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실리콘밸리에 스며든 ‘성(性) 전쟁’…총성 없는 침투의 시대
폴리티코(Politico) 홈페이지에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밸리는 중국 공산당 정보기관의 주요 타깃이다. | AFP 미국 첨단 기술 산업이 새로운 형태의 전쟁터로 변하고 있다. 총탄도, 해킹 코드도 필요 없다. 대신 ‘감정’과 ‘신뢰’, ‘관계’가 무기가 된다.
최근 미국과 유럽의 복수 매체는 중국과 러시아가 실리콘밸리 기술 인재를 상대로 정교한 ‘성(性) 기반 정보전’을 확대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고전적 미인계의 현대판이지만, 방식은 훨씬 장기적이고 정밀하며 디지털 플랫폼을 이용해 치밀하게 설계된다.
실제로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하는 한 기업가는 최근 링크드인(LinkedIn)에서 젊고 매력적인 여성으로부터 먼저 접근을 받았다. 완벽한 학력과 경력, 자연스러운 영어, 세련된 태도까지 어느 하나 어색한 구석이 없었다. 그러나 관계가 깊어질수록 그녀는 회사의 투자 방향, 핵심 개발 일정 등 민감한 정보를 은근히 캐묻기 시작했다.
뒤늦게 조사한 결과, 그 여성은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중국 정보기관이 AI 생성 사진과 조작된 이력으로 만든 가짜 프로필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미국 정보보안 전문가 제임스 멀베넌은 “최근 몇 달 사이 젊은 중국 여성 명의의 친구 요청이 폭발적으로 늘었다”며 “이제는 일종의 ‘일상적 작전’ 수준으로 반복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문화적으로 성(性)을 무기로 한 공작에 취약하다. 그 점을 상대가 정확히 파고든다”고 지적했다.
유혹에서 결혼까지…장기 잠입의 공작
과거 미인계가 단기·기회적 접근에 머물렀다면, 최근에는 결혼·임신·가족관계까지 활용하는 장기 잠입형 공작이 늘고 있다.
전직 방첩요원 A씨는 항공우주기업 엔지니어와 결혼한 러시아 여성 사례를 조사한 경험을 들려줬다. 이 여성은 ‘모델 아카데미’ 출신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러시아의 소프트파워·대외협력 기관에서 ‘관계 구축형 정보수집 교육’을 받은 인물이었다. 미국 입국 이후 10년 가까운 행적이 공백 상태였던 이유가 뒤늦게 설명된 셈이다.
그녀는 ‘암호화폐 분석가’라는 새로운 신분을 내세워 미국에 재입국했고, 남편을 통해 항공우주 기술 구조, 차세대 추진체 연구 내용, 신흥 프로젝트 로드맵 등을 은밀히 수집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방첩 관계자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주변 정보를 서서히 포집하는 방식은 탐지하기 극도로 어렵다”며 “이런 사례만 모아도 책 한 권은 충분하다”고 했다.
정보기관인 영국 MI5와 호주 ASIO도 최근 비슷한 경고를 냈다. AI 합성 영상과 SNS 메시지로 관계를 형성하고, 이후 실제 오프라인 관계로 전환하는 구조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감정 공학’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간첩술이 자리 잡고 있다.
국가와 개인의 경계 붕괴…사회의 정보망화
전통적으로 첩보 활동은 국가기관 요원의 임무였다. 그러나 지금은 국가·민간·개인의 경계가 완전히 흐려지고 있다.
미국 방첩 관계자는 “냉전 시대엔 연기 자욱한 호텔바에서 KGB 요원을 찾았다. 하지만 지금 중국은 ‘사회 전체’를 하나의 정보망처럼 운용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공식 요원뿐 아니라 학자, 유학생, 투자자, 스타트업 종사자, 일반 시민까지 동원해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더 위험한 것은 이 활동이 학술 협력, 스타트업 투자, 인턴십, 멘토링 프로그램 등 ‘합법적 외피’를 쓰고 진행될 때다.
미 하원 국토안보위원회는 최근 4년간 중국공산당이 최소 60건 이상의 간첩 작전을 벌였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말한다. 실제 침투는 SNS 감정 조작, 전문직 네트워크 플랫폼, VC(벤처캐피털) 투자 제안 등 비공식·비문서적 경로에서 더 활발하게 이뤄진다.
기술패권의 시대… “기술이 아닌 인재를 노린다”
중국이 성(性) 기반 정보전에 속도를 높이는 배경에는 미·중 기술패권 경쟁의 격화가 있다. 반도체·AI·양자컴퓨터·항공우주 등 핵심 산업에서 여전히 미국이 우위에 있는 가운데, 중국은 ‘사람이 곧 기술’이라는 전략 아래 인재 공략에 힘을 싣고 있다.
미국 지식재산권 침해방지위원회(IP Commission)는 미국 기업이 매년 빼앗기는 기술·영업비밀 피해액을 약 6,000억 달러(약 840조 원)로 추산한다. 그 가운데 상당 부분이 해킹이 아닌 대인(對人) 기반 유출로 분석된다.
첩보 전문가 제러미 리는 “중국의 전략은 기술 그 자체보다 그 기술을 만든 사람의 심리를 파고드는 것”이라며 “사람이 흔들리면 시스템은 자연스럽게 무너진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외교관·방산 인력에게 외국인과의 교제·결혼 보고 의무를 강화했지만, 실리콘밸리 민간 기술 부문은 여전히 사각지대다. 전직 CIA 관계자는 “오늘날 중국의 허니트랩은 단순 미인계가 아니라, 심리전·사회공학·AI 마케팅 기술이 결합된 복합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AI가 만드는 ‘가짜 인맥’의 폭발적 증가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의 가속적 발전으로 사이버 공간에서는 또 다른 위협이 부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AI 스파이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고 경고한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AI가 만들어내는 ‘가짜 인맥’의 폭발적 증가다. AI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 얼굴을 정교하게 합성해 링크드인, 인스타그램, X(트위터) 등에 가짜 계정을 만든다.
여기에 자연스러운 학력·경력·업무 이력까지 덧붙여 외관상 실존 인물과 거의 구별이 불가능하다. 더 나아가 수백, 수천 개의 계정을 동시에 조종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이 기술은 단순한 장난 수준을 넘어 국가 안보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미국 국토안보부(DHS)는 올해 “특정 국가가 AI 챗봇을 활용해 미국 내 연구자들과 장기간 감정적 유대 관계를 형성한 사례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인간과 유사한 대화 능력을 갖춘 AI가 실제 인물처럼 접근해 심리전을 펼친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AI가 만들어낸 조작된 정체성과 관계망이 이미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며 “AI 기반 스파이 활동이 더는 미래 기술이 아니라 현실 문제”라고 강조한다.
총성은 없지만 피해는 크다…‘사람 보안’의 시대
한 방첩 전문가는 “냉전 시대의 스파이는 담배 연기 속에서 정보를 주고받았지만, 지금의 스파이는 링크드인과 인스타그램에서 미소를 교환한다”고 말했다.
성(性)을 포함한 관계 기반 첩보전은 이제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소리가 나지 않는 전쟁이지만 결과는 치명적이다. 알고리즘 한 줄, 회로 설계 하나가 미래의 패권을 결정하는 시대. 실리콘밸리 기술자 한 명, 엔지니어 한 명이 곧 국가안보의 최전선이다.
미국은 법적·문화적 제약으로 역공작이 어려운 반면, 상대국은 ‘감정·관계·신뢰’를 무기로 한 비공식 침투전을 빠르게 고도화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반도체·AI·배터리 대기업들은 해외 컨퍼런스에 출장 가는 직원들에게 ‘SNS 비공식 교류 제한’, ‘외국인 접근 시 사전 보고’를 의무화하고 있다. 단순 정보 유출보다 ‘관계 조작’을 통한 장기 침투를 더 우려한 조치다.
이제 필요한 것은 기술 장비를 지키는 보안을 넘어 ‘사람을 지키는 보안’이다. 전문가들은 “기업 내부 행동 패턴 분석, 비정상적 관계 형성 감지까지 포함하는 휴먼 보안(Human Security) 체계 구축이 필수”라고 조언한다.
물리적 무력은 사라졌지만, 심리와 정보가 새로운 전쟁의 무기가 됐다. 총성이 아닌 마음을 겨누는 전쟁은 이미 우리의 일상 깊숙한 곳에서 진행 중이다.
*이경찬 논설위원은 정치 PR 전문가로, 한국커뮤니케이션에서 정치 홍보를 담당하며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쌓았습니다. 이후 정치 보좌관으로 활동하며 정책과 정치 현장을 깊이 이해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에포크타임스 기자로 오랜 기간 활동하며 언론의 최전선을 경험했습니다. 현재는 미디어파이 대표로서, 정무·언론·홍보 전반에 걸친 통합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이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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