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급해진 中, 싱하이밍 ‘사회주의식 설득’ 무엇 얻었나

한동훈
2023년 06월 12일 오전 11:33 업데이트: 2023년 06월 12일 오전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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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국 인사 초청해 작심발언, 언론엔 보도자료
중국 안 진다는 이유로는 “시진핑 지도력” 언급
“공동의 적 일본”…한국과의 통일전선 합작 속내
한국 사회 반감 아랑곳 않고 ‘이건 통한다’는 확신

중국 외교관이 한국을 상대로 거친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한미 동맹과 한미일 공조 회복에 따른 초조함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는 지난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대사관저로 초청해 15분간 한국 정부에 대한 성토를 쏟아냈다. 민주당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이 만남을 생중계하던 이재명 대표 측으로서는 머쓱한 일이었다.

이재명 대표는 이날 회동 모두발언에서 “오늘도 통역이 없는 상태에서 말씀을 나누게 되니까 진의가 왜곡되지 않고 변형되지 않고 잘 전달될 수 있어서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진솔한 의사소통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 대표의 모두발언에서는 대중 무역적자 문제,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처한 어려움 해소, 북한의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 등 이날 회동을 통해 산적한 양국 간 현안에 대해 협력 방안을 논의하겠다는 취지가 담겨 있었다.

특히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처리수 방류 문제와 관련해 “가능하면 목소리도 함께 내고, 또 공동의 대응책도 강구해봤으면 좋겠다”며 합작 의사를 타진했다.

‘후쿠시마 방류’는 최근 돈봉투 의혹, 김남국 의원 코인 사태, 이래경 혁신위원장 낙마 등 거듭된 악재에 휘청거리는 민주당이 국면 전환의 계기로 삼으려는 이슈다.

민주당 서울시당이 5일 국회에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 반대 서명운동본부 발대식을 하고 있다. 2023.6.5 | 연합

악재 겹친 민주당, ‘준폭동’ 외부동력 모색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8일 YTN 라디오 ‘뉴스킹’에 출연해 다음 달 후쿠시마 방류 개시를 언급하며 “주부들이 난리 나면 이것은 사회적인 준폭동 상태까지 갈 것”이라며 말했다.

안민석 의원은 민주당이 “심리적 분당 상태”에 빠져 있다면서 “내부 동력으로 늪을 빠져나가기는 좀 어려울 것 같다”며 준폭동 상황을 외부 동력으로 삼아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싱하이밍 대사는 이러한 민주당의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는 오히려 이재명 대표와의 회동을 한국을 꾸짖는 기회로 삼았다.

싱하이밍은 “중국 정부는 한국과 중한 관계를 매우 중시하며, 중한 관계를 잘 발전시키려 심혈을 기울여 왔다”며 “하지만 현재 중한 관계가 많은 어려움에 부딪혔다. 솔직히 그 책임은 중국에 있지 않다”고 포문을 열었다.

한국의 대중 무역적자 폭 확대에 관해서는 “글로벌 경제 상황이 좋지 않고 반도체 경기가 하강 국면에 들어서는 등 객관적 원인 때문이기도 하다”면서 “일각에서는 ‘탈중국화’를 추진한 것이 더욱 주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싱하이밍은 한국이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 데 베팅을 하고 있다”며 “이는 분명히 잘못된 판단이며 역사의 흐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잘못된 판단’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로는 “(이런 판단을 하는 사람들은) 중국 인민들이 시진핑 주석님의 지도하에 중국몽이란 위대한 꿈을 한결같이 이루려 하는 확고한 의지를 모르며 그저 탁상공론만 한다”고 밝혔다.

중국이 미국과의 경쟁에서 패배하지 않을 이유로 ‘시진핑의 지도’, ‘중국몽을 이루려는 인민의 확고한 의지’를 꼽은 싱하이밍 대사의 발언은 사회주의 국가 특유의 사고방식을 드러낸 부분이다.

한국 외교부, 신속한 대응…싱하이밍 초치

한국 외교부는 다음 날 싱하이밍 대사를 초치해 “외교 관례에 어긋나는 비상식적이고 도발적인 언행”이라고 엄중 경고하고 강력한 유감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또한 싱하이밍 대사가 다수 언론 매체 앞에서 “사실과 다른 내용”을 퍼뜨려 우리 정부 정책을 비판했으며 이는 “우리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내정간섭에 해당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 | 연합뉴스

싱하이밍의 한국 정부에 대한 내정간섭 수준의 발언은 그의 대사 부임 직후부터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진 일관된 일이다.

그는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발생한 중공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강타한 위중한 시기였던 2020년 1월30일 주한 중국대사 업무를 시작한 싱하이밍은 닷새 뒤인 2월4일 서울 명동 주한 중국대사관에서 코로나 언론 브리핑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싱하이밍은 한국 정부의 후베이성 방문자 입국 금지 조치와 관련해 “제가 많이 평가하지 않겠다”면서도 국가 간 이동 및 교역 제한을 반대한다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입장을 인용하며 간접적인 유감의 뜻을 밝혔다.

이듬해인 2021년 4월21일에는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중국의 김치 왜곡, 한복 공정에 관해 한국 언론의 잘못된 보도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탓했다. 진행자 김어준은 “중국과 한국이 대결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해당 방송에서 싱하이밍은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언급하며 “중국은 사드를 통해 위협받았다”, “(한국이) 진정한 다자주의를 실천해 나가면 대단히 고맙겠다”며 한국의 민감한 외교 사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표시했다.

대선 개입 논란도 일으켰다. 싱하이밍은 2021년 7월16일 중앙일보 기고문을 통해 전날 윤석열 대통령(당시 전 검찰총장)의 언론 인터뷰에 대해 반박하며 중국의 국방력은 한국에 절대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외국 대사가 주재국의 차기 대선 주자의 외교·안보 정책에 관해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평가됐다. 외교부는 외교적 결례라며 항의했고, 일각에선 중국 공산당이 한국 대선에 개입하는 것이라는 분석까지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8일 저녁 성북구 중국대사관저에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를 만나고 있다. 2023.6.8 | 국회사진기자단/연합

싱하이밍, 대사 부임 이전에도 한국서 잦은 무례

싱하이밍은 대사로 부임하기 이전부터 한국 근무 당시 참사관, 공사참사관(공참) 신분으로 한국 국회의원과 장관에 무례한 발언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주한 중국대사관 참사관으로 근무하던 2004년 5월20일 대만 천수이볜 총통의 취임식 참석 의사를 밝힌 여야 국회의원에 전화를 걸어 “참석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이는 중국 외교부 과장급인 참사관이 주재국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에 내정간섭 발언을 한 것이다. 현재 국장급인 대사로 부임 중인 싱하이밍이 한국 의전서열 8위인 제1야당 대표 이재명 의원에게 만찬회동에서 일장 훈시한 상황과 그림이 겹쳐진다.

싱하이밍은 공사참사관 신분으로 근무하던 2010년 5월 당시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장신썬 주한 중국대사에게 천안함 폭침 사건과 관련 “중국의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하자 통역관으로 배석해 있던 중 “너무 심한 것 아니냐”며 끼어들어 물의를 빚었다.

중국 대사관 측은 싱하이밍 대사의 만찬회동 모두발언을 언론에 보도자료로 배포했다. 한국인들에게 널리 알려달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싱하이밍 대사는 모두발언 첫머리에서 “중한 양국은 이사 갈 수 없는 이웃이고 떼려야 뗄 수 없는 동반자”라며 “근대 이후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중한 양국 국민은 한마음으로 함께 공동의 적에 대항하며 어려움 속에서 서로를 도왔다”고 말했다.

이어 중한관계의 중요성과 한국의 책임, 대중 무역적자 폭 확대의 이유인 한국의 탈중국화 정책, 한국의 중국 패배 ‘베팅’, 민주당에 대한 중국 각계각층과의 우호 교류 전개 당부, 한반도 비핵화 지지 등을 거론했다.

마지막으로는 후쿠시마 원전 방류와 관련 “중한은 일본의 이웃 국가로서 자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라는 목적을 내세우며 “일본의 오염수 해양 방류를 최대한 저지해야 한다”는 말로 마무리 지었다.

그의 모두발언은 처음부터 빗나갔다. 엄밀히 말하면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싸운 것은 주로 중화민국(현 대만) 국민당 정부였다.

중국 공산당은 되도록 일본군을 피해 후방의 농촌을 돌아다니며 농민들을 선동해 자기 세력으로 만들었다. 이른바 ‘대장정’이다. 실제로는 국민당에 쫓겨 궤멸될 위기에 처하자 도망길에 오른 도주극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침략이 공산당에 기회가 됐다. 마오쩌둥은 ‘공동의 적에 맞서자’며 국민당과 협력했다. 마오쩌둥이 공산당의 3대 마법 무기라고 강조한 통일전선 공작이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마오쩌둥은 오히려 훗날 ‘일본의 침략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중국이 해외에서 운영하는 비밀경찰서의 국내 거점 의혹을 받은 서울의 한 중식당에서 왕하이쥔(44) 대표가 ‘비밀경찰서 진상규명 설명회’를 하고 있다. 왕 대표는 한국 내 중국 통일전선공작 관련 단체 회장도 맡고 있다. | 연합뉴스

후쿠시마 방류 공세 예고…통일전선 공작 동원할 듯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는 후쿠시마 원전 방류를 결정한 일본에 또 한 번 감사해야 할 처지다. 한국에서 반일 정서가 커질수록 한미일 공조가 깨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긴다.

하지만 ‘내로남불’이 걸림돌이다. 중국의 가동 가능한 원전 55기에서 서해 등 인근 해역에 연간 방류하는 삼중수소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연간 방류량 제한 기준의 약 50배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 측 자료에 담긴 내용이다. 지난 7일 한국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중국의 2021년 자료를 분석해 중국이 2020년 전체 원전에서 배출한 삼중수소가 총 1054테라베크렐(T㏃)로 후쿠시마의 오염 처리수 연간 배출량 제한 기준인 22T㏃의 47.9배에 달했다고 밝혔다. 이는 2019년 일본의 연간 전체 방류량인 175T㏃의 6배 규모다.

중국 공산당의 통일전선 공작에 대해서도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작년 10월 중국 공산당은 시진핑 측근인 스타이펑(石泰峰·67)을 중앙정치국 위원(정치국원) 겸 중앙서기처 서기 겸 통일전선공작부 부장으로 임명하고 올해 3월에는 정치협상회의 제1부주석으로 선출했다.

이를 두고 중화권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역사상 최강 권력을 지닌 통일전선 공작부장이 탄생했다고 평가했다. 주변국을 상대로 한층 더 광범위하고 강화된 통일전선 공작이 예상된다. 우호협력을 내세운 민간단체 교류가 주된 루트다.

미국 하원의 ‘미국과 중국 공산당 간 전략적 경쟁에 관한 특별위원회’ 마이크 갤러거 위원장은 지난 5월 라디오 토크쇼 ‘휴 휴이트 쇼’에서 미국인은 구소련 KGB는 잘 알지만 중국 공산당의 통일전선 공작은 잘 모른다고 경고했다.

갤러거 위원장은 “의회 내에 통일전선에 대응할 전문 위원회가 없다”면서 의원과 미국민들을 상대로 한 통일전선 알리기를 진행하고, 대응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에서는 대구 계명대 이지용 교수가 지난 수년 전부터 통일전선공작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활동을 전개해왔다. 그는 이를 중국 공산당의 침략으로 인식하고 실태 조사와 조속한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