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허베이서 ‘중공은 중국이 아니다’ 표어 등장…민심 이반 확산 조짐

중국의 경제 상황이 악화하면서 실업률이 치솟고 사회 갈등이 심화하는 가운데, 중국 허베이성 거리 곳곳에서 중국인들에게 중국 공산당과 중국을 구분할 것을 촉구하는 문구가 발견돼 눈길을 끈다.
지난 13일(현지 시각) 해외 소셜미디어 플랫폼 엑스(X)의 한 사용자는 전날 허베이성 랑팡(廊坊) 지역의 전봇대에 큰 글씨로 “중공(중국 공산당)은 중국이 아니다”라고 쓰고, 옆에는 조그맣게 “중공은 마르크스-레닌의 후예이고 중국 인민은 염황의 자손이다”라고 쓴 표어가 붙었다고 전했다.
‘염황의 자손’이란 중국 문화권에서 자신들이 염제(炎帝) 신농씨와 황제(黃帝) 헌원씨의 후손이라는 의미다. 염제는 농업과 의학의 신(神), 황제는 중화 문명의 시조로 여겨진다. 즉, 이 표현은 수천 년 중국 문명을 이어받은 민족임을 강조할 때 사용된다.
반면, ‘마르크스-레닌의 후예’란 폭동이나 혁명을 통해 기존 체계를 뒤엎고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려는 공산주의 이념에 물들었음을 중국인들이 자조적으로 표현하는 용어다. 즉, 해당 표어는 공산당에 대한 충성이 곧 조국에 대한 애국이라고 믿는 같은 민족에게 각성할 것을 촉구하는 의미가 담겼다.
이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상황이 변하고 있다”, “용감하게 쓴 것을 보면 정보량이 적지 않다”, “이런 일이 점점 빈번해지고 있다”, “경제가 나아지지 않으면 정부에 저항하는 일이 더 많아질 것”, “이제 전봇대를 지키는 새로운 직업이 생기겠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또 “이제 살기 어려워졌고 일부 사람들은 깨어나기 시작했다”, “모든 중국인이 중국 공산당이 중국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면 인민은 완전히 자유로워질 것”, “중국 인민이 각성했으니 중화 민족에 희망이 생겼다”라며 표어 게시자를 응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중국 공산당은 문화대혁명을 통해 수천 년 문화유산을 말살함으로써, 중국과 단절된 외래 이념 집단이라는 점을 스스로 입증한 바 있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인은 중국 공산당이라는 ‘집권당’과 중국이라는 ‘국가’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경제 발전을 이유로 공산당의 억압적 통치를 수용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최근 중국에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고 실업의 쓰나미가 각 산업계를 휩쓸면서 공산당 정권의 집권 정당성도 흔들리고 있다. 기업이 도산하고 외자 기업이 철수하면서 극심한 취업난이 발생하자 민심은 들끓고 있으며, 정부에 항의하는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022년 10월 13일, 중국인 펑리파(彭立發)는 베이징 고가도로 쓰퉁교에 ‘시진핑 탄핵’ 등 반(反)중공 현수막을 걸었다. 이를 계기로 많은 중국인이 중국 공산당의 폭정에 반대하며 각지에서 펑리파의 행동을 모방해 항의 표어를 내걸기 시작했다.
올해 8월 7일에는 윈난성 쿤밍시 항전승리기념관 앞에서 한 남성이 ‘시진핑 물러나라’는 현수막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였다. 누군가가 찍은 이 장면 영상은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영상을 보면 이 남성 주위에서 많은 관광객이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앞서 4월 15일, 쓰촨성 청두시 차뎬쯔(茶店子) 버스터미널 밖 고가도로에는 ‘인민은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가진 정당이 필요 없다’는 내용의, 흰색 바탕에 붉은 글씨로 된 현수막 세 개가 걸렸다. 이 현수막을 건 이는 메이스린(梅世林·27)으로, 공안에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30일, 후난성 러우디(婁底)시 신화(新化)현에서는 대학생 팡이룽(方藝融·22)이 쓰퉁교의 것과 같은 내용의 현수막 표어를 게시하고 확성기를 이용해 구호를 외치며 중국 공산당의 독재 통치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표출했다. 이후 팡이룽은 경찰에 체포됐다.
이들은 상당수가 20대 청년이나 대학생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중국 공산당 집권하에 경제가 크게 발전한 시대에 성장해, 중국 내에서도 공산당에 대한 충성도가 가장 높다고 평가되는 계층에서 불이익과 탄압을 두려워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나오고 있다.
한편, 2022년 10월 쓰퉁교 시위는 당시 중국의 엄격한 ‘제로 코로나’ 정책에 대한 불만이 팽배했던 상황에서 시진핑 정권에 정면으로 반대 의사를 표현한 사건이다. 혼자서 시위를 벌인 펑리파는 현장에서 체포되었지만, 그의 용기 있는 행동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중국인들의 반정부 시위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 이후 중국 곳곳에서는 펑리파를 지지하고 그의 구호를 따라 외치는 ‘백지 시위’가 확산되면서, ‘펑리파’ 혹은 ‘쓰퉁교’ 사건은 중국 민주화 운동의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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