으로 취재에 응한 모스크바의 한 파룬궁 수련자는 에포크타임스에 “수련생들은 절차에 따라 관련 기관에 등록된 단체를 통해 합법적으로 활동했다”고 말했다.
미국 백악관에서도 이번 사건에 관심을 보였다.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대변인은 에포크타임스 자매 매체 NTD에 “우리는 이 사건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며 “미국은 파룬궁을 포함해 종교 박해를 받는 단체를 위해 목소리를 내왔다”고 논평했다.
미 정부기구인 국제종교자유위원회(USCIRF)에서도 이번 압수수색에 대해 비판 입장을 밝혔다. 위원회 소속 수지 겔만 위원은 에포크타임스에 “최근 모스크바에서 파룬궁 수련생 4명이 종교적 신념과 관련 자료 배포를 이유로 구금된 것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겔만 위원은 “러시아가 파룬궁 관련 단체를 ‘바람직하지 않다’며 금지한 것은 국제적으로 보장되는 종교 및 신앙의 자유를 명백히 침해한 것”이라며 “모든 파룬궁 수련자와 기타 종교 단체에 대한 기소를 중단하고 종교 및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모스크바 경찰, 텔레그램 채널 통해 급습 장면 공개
러시아는 지난 2022년 2월 중국과의 정상회담에서 ‘무제한 협력’을 공언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직전 이뤄진 이 정상회담은 양국이 서방의 견제에 맞서 철저한 파트너가 되겠다는 제스처였다.
중국 기업들은 서방의 제재로 어려움을 겪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달 중국을 방문할 계획이다. 이는 지난 3월 재선에 성공해 5선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첫 해외 방문이다. 푸틴의 중국 방문을 앞두고, 러시아 당국이 중국 공산당에 일종의 제스처를 보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텔레그램에 공개된 급습 장면도 이러한 맥락으로 이해된다.
모스크바 경찰이 공식 텔레그램 계정에 올린 급습 영상에는 경찰이 아파트 문을 발로 차고 침실 문 근처에서 한 청년을 바닥에 쓰러뜨리는 장면이 담겼다. 한 경찰관은 쓰러진 청년의 등을 무릎으로 짓누르며 제압했다. 이 청년은 파룬궁 수련자가 아니라 동생인 것으로 현지 소식통에 의해 확인됐다.
또 다른 영상에서는 한 경찰관이 왜 문을 열지 않았느냐고 추궁했고 여성은 “옷을 입어야 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영상에는 두 자녀를 침대 옆에 둔 한 남성이 경찰관에게 자신은 잘못하거나 불법적인 일을 하지 않았다고 설명하는 모습이 담겼다. 이 남성은 “우리는 단지 수행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 급습으로 연행된 4명 중 1명인 나탈리야 미넨코바는 4일 법정에 출두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유엔 난민지위 인정된 파룬궁 수련생 중국 송환 전력
러시아 연방헌법에서는 국민에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 연방정부가 서명한 유엔 인권선언 제18조에 따라 ‘모든 사람은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러시아 당국은 2011년에는 수련서적인 ‘전법륜’을 금서로 지정하고 파룬궁 수련자들을 오랜 기간 탄압해왔다.
당시 유럽 의회는 이러한 조치를 종교 탄압이라고 비난했으며, 2023년 유럽인권재판소는 러시아 당국의 파룬궁 관련 자료 금서 지정이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2017년에는 유엔 난민지위를 인정받은 중국계 파룬궁 수련자 마후이와 그녀의 8살 딸 마징이 러시아 당국에 의해 중국으로 강제 송환된 사건도 있었고, 지난해 11월에도 모스크바 등 주요 도시에서 경찰의 파룬궁 수련자 자택 급습이 이뤄졌다.
이러한 경찰의 압수수색은 근거가 없다는 게 미 국무부의 공식적인 견해다. 국무부는 최근 인권보고서에서 “(러시아는) 폭력적인 행동이나 의도에 대한 신뢰할 만한 증거 없이” 파룬궁 지부와 관련 비영리 단체 7곳을 겨냥해 “반테러 및 반극단주의 법”을 잘못 적용했다고 지적했다.
파룬궁은 진실 선량 인내(眞善忍)를 원칙으로 하는 중국의 명상수련법이다. 파룬따파 정보센터에 따르면 1992년 일반에 공개됐으나 이전부터 중국의 수련문화에 따라 오랜 기간 전승돼 왔다. 일반 공개 이후에는 건강 증진과 도덕성 향상 효과가 소문이 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중국 공산당 정권은 파룬궁의 인기를 정권에 대한 위협으로 여기고 약 7년 만인 1999년 7월부터 탄압을 시작했다. 탄압에는 수련자에 대한 위협이나 체포, 강제 노역형, 강제 퇴직·퇴학, 정신적 괴롭힘, 고문, 강제로 장기를 적출하는 방식의 살해 등이 동원됐다.
1999년 탄압 직전까지 약 7천만 명 이상이 파룬궁을 수련한 것으로 중국 국가체육총국은 추산한 바 있다.
* 이 기사는 에바 푸 기자가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