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8일, 고(故)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로 영국 왕위는 장남 찰스 왕세자(74)가 승계했다. 같은 날 오후, 버킹엄궁은 성명을 통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평화롭게 눈을 감았으며, 찰스 왕세자가 새 국왕이 됐다.”고 알렸다. 9월 10일, 국왕 즉위를 공식 선포한다. 칭호는 찰스 3세이다.
찰스 3세는 성명에서 “친애하는 나의 어머니 여왕의 서거는 나와 가족들에게 가장 슬픈 순간이다. 우리는 소중한 군주이자 사랑받았던 어머니의 서거를 깊이 애도한다.”고 말했다. 그는 “애도와 변화의 기간, 우리 가족과 나는 여왕에게 향했던 폭넓은 존경과 깊은 애정을 생각하면서 위안을 받고 견딜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신임 국왕 찰스 3세는 1948년 11월 14일, 공주 시절의 엘리자베스 여왕과 남편 필립공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1952년 조부 조지 6세 서거 후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가 즉위하면서 왕위 승계 1순위 왕자가 됐다. 9살이던 1958년 영국 ‘왕세자(Prince of Wales·웨일즈 대공)’로 공식 책봉된 후 64년간 왕세자 신분을 유지했다.
찰스 3세는 전통적으로 육·해군사관학교에 진학하는 왕실 관례를 깨고 케임브리지대에 진학했다. 고고학, 인류학, 사학을 전공하였고 1970년에 졸업하여 학력을 보유한 최초의 왕족이 됐다.
대학 졸업 후 해군 장교로 복무하여 대위로 전역했다. 전역 후에도 ‘명예 계급’은 계속 진급하여 2012년 아버지와 동등한 영국 육·해·공군 원수가 됐다.
1981년 찰스 3세는 명문 스펜서 백작가의 영애, 다이애나 스펜서(Diana Spencer)와 세기의 결혼식을 올렸다. 부부는 슬하에 윌리엄 왕자, 해리 왕자 두 아들을 두었지만 1996년 이혼했다. 이듬해인 1997년 다이애나 왕세자빈도 프랑스 파리에서 교통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2005년 찰스 3세는 오랜 연인이었던 커밀라(Camilla)와 재혼했고, 커밀라는 영국 왕세자빈에게 수여하는 칭호 중 하나인 ‘콘월 공작부인(Duchess of Cornwall)’ 칭호를 받았다.
‘왕위 계승자’로 지낸 시간이 사상 유례 없이 긴 만큼 찰스 3세는 ‘준비된 국왕’으로 꼽힌다. 실제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대신하여 ‘국왕 대리’ 역할을 장기간 수행했다. 2022년에는 최초로 여왕을 대신하여 국회 개원 연설을 하기도 했다.
다만 신임 국왕에 대한 여론은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특히 즉위 전 고 다이애나 왕세자빈과 순탄하지 못했던 결혼 생활, 이혼, 현 부인 커밀라와의 재혼 과정에 영국인들은 부정적인 시선을 보낸다.
실제 지난 5월 영국 여론조사기관 ‘유고브’는 당시 찰스 왕세자의 지지율이 56%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는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81%)는 물론이고 아들 윌리엄 왕자(77%)보다도 낮은 수치였다.
이 속에서 찰스 3세의 앞날도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 국왕은 ‘연합왕국(聯合王國·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국왕이자 15개 영연방왕국(Commonwealth realms)의 군주, 52개 영연방(Commonwealth of Nations) 수장이다.
찰스 3세는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파푸아뉴기니, 솔로몬 제도, 투발루, 자메이카, 바하마, 벨리즈, 세인트 루시아, 그레나다,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 앤티가 바부다, 세인트 키츠 네비스 등 15개국의 군주로서 세계에서 가장 넓고 가장 많은 인구를 지닌 연방체의 국가원수이다.
다만 찰스 3세의 낮은 인기, 날로 낮아지는 군주제 지지 여론 속에서 영연방 왕국 군주와 영연방 수장직을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구성국들이 영연방에서 이탈하거나 ‘공화제’를 선포할 가능성이 있다. 영연방 수장직은 회원국의 의사로 결정된다. 2021년 11월 카리브해 도서국 바베이도스가 ‘공화정’을 선포하여 영연방왕국에서 이탈했고, 영국 국왕이 군주로 있는 국가는 15개로 줄었다. 이 밖에 주요 국가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도 영연방을 탈퇴하고 공화국 수립을 원하는 공화주의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도 생전에 이 점을 우려했고, 자신의 사후 찰스가 영연방의 수장 자리를 승계할 수 있도록 호주가 지지해 달라고 2013년 영연방 정상회담 당시 호주 총리에게 당부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 호주 총리였던 줄리아 길라드가 2016년 공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