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크타임스

마두로 체포 후…쿠바계 미국인들 “다음은 쿠바”

2026년 01월 19일 오후 6:43
2021년 7월 17일, 마이애미 프리덤 타워 앞에서 열린 쿠바 공산 정권 반대 시위 지지 집회에서 한 남성이 ‘쿠바를 해방하라’라는 팻말을 들고 있다. | Eva Marie Utzcategui/AFP via Getty Images/연합2021년 7월 17일, 마이애미 프리덤 타워 앞에서 열린 쿠바 공산 정권 반대 시위 지지 집회에서 한 남성이 ‘쿠바를 해방하라’라는 팻말을 들고 있다. | Eva Marie Utzcategui/AFP via Getty Images/연합

미군이 1월 3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지도자 니콜라스 마두로를 생포하는 데 성공한 이후, 쿠바계 미국인들은 서반구에서 다음으로 무너질 독재 정권이 자국의 공산 정권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쿠바는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일당 체제를 구축한 이후 지금까지 공산 정권이 통치해 왔다. 현재 카리브해의 이 나라는 미겔 디아스카넬이 이끌고 있다.

에포크타임스는 마이애미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쿠바계 미국인 50여 명을 인터뷰했다. 이들은 모두 마두로 생포 작전을 수행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미군에게 큰 찬사를 보냈다.

대다수는 쿠바에서도 이와 유사한 조치가 이뤄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고, 소수는 인내와 절제가 더 낫다는 의견을 보였다. 다른 한 남성은 트럼프 행정부가 더 큰 전략 구상을 실행하고 있다고 본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미군이 마두로를 체포하고 베네수엘라 석유 자원을 장악한 뒤, 트럼프 대통령은 쿠바가 협상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많은 해외 쿠바인들은 설령 트럼프 대통령이 쿠바 지도자를 상대로 비슷한 작전을 명령한다 해도, 오랫동안 뿌리내린 잔혹한 정권의 잔재를 일소하거나 국민들이 수십 년 동안 겪어온 고통을 보상받기에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공산 정권이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살인, 부당한 투옥, 고문, 그리고 말로 다할 수 없는 잔혹 행위를 끊임없이 자행해 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조치에 대한 지지 확산

이라크에 세 차례 파병된 미 해병대 출신 오스카 페레스는 현재 ‘쿠바계 미국인 참전용사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디아스카넬과 쿠바 체제 전체가 해체되어야 하며, 그때가 되면 부모님의 고향인 쿠바를 방문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그 모습을 봤으면 좋았을 텐데요. 아버지는 평생 자유로운 쿠바를 보고 싶어 했지만, 결국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군에 입대한 것도 반공주의자였던 쿠바 출신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는 정치범 수용소를 두 차례 탈출했고, 이후 12년형을 선고받았으며, 결국 ‘쿠바를 떠나거나 죽거나’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그는 정글을 13일 동안 걸어가 관타나모의 철책을 넘고, 냉전시기 설치된 지뢰밭까지 지나 탈출했다. 그의 아버지가 처음 마주한 미국인은 미 해병대원이었으며, 이것이 페레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2026년 1월 16일, 아바나 콜론 묘지에서 열린 장례식에서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국가수반이 니콜라스 마두로를 생포한 미군의 작전 중 사망한 32명의 쿠바 군인 유가족들 사이에 서 있다. | Adalberto Roque/AFP via Getty Images/연합

페레스는 자신과 교류하는 쿠바인 및 쿠바계 미국인 사이에서 미국 군대를 향한 지지와 신뢰가 매우 강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쿠바 정권이 이미 흔들리고 있으며, 베네수엘라 전 지도자의 체포와 석유 자원 확보 상황을 고려할 때 트럼프 행정부가 서두르지 않고 조금 더 기다리는 쪽이 오히려 유리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페레스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과 미군의 작전을 높이 평가하며 쿠바인들도 이와 동일한 직접적 조치를 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마침내 미국의 힘이 발휘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수십 년 동안 세계의 지도자였지만, 그동안 정치적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서반구의 사회주의 정권들이 머지않아 잇따라 붕괴할 것이라 전망하면서, 쿠바인들과 쿠바계 미국인들이 “자유에 대한 갈증”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2016년 11월 26일, 마이애미 리틀 아바나 지역에서 쿠바계 미국인들이 오랜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의 사망을 두고 환호하고 있다. | Rhona Wise/AFP via Getty Images/연합

생존자의 증언

쿠바 수도 아바나 출신으로 성명 공개를 거부한 여성 릴리는 1961년 정치범으로 체포돼 약 10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녀는 “쿠바인이라면 누구나 가족 중 한 명쯤은 감옥에 들어가 있었다”고 회상한다.

릴리는 1960년대 이전의 쿠바에 대해 “악마가 오기 전, 쿠바는 정말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그녀가 말한 ‘악마’란 서반구 최초의 공산국가를 세우고 약 50년간 철권 통치를 이어 온 피델 카스트로를 가리킨다.

릴리를 포함한 많은 쿠바인들은 카스트로 시절의 이념과 정책이 여전히 쿠바 사회에 그대로 남아 있다고 ‘에포크타임스’에 말했다.

릴리는 자신과 가족, 그리고 수만 명의 쿠바인들이 공산 정권 아래에서 겪은 참혹한 현실을 증언했다. 정치범 대부분은 그녀가 ‘국가에 대한 범죄’ 또는 ‘권위 모독’이라고 부른 모호한 법률로 기소되었다. 릴리는 수감 기간 내내 단 한 번도 정식으로 범죄 혐의를 통보받은 적조차 없었다고 밝혔다.

릴리는 부당하게 구금된 쿠바인들 사이의 끈끈한 연대 덕분에 감옥 생활을 견딜 수 있었다고 했다. 그들은 하루하루 버티며 살았고, 종종 사형선고를 받고 돌아온 이들을 위해 작은 성모상을 두고 함께 모여 기도도 했다.
“그중에는 남편이나 남자친구가 있는 사람도 많았어요. 그들이 재판을 받고 돌아오면 우리는 모두가 알고 있었죠. 그날 밤 그들이 죽임을 당할 거라는 것을요.”

남성 수감자들의 상황은 훨씬 더 끔찍했다. 매일 밤 총살 집행 소리를 억지로 들으며 지내야 했기 때문이다. 릴리에 따르면, 수감자들은 구타, 독방 감금, 강제노동에 시달렸으며, 때로는 이유 없이 살해되기도 했다. 면회는 거의 허용되지 않았고, 식사라고 해봐야 묽은 수프나 콩 한 스푼뿐이었다.

1959년 1월 4일, 피델 카스트로가 쿠바 카마귀이에서 연단에 서서 군중에게 연설하고 있다. | Hulton Archive/Getty Images

그녀는 “이 같은 처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릴리는 “감옥 밖에서도 자유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출소 몇 달 뒤, 그녀는 결국 쿠바를 탈출했다.

다시 쿠바로 돌아가려면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 릴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미군이 조치를 취한다면 쿠바계 미국인들은 열렬히 환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제 우리도 자유로워져야 할 때입니다. 67년 동안 아무도 용기를 내지 못했지만, 지금의 대통령(트럼프)은 무엇이든 할 용기가 있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이 바뀌고, 돌아갈 시간이 남아 있다면 저는 돌아갈 겁니다.”

그녀가 쿠바에 돌아가면 가장 먼저 가고 싶은 곳은 아바나의, 부모가 묻힌 공동묘지라고 말했다.

젊은 해외 쿠바인들의 증언

쿠바에 남아 있는 가족들이 보복을 당할까 봐 익명을 요청한 두 명의 젊은 쿠바 여성은 미국으로 탈출하게 된 배경을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털어놓았다. 26세와 27세인 두 사람은 쿠바에서 교사로 일하다 더 나은 삶을 찾아 미국행을 선택했다.

한 여성은 “쿠바에서의 삶은 끔찍했다. 정권을 지지할 수 없었기 때문에 교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결국 쿠바를 떠나야 했다”고 말했다.

2024년 3월 27일, 아바나의 한 가정에서 한 여성이 아들의 교복을 벗기고 있다. 앞서 3월 17일에는 식량 부족과 정전 사태에 항의해 전국 최소 4개 도시에서 수백 명의 시민들이 쿠바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 Yamil Lage/AFP via Getty Images/연합

두 여성은 자신들이 반체제 활동을 한 적은 없지만, 디아스카넬 정권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정치적 적대자처럼 취급받았다고 밝혔다. 그들은 자신과 가족 모두가 어떤 결정도 스스로 내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27세 여성은 집에 쇠고기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아버지가 며칠 동안 투옥됐던 일을 떠올렸다. 1963년 카스트로 체제가 허가 없는 소 도축과 쇠고기 판매를 금지한 이후, 이러한 처벌은 흔한 일이 되었다.

실제로 ‘하바나 타임스’에 따르면 2024년 8월 기준 쿠바 정부는 불법 쇠고기 도축 및 유통 혐의로 1615명의 축산 농가를 기소한 바 있다.

그녀들은 어릴 때부터 정부가 모든 학생에게 청년 공산주의자 연맹 가입을 사실상 강요했다고 말했다. 두 여성은 단체 활동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부정적 사례’로 낙인찍히고 가혹한 대우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한 여성은 “초등학생 전원이 매일 공산주의 지지를 선언하도록 강요받았다”고 말했다.

2021년 7월 11일, 아바나에서 열린 쿠바 정권과 미겔 디아스카넬 국가수반에 대한 항의 시위 도중 시위자들이 경찰에 체포되고 있다. | Yamil Lage/AFP via Getty Images/연합

정권의 요구를 따르지 않을 경우 체벌을 포함한 여러 처벌이 예고돼 있었다. 26세 여성은 한때 젊은 쿠바인들로 구성된 반정부 시위에서 많은 참가자들이 구타를 당하고 체포되는 장면을 직접 보았다고 전했다.

두 여성은 미국이 마두로를 체포한 것처럼 디아스카넬을 축출한다면 “모든 것이 바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한 변화가 없이 고향 쿠바를 다시 방문하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30세의 벳시 가르시아 루이스는 언젠가 쿠바에 있는 가족들과 재회하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쳤다. 그러나 미군이 쿠바를 돕기 위해 군사행동에 나설 경우 가족들의 안전이 가장 큰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군사 공격이 일어나면 가족들이 위험해질 수밖에 없다”며 “제 가족 모두가 아직 쿠바에 있고, 민간인이 다칠까 늘 두렵다”고 밝혔다.

*이기호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