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진당, 내년 총통선거 후보로 라이칭더 지명
中 공산당, 민감한 반응…지명 당일 대만제제
라이칭더 현 부총통, 대중 강경파로 지지도 높아
中 인권문제에도 관심…공산당 ‘역린’ 건드린 셈
라이칭더(賴清德) 현 중화민국(대만) 부총통 겸 민진당 주석이 12일 민진당 대선 후보로 공식 지명됐다. 대중국 강경파인 라이칭더가 총통에 도전하게 됨으로써 이제 ‘라이칭더가 중국 공산당의 위협과 통일전선(統戰) 전략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2024년 대만 대선의 핵심 이슈가 될 전망이다.
우선 그의 주장을 들어보자.
“나는 평화는 가치로 가늠할 수 없고 전쟁에는 승자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중국은 반드시 깊이 체험할 것이다. 만약 대만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다면, 대만이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보겠지만, 그로 인한 전 세계적인 재난을 중국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을. (그래서 중국도) 신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24년 (대선)도 전쟁과 평화의 선택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전체주의의 선택이다.”
라이칭더의 이 같은 발언은 무력을 행사함으로써 치를 대가를 신중하게 고려하라고 중국 공산당에 경고한 것이다. 주목할 것은 그가 이미 중국 공산당이 짜놓은 프레임을 타파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어떤 프레임인가?
‘대만 유권자는 친공 정당에 투표해야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 만약 반공 정당에 투표하면 전쟁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평화를 앞세운 공갈협박이다.
필자도 ‘2024 대선이 전쟁과 평화의 대결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전체주의의 대결’이라는 관점에 동의한다. 중국 공산당이 말하는 이른바 ‘평화’는 실제로는 대만이 중공에 항복하는 것이고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것이다. 홍콩의 현실이 이를 입증한다.
중국 당국의 최근 움직임은 일부 대만 언론의 관심을 모았다. 라이칭더가 총통 후보로 등록한 3월 15일, 중국 당국은 중남미 국가인 온두라스가 대만과 단교하고 중공과 수교할 것임을 알렸다. 이어 라이칭더가 민진당 총통 후보로 공식 지명된 4월 12일에는 대만 북부 해역을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하고 또 대만의 대(對)중국 ‘무역제한 조치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대만의 일부 언론은 중국 공산당의 이런 움직임은 분명 라이칭더를 겨냥한 것이고, 이는 곧 중국 공산당이 라이칭더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는 논지를 폈다.
이런 세심한 관찰은 매우 흥미롭다. 필자가 보기에는 중국 공산당이 라이칭더를 두려워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중국 공산당이 경계하고 걱정해야 할 인물임은 확실하다. 이는 그가 그동안 대중국 강경 대응을 표방하면서 대만 여론을 이끌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이런 정치적 행보는 이미 중국 공산당의 프레임을 깨고 있음을 시사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는 광부의 아들도 출세할 수 있음을 보여준 정치인
라이칭더는 신베이(新北)시 완리(萬里)의 가난한 광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가 두 살 때 아버지가 탄광 폭발 사고로 사망했고, 어머니가 홀로 여섯 자녀를 키웠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가 물려준 가장 큰 자산이 가난이었다”며 “덕분에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키울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피나는 노력으로 명문 대학에 가고 의사가 되고 정치에 입문하고 입법위원·시장·행정원장을 거쳐 부총통이 됐다. 라이칭더의 인생 역전은 자유롭고 개방적인 대만 사회가 국민들에게 자기 발전과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준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국 공산당은 공산주의, 사회주의가 중국 인민에게 자유와 평등, 행복을 가져준다고 선전해 왔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중국 공산당의 5세대 지도자들을 보면 농민 출신은 마오쩌둥뿐이고, 그 외에는 모두 훙얼다이(紅二代·혁명 원로 2세)가 아니면 관얼다이(官二代·고관 자제)다. 시진핑도 훙얼다이 신분 덕분에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래서 라이칭더의 대선 출마는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중국 공산당의 전체주의 체제보다 인민들에게 더 많은 출세의 기회를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 국민의 아픔을 같이하고 민생을 챙기는 정치인
과거 필자가 대만에서 기자로 활동할 때 국민당 진영, 민진당 진영을 가리지 않고 모든 정치인이 라이칭더가 ‘실무형’ 정치인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타이난(臺南) 시장 시절, 대만에서 시정 운영 만족도 1위를 차지했다. 그는 시장 재선에 성공했고 두 차례 모두 득표율이 60%가 넘었다.
특히 그는 시장 재선에서 득표율이 73%에 육박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성숙한 민주사회에서 이런 득표율을 올리기는 매우 어렵다. 그만큼 정치적 역량과 신뢰도가 높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런 일화도 있다. 2016년 설을 앞두고 타이난에서 큰 지진이 발생해 건물이 무너지고 수백 명이 사망했다. 당시 라이칭더는 날이 밝기도 전에 현장에 달려가 재난 구조 작업을 지휘했다. 그는 며칠 동안 현장에서 구조 작업을 하느라 신발이 터졌고 그믐날 저녁 식사도 현장에서 라면으로 때웠다. 당시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그는 잠도 안 자고 쉬지도 않는다”며 “상당히 마음이 아프다”고 할 정도였다.
중국 공산당 관리들의 행동은 이와는 확연히 대조된다. 2020년 1월 우한에서 코로나가 발생했을 때 시진핑은 3월 중순에야 우한을 찾았다. 2021년 허난(河南)성 정저우(鄭州)에서 대홍수가 났을 때는 한 달이 지나 물이 빠지고 나서야 리커창 총리가 재난 조사차 현장에 나타났다.
◇중국 공산당의 회유와 겁박이 먹히지 않는 정치인
중국 공산당은 왜 그렇게 많은 대만 정치인과 장교, 언론을 매수할 수 있었을까? 중국 공산당은 재물·여색·권력 등을 탐하는 인간의 약점을 파고들어 회유하고 협박하는 데 특히 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이칭더는 가난한 집안 출신임에도 재물을 탐하지 않고 부패 스캔들도 없다.
한 대만 언론이 라이칭더가 1996년 정치에 입문한 이래 수년간 등록한 재산신고 기록을 정리한 결과에 따르면, 그들 부부는 일반 서민과 마찬가지로 주택담보대출을 통해 주택을 구매했고 나중에 차츰차츰 갚아 나갔다.
이 또한 중국공산당 관리들의 행태와는 확연히 다른 점이다. 시진핑이 대대적인 반부패 캠페인을 벌였지만 권력을 이용해 뇌물·성상납 등을 받는 비리는 끊이지 않고 있다.
이렇듯 청렴한 라이칭더가 중국 공산당의 회유와 협박에 넘어가겠는가? 이 또한 중국 공산당이 두려워하는 점일 것이다.
◇중국 인권에 관심을 갖는 정치인
의사 출신인 라이칭더는 인권에도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그는 중국인의 인권을 위해 목소리를 냈고 홍콩의 송환법 반대 운동을 위해서도 목소리를 냈다. 그는 중국이 민주화되도록 도와야만 인권을 보장할 수 있고, ‘6.4 천안문 사태’와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고, 양안도 장기적으로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중국 공산당은 늘 “지금이 중국 인권의 가장 좋은 시기”라고 주장하지만, 우리는 중국에서 인권 유린이 만연해 있음을 볼 수 있다. 라이칭더는 중국 서민들이 이유 없이 체포되고 구타당하고 감시당하는 현실을 직시하고, 이런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만 정치인은 대부분 입으로는 인권에 관심을 갖고 인권을 수호한다면서 중국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중국 공산당의 심기를 건드릴까 두려워 기피한다. 특히 중국 공산당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파룬궁과 강제장기적출 문제에 대해서는 극도로 몸을 사린다.
그러나 라이칭더는 달랐다. 그는 오랫동안 파룬궁을 성원했고 파룬궁 박해를 중단할 것을 호소해왔다.
2006년 12월 10일 ‘파룬궁박해진상 합동조사단(CIPFG)’ 아시아 지부 ‘CIPFG ASIA’가 발족됐다. ‘세계인권의 날’을 맞아 열린 이 발족 대회에는 대만·일본·한국·홍콩 등 아시아 국가 정치인 및 비정부기구 관계자, 인권계, 법조계, 의료계, 학계, 언론인 등 총 90명이 참여했다.
이 CIPFG ASIA 단장을 맡은 사람이 바로 라이칭더였다. 당시 의사 출신으로 대만 입법위원을 맡고 있던 라이 단장은 2006년 10월 캐나다 조사관들이 대만을 방문하는 동안 입법원에서 강제장기적출 조사를 위한 공청회를 주재했다.
중국 공산당의 파룬궁 박해의 손길은 대만으로까지 뻗쳤다. 2008년 5월 출범한 마잉주(馬英九) 정부는 양안 교류를 적극 추진했으나, 돌아온 것은 대만 관광지에서 파룬궁 진상을 알리는 표어가 보이지 않도록 해달라는 협박성 요구였다.
이에 라이칭더 당시 대만 입법위원은 2008년 6월 27일 입법원에서 ‘대만에 온 대륙 관광객들, 파룬궁을 만나다(大陸客來台『邂逅』法輪功)’라는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중국 당국의 반인권적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것이다.
라이칭더는 기자회견에서 각 현·시 정부에 당당히 대응할 것을 호소하며 “대륙 관광객들이 대만에 와서 파룬궁 관련 표어를 보는 것은 그 어떤 명승지, 그 어떤 풍경을 관람하는 것보다 가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중국에서 보기 드문 광경이고 또 대만의 자유민주주의적 가치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는 현·시 정부가 중국 당국의 협박에 굴복해 대만 파룬궁 수련자들이 관광지에서 파룬궁의 진실을 알리는 활동을 제한한다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했다.
라이칭더는 중국공산당으로부터 위협을 받지 않았을까? 알 수는 없지만 그는 중국 공산당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중국 공산당이 그토록 금기시하는 이슈를 건드렸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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