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남아공의 ‘대사관 격하’에 반발…반도체 수출 통제 검토

대만 외교부는 29일(이하 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타이베이 대표부의 지위를 일방적으로 격하한 데 대한 대응 조치로 반도체 수출 통제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남아공 정부는 이달 21일 발표한 공식 통지문에서 타이베이 대표부(Taipei’s Liaison Offices)의 지위를 상업대표부(Commercial Offices)로 격하한다고 밝혔다. 그 배경으로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남아공의 입장’과 유엔총회 결의 제2758호를 제시했다. 해당 결의는 “중화인민공화국(PRC)을 중국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통지문에 따르면 남아공 정부는 지난 3월 31일부로 수도 프리토리아에 있는 타이베이 대표부의 외교적 지위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대만 외교부는 프리토리아와 케이프타운에 위치한 자국 대표부들이 현재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밝혔다.
필리프 옌(顏嘉良) 대만 외교부 서아시아·아프리카사무국장은 이날(29일) 타이베이에서 열린 정례 기자회견에서 외교부가 현재 다른 부처들과 함께 대응 조치를 협의 중이며 여기에는 “남아공에 대한 반도체 수출 제한 조치도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 조치들이 “대만의 주권과 국가적 존엄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옌 국장은 남아공 정부의 이번 조치를 “중국 압력에 지속적으로 굴복한 결과”라고 규정하며 외교부는 이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그는 프리토리아 당국에 조속한 협의 개시를 촉구했다.
옌 국장은 또 남아공 정부가 “유엔총회 결의 제2752호와 이른바 ‘하나의 중국 정책’을 잘못 인용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해당 결의가 대만의 주권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으며 ‘대만’이라는 단어조차 포함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남아공의 ‘하나의 중국 정책’은 중국 공산당(CCP)의 ‘하나의 중국 원칙’과 맥을 같이하지만 미국의 ‘하나의 중국 정책’과는 차이가 있다. 미국은 베이징이 주장하는 “대만은 자동적으로 중국의 일부”란 입장을 인정하지 않는다.
에포크타임스는 논평을 요청하기 위해 남아공 외교부인 국제관계협력부(DIRCO)에 연락을 취했다.
1971년 채택된 유엔총회 결의 제2758호는 중화인민공화국(PRC)을 유엔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하며, 중화민국(ROC) 대표단을 대체했다.
중화민국은 1912년 중국 본토에서 수립됐으며 1949년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이 패배하고 본토에서 철수한 이후 사실상 대만으로 이전됐다. 같은 해 마오쩌둥(毛澤東)이 베이징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언했다. 1971년 유엔 결의는 중국 내전을 종결짓지 않았고 대만의 법적 지위에 대해서도 아무런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중국 공산당과 중화민국 사이에는 지금까지 평화조약이 체결된 바 없다.
중국 공산당은 한 번도 대만을 통치한 적이 없지만, 자치 정부 형태로 운영되는 이 섬을 자국 영토의 일부로 간주하고 있으며, 무력 사용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통일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공산 정권은 대만의 외교 관계를 방해하고 국제기구 참여를 차단해 오며 세계가 자신들의 ‘하나의 중국 원칙’을 따를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해당 원칙은 대만해협 양안을 모두 통치할 유일한 합법 정부는 공산당 정권뿐이란 주장을 담고 있다.
2017년 대만은 나이지리아, 바레인, 에콰도르, 요르단, 두바이에 위치한 대표부의 명칭을 강제로 변경해야 했다. 나이지리아에서는 명칭 변경과 함께 대표부가 수도 아부자에서 최대 도시인 라고스로 이전되기도 했다.
남아공은 이달 21일 공식 통지문을 발표하기에 앞서 지난해에도 대만에 연락사무소 명칭을 변경하고 프리토리아에서 요하네스버그로 이전할 것을 요청하며 이를 통해 “수도에 대만 대표부가 위치한 이상 현상을 바로잡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베이징은 남아공의 결정을 환영하며 이를 “올바른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대만은 이 요청을 거부하고 남아공과 협의를 시도했다. 하지만 옌 국장에 따르면 프리토리아 측은 타이베이와의 협의에 응하지 않고 있다.
남아공의 21일 발표 이후 미국 의회-행정부 중국위원회 공동 의장인 공화당의 크리스 스미스(뉴저지) 의원은 이번 사안을 “매우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며 “현 상태에서 어떤 변화라도 매우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남아공의 대만 관련 발표가 이뤄진 다음 날인 22일 미 하원 외교위원회 법안 심사 회의에서 “이번 사안을 매우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며 “남아공의 신뢰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스미스 의원은 “남아공이 1997년 대만과 협정을 체결해 대만이 프리토리아에 대표부를 두고 그 외교관들에게 일정한 직위와 특권을 부여하는 데 동의했다”며 “이 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려는 시도는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중국 공산당이 대만을 상대로 다방면에서 가하는 끈질긴 압박은 미국의 최전선 민주주의 파트너인 대만을 지치게 하고 굴복시키려는 더 큰 전략의 일환”이라며 “민주주의 국가들이 중국 공산당의 요구에 굴복하거나 위축되지 않는 것은 미국의 중요한 관심사”라고 덧붙였다.
*이정현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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