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 진보 텃밭 실리콘밸리, 왜 트럼프 지지로 돌아서나

네이선 우스터
2024년 06월 21일 오후 4:57 업데이트: 2024년 06월 22일 오전 12:23

트럼프 4년, 바이든 4년 겪은 빅테크 인사들
“경제·외교·국경(이민)·공정성…트럼프가 낫다”
IT업계 대선 쟁점은 ‘전쟁, 불법이민자, 암호화폐’

미국의 소프트웨어 유통업체 겸 빅테이터 분석기업 ‘팰런티어’의 고위 간부인 제이콥 헬버그가 처음부터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의 열렬한 팬인 건 아니었다(헬버그는 2020년 대선 때 바이든에게 거액을 후원한 바 있다-역주).

지난 2021년 그는 자신의 저서 ‘전쟁의 전선(The Wires of War)’을 통해 구글 재직 당시 가짜뉴스와 해외에서의 여론 간섭에 대해 연구하며 트럼프 전 대통령 집권 당시의 그의 우려에 관해 설명한 바 있다.

당시 민주당계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중국 전략 이니셔티브 공동의장을 맡고 있던 헬버그는 실리콘밸리가 펼치고 있던, 이른바 ‘국내 허위 정보’에 맞서 싸우는 노력을 설명하면서 “조 바이든의 승리 이후 트럼프로부터 사주받은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이 트럼프가 실제로 승리했다고 주장하는 부당한 음모론에 빠져들었다”고 저서에 기술했다.

그는 2020년 대선 당시에는 민주당 경선 후보였던 피트 부티지지 캠프에서 활동했으며, 바이든이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최종 선정되자, 민주당 승리를 기원하며 바이든 캠프에 거액을 기부했다.

하지만 현재 헬버그의 행보는 그 이전과 180도 달라졌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그는 트럼프 캠프에 100만 달러를 후원했다.

여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헬버그는 에포크타임스에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추가 지원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실리콘 밸리 거물들이 민주당과 바이든 대통령의 주요 지지자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적어도 최근 몇 개월 전까지는 그랬다.

지난 2020년 대선 당시, 페이스북 공동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링크트인 공동 창업자 리드 호프만, 애플 공동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미망인 로렌 파월 잡스 등이 바이든 지지를 공개 선언했다.

물론 2024년에 현재에도 많은 기술 분야의 부유층이 바이든을 지지하고 있다. 벤처투자 기업 코슬라 벤처스의 비노드 코슬라는 지난 5월 바이든 대통령을 위한 기금 모금 행사를 주최했고, 야후 전 최고경영자 마리사 메이어도 비슷한 모임을 열었다.

그런데 헬버그 같은 거물급 인사들을 포함해 트럼프 전 대통령 쪽으로 돌아서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에 관해서도 ‘정치 보복’이라는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헬버그는 최근 뉴욕 법원에서 이뤄진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유죄 평결과 관련 “(그 재판은) 사기극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며 “사법적 보복으로 보인다”고 재판의 중요성을 일축했다.

그는 트럼프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요약했다.

하나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민주당) 시절 중국에 대한 유화적 접근 방식, 다른 하나는 예전에 그가 사랑했던 민주당의 모습을 잃어버리게 만든 ‘워크(Woke·깨어 있는)’ 열풍이다.

워크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을 추구하는 상태를 가리키며, 급진 좌파와 비슷한 의미로도 사용된다.

빅테크계의 새로운 트렌드

이러한 ‘전향’은 과거 공화당에 적대적인 빅테크 및 기술 산업계 인사들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 관해서만은 호의적 시선으로 보는 현상의 확산으로 나타나고 있다. 헬버그뿐만 아니라 그가 몸담은 팰런티어 전현직 직원들 사이에서 비슷한 움직임이 포착되는 것이다.

일례로 지난 2022년 미국 중간선거 당시, 엑스(X·구 트위터) 직원들의 정치 후원금 대부분은 민주당에 전달됐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트위터 본사 사옥. 2022년 4월 27일(현지시각) 사진. 현재 이 회사는 일론 머스크가 인수해 사명을 엑스(X)로 변경했다. | Justin Sullivan/Getty Images

하지만 정부 운영 투명성을 감시하는 비영리 단체 ‘오픈 시크릿’ 분석에 따르면, 팔란티어 관계자들이 기부한 정치 후원금 가운데 민주당으로 전달된 것은 56%였으며 40%는 공화당에 제공됐다.

팔란티어 출신 인력들이 설립한 ‘앤두릴 인더스트리’의 공동 설립자 팔머 러키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공화당 정치인들을 공개적으로 지지해 왔으며, 여동생이 공화당 하원의원과 결혼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8일(이하 현지 시간) 캘리포니아 뉴포트비치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참석한 기금 모금 행사를 공동 주최했는데, 행사 입장권을 모두 매진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플로리다의 론 드산티스 주지사, 민주당 출신으로 이번 대선에 무소속 출마한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의 대선 캠프를 후원했던 벤처 투자자 데이비드 삭스는 지난 6일 빅테크 관계자 대상으로 트럼프 모금 행사를 주최했다.

이 행사는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리스트 4명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올인’의 공동 진행자인 차마스 팔리하피티야가 공동 주최했는데, 그는 지금까지 민주당의 거액 기부자 중 한 명이었다.

앞서 지난달 31일 방송에서 팔리하피티야는 “바이든 대통령이 우리 프로그램 출연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며 “바이든 대통령과 이야기하고, 그가 어느 지점에 있는지 이해할 기회가 있다면 그에게도 기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로버트 케네디(주니어)에게 기부했다. 민주당에도 거액을 기부했다.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에게도 기부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쪽을 지지하던 입장에서 여러 후보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이다.

(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1월 20일(현지시각) 미국 국회의사당 앞에서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가 성경을 들고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아래 오른쪽) 안두릴의 공동 설립자 팔머 러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오랜 지지자로 유명하다. (아래 가운데) 벤처 캐피털리스트 데이비드 삭스는 지난 6월 6일 IT 분야 인사들을 대상으로 트럼프 기금 모금 행사를 공동 주최했다. (아래 왼쪽) 벤처 캐피털리스트 차마스 팔리하피티야도 이 행사에 공동 주최자로 참여했다. 그는 과거 민주당의 거액 기부자였다. | Drew Angerer/Getty Images, Patrick T. Fallon/AFP via Getty Images/연합, Steve Jennings/Getty Images for TechCrunch, Mike Windle/Getty Images for Vanity Fair

이러한 변화의 요인으로는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배경으로 지목된다.

삭스는 지난 6일 트럼프 모금 행사 몇 시간 전 소셜미디어 X를 통해 “유권자들은 트럼프 대통령 4년과 바이든 대통령 4년을 경험했다. 기술 업계에서는 이를 A/B 테스트라고 부른다. 경제 정책, 외교 정책, 국경 정책, 법적 공정성 측면에서 트럼프가 더 나은 성과를 냈다”고 밝혔다.

헬버그 역시 이날 행사 후 “(오늘) 공화당 대선 후보에 대한 에너지와 흥분을 목격했는데, 이는 여태껏 실리콘밸리에서 본 적 없는 것”이라고 전했다.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솔루션 기업 인터콤 CEO이자 공동 창업자인 어한 맥케이브도 이날 행사 참석 후 비슷한 반응을 내놨다.

그는 X에 트럼프 전 대통령과 함께 찍은 자신의 사진을 올리고 “그곳에서 6명과 이야기를 나눴다. 공화당원이라고 밝힌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과거에 민주당에 투표했거나 기부한 사람들”이라며 “이제 그들은 전쟁, 이민, 암호화폐 등에 대한 트럼프의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맥케이브는 이번 선거가 트럼프냐 바이든이냐 인물 평가보다는 전쟁, 불법이민자 문제, 암호화폐 등 정책 선거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트럼프는 호전적인 발언을 내놓고 있으나 자신의 임기 동안 한 번도 전쟁을 시작한 적이 없었으며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관해서도 러시아에 일부 영토를 내주더라도 빠르게 종료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암호화폐의 경우, 바이든 정부는 규제 강화를 택했지만 트럼프는 “바이든 정부가 시작한 암호화폐와의 전쟁을 중단시킬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는 최근 자신의 소셜미디어 플랫폼 트루스 소셜에 “앞으로 아직 채굴되지 않은 비트코인은 모두 미국에서 생산되기를 바란다”는 글로 암호화폐 지지자들의 호의적 반응을 이끌어낸 바 있다.

헬버그는 빅테크 분야에서 일고 있는 트럼프 모멘텀에 관해 “언론은 트럼프의 공로를 어느 것도 인정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언론이 여론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리콘밸리의 가장 유명한 벤처캐피털 겸 ‘큰손’인 세쿼이어캐피털의 파트너인 더그 리온과 숀 맥과이어의 트럼프 지지도 눈길을 끈다.

2020년 미국 대통령선거 당시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와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의 첫 대선 토론회가 2020년 9월 29일(현지시각) 워싱턴의 월터스 스포츠 바에서 중계되고 있다. | Sarah Silbiger/Getty Images

리온은 지난 3일 X에 올린 글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유로 바이든 행정부의 이민정책, 재정적자 그리고 ‘외교 정책의 실책’을 꼽았다.

맥과이어는 앞서 지난달 30일 트럼프에게 30만 달러를 기부했다고 밝혔다. 2016년 대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 캠프에 30만 달러를 기부했던 그는 장문의 글에서 “나는 2016년 당시 미디어가 만들어낸 거짓된 이미지에 취해 있었고, 트럼프에 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트럼프는 유세 기간 과격한 발언으로 언론에 의해 ‘막말’이란 이미지가 부각됐으나 그가 추진한 정책 중 일부는 후임 바이든 행정부에 의해 계승되거나 폐기 후 부활되기도 하는 등 실효성이 뒤늦게 인정된 바 있다.

이 밖에도 보수적 인사들에 대한 검열이 지나치다는 논란과 반유대주의 확산에 따른 우려 등이 빅테크 인사들이 트럼프 지지로 돌아선 이유라고 헬버그는 덧붙였다.

한편, 맥과이어, 삭스, 러키, 팔리하피티야 등 실리콘밸리 인사들은 에포크타임스의 논평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 한국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번역 과정에서 이 기사 내용 일부가 수정·편집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