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크타임스

소셜미디어가 바꿔놓은 ‘폭력’에 대한 인식

2025년 09월 30일 오후 10:15
Illustration by The Epoch Times, Getty Images, ShutterstockIllustration by The Epoch Times, Getty Images, Shutterstock

전문가들은 소셜미디어가 폭력을 무제한적으로 노출하고, 나아가 폭력을 조장하는 분위기까지 더해지면서 사람들의 폭력에 대한 태도가 심각하게 왜곡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 문제는 단순한 기술적 조치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폭력은 인류 역사 속에서 늘 존재해 왔지만, 이처럼 오락의 형태로 대량 소비되는 것은 전례 없는 현상이다.

특히 영화나 비디오 게임 속 허구적 폭력과 달리, 소셜미디어는 사실상 연령 제한 없이 누구나 실제 폭력을 접할 수 있는 통로가 되고 있다.

미국 신시내티대 제프리 블레빈스 저널리즘학 교수는 “이러한 영상은 가볍거나 선정적·냉소적인 논평과 함께 오락처럼 소비되고, 무의미한 다른 콘텐츠와 뒤섞여 사고력 마비 현상을 초래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앤드루 셀레팩 미국 플로리다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부교수는 “정치적 분열은 사회의 많은 집단을 비인간적으로 낙인찍는 현상을 불러왔으며, 이는 특정 집단에 대한 폭력이나 폭력 수용을 정당화하는 인식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잔혹하거나 폭력적인 콘텐츠를 제한하고 있지만, 일부는 여전히 필터링을 피하며 확산되고 있다.

영국과 웨일스 청소년을 대상으로 2024년 청소년기금(Youth Endowment Fund)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13~17세 응답자의 약 70%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실제 폭력을 접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틱톡(TikTok) 이용자의 44%가 지난 1년간 실제 폭력을 목격했다고 밝혀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으며, 엑스(X·구 트위터) 이용자도 43%로 뒤를 이었다. 페이스북, 스냅챗, 인스타그램 역시 31~33% 수준으로 집계됐다.

블레빈스 교수는 최근 발생한 보수 논평가 찰리 커크 암살 사건을 두고 “안타깝지만 흥미로운 사례 연구”라고 평가했다. 당시 사건 현장의 극도로 충격적인 영상은 플랫폼 제한에도 불구하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돼 수백만 명이 시청했다.

지나친 폭력 노출

연구자들은 수년 전부터 디지털 미디어 속 폭력에 반복적으로 노출될 경우 ‘둔감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셀레팩 교수는 “현실에서 미국인들이 폭력을 직접 겪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면서도 “현실 세계에서는 하루에 여러 차례 폭력을 경험하는 일이 있을 수 없지만, 소셜미디어에서는 하루 종일 반복적으로 폭력에 노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2024년 6월 10일 뉴욕시에서 한 젊은 여성이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소셜미디어에 넘쳐나는 폭력적 이미지가 사람들의 폭력에 대한 태도를 왜곡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 Samira Bouaou/The Epoch Times

그는 “사람들이 매일 몇 시간씩 플랫폼에 머무는 만큼, 폭력 콘텐츠가 몇 시간 동안 반복적으로 소비될 수 있으며, 전쟁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 이상 인류 역사상 이런 현상은 전례가 없다”고 말했다.

현실에서 폭력을 가장 많이 접하는 구조대원이나 응급요원조차 실제로는 그 결과만을 목격하기 때문에 폭력의 파괴성을 체감하게 된다. 그러나 온라인에서는 결과와 분리된 채 끝없이 이어지는 실제 폭력 영상이 무의식적으로 소비된다고 셀레팩 교수는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개인 맞춤형 추천 알고리즘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용자가 특정 영상을 몇 개만 시청해도 알고리즘이 이를 선호도로 인식해 더 많은 유사 콘텐츠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플랫폼이 노골적인 폭력 영상을 제한하더라도, 경계선에 있는 잔혹한 영상은 여전히 확산되며 오히려 더 쉽게 확산된다.

셀레팩 교수는 “분노를 일으키거나 불편하고 충격적인 콘텐츠일수록 사람들이 더 오래 소비하고 댓글을 달며 반응한다”며 “이로 인해 알고리즘은 해당 콘텐츠를 더 많은 사람에게 노출시키고, 결국 파급력이 더욱 커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폭력적 콘텐츠 제한이 플랫폼의 수익 구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플랫폼은 이용자가 얼마나 오래 머무르며 광고를 보느냐에 따라 수익을 낸다”는 것이다.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점은 폭력 콘텐츠가 일부 맥락에서는 실제 정보적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알고리즘은 인간의 감수성을 갖추지 못해 맥락적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

블레빈스 교수는 “알고리즘은 콘텐츠를 다루는 데는 뛰어나지만, 맥락과 윤리를 이해하지는 못한다”며 “도덕적 나침반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셀레팩 교수도 이에 동의하며 “알고리즘은 우리가 무엇을 소비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더 많이 소비하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덧붙였다.

갈등 증폭기

소셜미디어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노출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폭력을 촉발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영국에서 실시된 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16%가 지난 12개월 동안 실제 폭력에 가담했다고 답했으며, 이 가운데 약 3분의 2는 소셜미디어가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그 예로는 온라인 논쟁이 현실 세계의 폭력으로 이어지거나, 댓글이 갈등을 악화시키는 경우, 혹은 아이들이 대면 상황에서는 하지 않을 말을 온라인에서 내뱉는 경우 등이 포함됐다.

2021년 발표된 한 연구 논문은 주로 흑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수십 건의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소셜미디어에서 벌어진 ‘사소한 말싸움’이나 ‘하찮은 갈등’조차 쉽게 현실의 심각한 충돌이나 물리적 싸움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2024년 6월 10일 뉴욕시에서 휴대전화를 사용 중인 여성들. 전문가들은 플랫폼의 제한에도 불구하고 소셜미디어가 폭력을 선동하는 집단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 Samira Bouaou/The Epoch Times

논문은 “청소년들은 소셜미디어가 또래 간 갈등을 증폭시킨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며 “청소년들이 처음부터 싸우기 위해 온라인에 접속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셜미디어는 갈등을 증폭시키고 그 경험 자체를 변화시키는 독특한 환경”이라고 분석했다.

폭력 선동

전문가들은 소셜미디어가 잔혹한 영상 노출을 넘어, 폭력을 옹호·선동하는 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정 정치 집단을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플랫폼의 제한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콘텐츠가 매우 많이 퍼져 있다는 것이다.

블레빈스 교수는 “특정 이념이나 집단, 현상에 관심이 있다면 새로운 계정을 만들고 그와 관련된 키워드를 입력해 보라. 알고리즘이 어떤 콘텐츠를 보여주는지 확인한다면 충격적일 것이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알고리즘이 비슷한 콘텐츠를 계속 추천함으로써 일부의 극단적인 견해를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 착각하게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블레빈스 교수는 또 사용자의 신념을 과도하게 강화해 주는 아첨형 개인 AI 챗봇 현상도 새로운 문제라고 지적했다.

2024년 8월 11일 촬영된 자료 사진에서 한 남성이 틱톡(TikTok) 앱이 표시된 휴대전화를 들고 있다. 같은 해 영국과 웨일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틱톡 이용자의 44%가 지난 1년 동안 폭력적인 콘텐츠를 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 Oleksii Pydsosonnii/The Epoch Times

셀레팩 교수는 노골적으로 폭력을 요구하지 않더라도 폭력을 간접적으로 정당화하는 콘텐츠도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메타나 유튜브, 엑스(X), 틱톡 같은 플랫폼에서는 끊임없이 ‘저쪽은 파시스트이자 나치이며 인류 최악 중 최악’이라는 식의 메시지가 반복된다”며 “이런 식의 비인간화 메세지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특정 집단에 대한 폭력, 혹은 폭력 수용이 훨씬 쉬워진다”고 경고했다.

달라지는 인식

소셜미디어의 부정적 영향을 보여주는 연구가 늘어나면서, 대중의 인식도 점차 변하고 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2023년에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고등학생의 약 80%가 하루에도 여러 차례 소셜미디어를 사용한다고 답했으며, 그중 약 3분의 1은 한 시간에 한 번 이상 접속한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지난해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설문에서는 10대의 절반 가까이가 “소셜미디어에 시간을 너무 많이 쏟고 있다”고 인정했다. 이는 2023년 조사에서 같은 답변을 한 비율(약 25%)에 비해 크게 증가한 수치다.

또한 미국 사회 전반적으로도 아동의 휴대전화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단순히 수업 시간뿐 아니라 학교에 있는 전체 시간 동안 휴대전화를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한 지지가 확대되는 추세다. 퓨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2024년에는 36%가 전일 금지에 찬성했으며, 올해 초에는 그 수치가 44%로 상승했다.

*이기호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