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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이 가장 감추고 싶어하는 진실을 드러내는 예술가들

2025년 12월 26일 오후 9:59
2025년 2월 24일 미국 워싱턴 케네디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션윈예술단 공연. 리사 판/에포크타임스2025년 2월 24일 미국 워싱턴 케네디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션윈예술단 공연. 리사 판/에포크타임스

그는 해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중국고전무용 예술단이 선보이는 공연을 지켜보며, 뉴욕에 본부를 둔 예술가들이 무대 위에서 되살려낸 고대 영웅과 전설 속 인물들에 깊이 끌렸다. 특히 남성 무용수들이 공중을 가르며 펼치는 도약과 공중회전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열성적인 팬이었던 그는 해마다 누가 수석 무용수가 되는지, 어떤 배역을 맡는지까지 관심 있게 지켜봤다.

“정말 좋아했어요. 그냥 너무 멋져 보였죠.” 류는 에포크타임스에 이렇게 말했다.

그에게는 분명한 꿈이었지만, 어머니 가오웨이웨이는 그 꿈이 현실이 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류가 반복해서 보던 션윈 DVD를 소지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국공산당 체제에서는 체포 사유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 당국은 가오 가족을 집요하게 감시하며, 공산당에 의해 희생된 가오의 여동생 이야기가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막으려 했다.

2004년, 전기봉 고문으로 얼굴이 심각하게 훼손된 가오룽룽의 사진이 국제사회에 공개됐다. 이는 강제노동수용소와 조직적인 고문 실태를 폭로한 사건이었고, 가오룽룽은 파룬궁 박해를 상징하는 대표적 인물로 알려졌다. 그는 2005년 6월 세상을 떠났다.

진실하게 산다는 것

파룬궁, 즉 파룬따파는 불가(佛家)에 뿌리를 둔 수련법으로, 진선인(眞善忍)을 핵심 원리로 삼는다. 1990년대 초 중국에 소개된 이후 입소문을 통해 빠르게 확산됐으며, 심신의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경험담이 널리 전해졌다. 가오의 어머니 역시 직접 이를 체험했고, 두 딸에게 수련을 권했다. 당시 일본에서 일하던 가오룽룽에게도 가족이 전화를 걸어 그 의미를 전했다.

가오 가족은 에포크타임스에 “룽룽은 집안의 막내이자 모두가 아끼던 존재였다”고 전했다. 그는 성인이 된 뒤에도 따뜻하고 다정한 성품을 지녔고, 근무하던 미술학교에서도 깊은 신뢰를 받았다. 그의 영향을 받아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한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1999년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전면 금지하고 대대적인 박해를 시작했을 때 그는 당국의 주요 표적이 됐다.

가오 가족은 진선인에 따라 살아간다는 것은 거짓 선전에 맞서 진실을 말하는 일이라고 믿었다. 가족들은 탄원과 시위, 자료 배포를 이어갔고, 그 과정에서 여러 차례 불법 구금됐다. 그러나 가장 혹독한 박해를 받은 이는 가오룽룽이었다. 그는 정권 내부에서 ‘극비 26호 사건’으로 분류될 만큼 주요 표적이었고, 결국 목숨을 잃었다.

룽산 강제노동수용소에 불법 수감된 그는 지속적인 고문을 당했다. 2004년에는 탈출을 시도하며 창문에서 뛰어내리기도 했다. 전기봉 고문으로 얼굴이 심각하게 변형되고 검게 그을린 사진은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이후 당국은 그를 다시 체포해 마싼자 강제노동수용소로 이송했고, 병원으로 옮겨진 뒤에도 제대로 된 치료는 허용되지 않았다.

그가 사망한 뒤, 당국은 가족에게 ‘자발적 화장 동의서’에 서명하라고 압박했다. 가오는 이는 고문의 증거를 은폐하고 책임을 가족에게 전가하려는 시도였다고 말했다.

2016년 7월 워싱턴에서 열린 촛불 추모 집회에서, 고문으로 사망한 여동생 가오룽룽의 사진을 들고 있는 가오웨이웨이. | 에포크타임스

그해 가오는 어린 아들과 함께 수개월간 은신 생활을 해야 했다. 한 도시에서 붙잡혀 유치장에 수감되기도 했지만, 당일 밤 풀려났다. 그는 당시 상급 경찰이 “파룬궁 사건에는 관여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가오는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파룬따파 수련자로서 진실하게 사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는 아들 류가 학교에서 공산주의 이념을 교육하는 가장 초기 단계인 소선대에 가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담임과 교장에게 설명하는 일로 이어졌다. 학교 측은 이를 이해하고 존중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기간, 국제 언론과의 접촉을 막기 위해 집 앞에 배치된 경찰들에게도 그는 차분하게 파룬따파의 진실을 설명했다. 그 과정에서 일부 경찰조차 자신들이 왜 감시 임무를 맡았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전단을 나누고 포스터를 붙이는 일도 멈추지 않았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류는 원칙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몸소 보고 자랐다.

무대 위에서

2013년, 류는 미국의 션윈 산하 예술학교인 페이톈예술학교 진학을 결심했다. 해외 파룬따파 수련자들이 만든 인터넷 우회 도구를 이용해 중국의 ‘만리방화벽’을 넘어 온라인으로 지원서를 제출했다.

어머니 가오는 모든 과정이 예상과 달리 순조롭게 진행된 데 놀랐다고 말했다. 결국 가족은 미국으로 이주할 수 있었다.

류는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를 또렷이 기억하지는 못한다고 했다. 본격적인 중국고전무용 훈련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첫해는 정신없이 흘러갔다. 그러나 션윈 투어에 참여하게 되면서 분명한 깨달음의 순간이 찾아왔다. “아, 내가 정말 특별한 일을 하고 있구나.”

첫 무대에 섰을 때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처음으로 거대한 관객을 마주했어요. 설렘과 긴장이 동시에 밀려왔죠.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2025년 7월 20일 뉴욕에서 열린 파룬궁 박해 중단 촉구 퍼레이드에 참여한 류이. | 마크 저우/에포크타임스

지난 10여 년은 예술가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 다듬어지는 시간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중국고전무용은 단순한 동작의 집합이 아닙니다. 내면과 문화가 함께 드러나는 예술이에요.”

션윈 공연은 10여 편이 넘는 단막 구성으로 이뤄지며, 그중에는 현대 중국에서 신앙을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무용극도 포함된다. 류 역시 이러한 작품에 출연해 왔고, 그는 무대에서 단지 자신의 가족 이야기가 아니라 수많은 수련자의 현실을 전하고 있다고 느낀다.

“이 무용극들을 통해, 지금도 박해 속에 있는 가족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세상에 알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