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크타임스

중국서 고문 당한 망명 신청자, ‘파룬궁 보호법’서 희망을 보다

2025년 07월 29일 오후 5:57
중국을 탈출한 친융지에(秦永傑)가 2025년 7월 17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퍼레이드에 참석해 파룬궁(法輪功)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26년째 계속되는 박해 종식을 촉구하고 있다.⎥ Courtesy of Qin Yongjie중국을 탈출한 친융지에(秦永傑)가 2025년 7월 17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퍼레이드에 참석해 파룬궁(法輪功)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26년째 계속되는 박해 종식을 촉구하고 있다.⎥ Courtesy of Qin Yongjie

파룬궁(法輪功) 수련자 친융제(秦永傑)는 최근 미국 수도에서 열린 퍼레이드에 참석해 “미국 땅에서 신앙을 자유롭게 실천할 수 있음”에 대해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지난 7월 17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동부 지역 파룬궁 수련자들과 지지자들이 중국 정권에 의한 파룬궁 박해 26주년을 맞아 워싱턴D.C.에 모여 이날(매년 7월 20일, 통상 ‘7·20’이라고 부름)을 기억하고, 중국 공산당(CCP) 해체와 박해 종식을 촉구했다.

“중국에서 우리 가족이 겪은 박해는 중국 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수많은 사례 중 하나일 뿐”이라고 친융제는 말했다. “26년 동안 중국 본토의 파룬궁 수련자들이 겪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은 국제사회가 감히 이해조차 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파룬궁 또는 파룬따파(法輪大法)로도 알려진 이 수련법은 진(眞), 선(善), 인(忍)의 원칙에 바탕을 둔 정신적 명상수행이다.

중국 공산당은 파룬궁의 빠른 확산이 정권의 통제력을 위협한다고 판단해 1999년 7월 20일 이를 근절하기 위한 잔혹한 탄압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 이후 수많은 수련자가 불법구금·강제노동·고문을 당하고, 심지어 강제 장기적출을 당해 사망하는 박해를 겪어왔다.

“박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중국 공산당이 파룬궁 수련자들로부터 대규모로 장기를 적출하는 반인륜적 범죄 역시 멈춘 적이 없다.”

친융제는 에포크타임스의 자매 매체인 NTD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파룬궁 보호법이 미 의회를 조속히 통과해 대통령이 서명함으로써 법으로 제정되길 바란다. 그로 인해 이 박해가 하루빨리 끝나길 희망한다.” 이렇게 말한 그는 이어 “공산 중국에서는 신앙의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중국 공산당은 모든 중국 국민에게 아주 어린 나이부터 마르크스-레닌주의 투쟁 이론을 학습하도록 강요하는데 이는 매우 끔찍한 현실이다.” 친융제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5월 5일 미국 하원은 ‘파룬궁 보호법안(HR 1540)’을 이의 없이 구두 표결로 통과시켰다.

이 법안에는 파룬궁 수련자들에 대한 강제 장기적출에 연루된 인물들을 제재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법안에 따르면 ‘(미국) 대통령이 (중국) 인민공화국 내에서 비자발적인 장기적출에 관여하거나 이를 조장한 것으로 판단되는 외국 국적자’에게 제재를 가하게 된다.

이 법안을 대표 발의한 공화당의 스콧 페리 하원의원(펜실베이니아)은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이런 야만적이고 끔찍한 행위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따르도록 해야 한다.”

공화당의 테드 크루즈(텍사스) 상원의원은 지난 3월 상원에 해당 법안의 대응 법안(S.817)을 제출했다. 상하 양원에서 각각 해당 법안들이 통과되면 조율을 거쳐 통일된 법안을 만든 뒤 대통령에게 보낸다. 대통령이 최종 승인하는 서명을 하면 해당 법은 발효된다.

그는 성명에서 “중국의 파룬궁 수련자 박해는 종교의 자유와 인권에 대한 공격”이라며 “이러한 인권 유린에 맞서고 중국 공산당에 책임을 묻기 위해 동료 의원들이 함께해 주길 촉구한다”고 밝혔다.

새롭게 얻은 자유

이번은 친융제가 미국에서 열린 ‘7·20’ 행사에 두 번째 참석한 것이다.

그는 퍼레이드에 참여하며 “신성함과 벅찬 감정을 느꼈다”면서 “지금 중국 본토에서는 수련을 실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친융제와 그의 아내 천루이윈(陳瑞雲)은 중국에서 교사로 일하다 지난해 2월 공산 중국을 탈출했다.

“우리는 산과 강을 넘으며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를 거쳐 미국에 도착했다. 수많은 고난 끝에 마침내 딸과 재회할 수 있었다.”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이들은 지난한 여정을 계획하게 된 계기로 2014년 5월의 충격적인 사건을 들었다.

당시 부부와 딸은 산둥성 웨이팡(潍坊)시의 한 구금시설에 한 달간 억류됐다.

“그때부터 우리는 해외로 탈출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친융제는 이렇게 말했다.

“딸은 2018년 1월 유학을 위해 미국에 먼저 왔고 아내와 나는 지난해 마침내 딸과 함께할 수 있다는 꿈을 이뤘다.”

친융제가 파룬궁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2년 파룬궁이 세상에 소개된 이후 폭발적으로 확산되던 시기였다. 아내는 1년 앞서 수련을 시작했다.

“진, 선, 인이란 파룬궁의 원칙은 우리에게 미래에 대한 무한한 희망과 힘을 주었다. 그때부터 파룬따파는 우리 부부의 평생 신앙이 됐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친융제(秦永傑), 그의 아내 천루이윈(陳瑞雲), 그리고 딸이 함께한 2017년 12월의 모습. ⎥ Courtesy of Qin Yongjie

쇠창살 문에 79일 동안 수갑 채워져

박해가 시작된 이후 친융제와 그의 아내를 포함한 많은 수련자가 당국에 의해 강제로 연행돼 중국의 사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구금하는 강제노동수용소와 교도소로 보내졌다.

“우리 가족은 구금센터, 감옥, 세뇌교육 센터에 잡혀가는 일이 빈번했다”고 친융제가 말했다. “아내와 나는 중국 공산당에 의해 10회 이상 납치되고 구금됐으며 우리 딸도 두 차례 납치돼 구금됐다.”

그는 “나는 두 차례 강제노동수용소에 끌려가 총 4년간 수감됐고 아내는 3년간 수용소에 수감됐다”고 했다.

친융제는 웨이팡 강제노동수용소에서 두 달을 보낸 뒤 산둥성에서 체포된 남성 파룬궁 수련자 대부분이 구금되고 박해받는 왕춘(王村) 강제노동수용소로 이송됐다고 전했다.

그는 식사, 수면, 화장실 이용, 옷 갈아입는 동안에도 낮과 밤 할 것 없이 수갑이 채워진 채 141일을 견뎠다고 말했다.

친융제는 수용소에서 겪은 박해를 떠올리며 말했다.

“약 4㎡ 크기의 독방에 갇혔고 쇠창살 문에 수갑을 채운 채 서서 문을 안고 있어야 했다. 그 상태로 79일을 견뎠다.”

그는 “처음 10일 동안은 눈을 감을 수 없었고, 만약 눈을 감으면 작은 막대기로 머리를 맞았다”고 당시 상황을 되돌아봤다.

친융제는 장시간 서 있느라 다리가 심하게 부었고 균형을 잡으려 몸부림쳤다고 전했다. 10일째 되는 날에는 수면 박탈에 항의했는데 이로 인해 더 심한 학대가 이어졌다.

그는 10명 이상의 경찰이 전기봉을 들고 자신을 전기 충격으로 고문했다고 말했다.

“이 비인간적인 전기 고문은 오전 내내 이어졌으며 전신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그는 “전기 충격으로 생긴 상처는 사라지는 데 2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고문이 끝난 후에도 친융제는 수갑에 채워진 채로 철문에 기대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간수들은 자정부터 새벽 5시까지는 눕는 것을 허락했지만 나머지 시간 동안은 계속 문에 묶어 두었다. 이 고문은 79일간 계속됐다.

학대에 항의하며 친융제는 74일 동안 단식 투쟁을 벌였고 경찰은 코를 통해 위장으로 관을 삽입해 음식물을 강제로 주입했다. 관을 넣거나 뺄 때마다 코피가 나서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융제는 신앙을 굳건히 지켰다. 그는 파룬궁의 주요 원칙인 진실, 자비, 인내가 “사람들이 흔히 보편적 가치라고 부르는 것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모든 사회적 부패와 혼란, 그리고 자연재해나 인재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이 원칙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잔혹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굳건히 지켜왔다.”

세뇌센터

학대는 강제노동수용소뿐만 아니라 이른바 ‘세뇌센터’에서도 이루어졌다. 한번은 웨이팡시의 세뇌센터에서 친융제와 그의 아내 천루이윈이 각각 철창이 설치되고 창문과 문이 단단히 봉인된 작은 방에 격리됐다.

경찰은 또 다른 고문 방법을 썼다. 철제 의자에 수갑과 족쇄를 용접해 놓은 형틀을 사용하는 고문이었다.

친융제와 천루이윈은 이 철제 의자에 억지로 앉혀졌고 손에는 수갑을, 발목에는 족쇄가 채워졌다.

경찰은 3교대로 24시간 그들을 분리해 심문하며 신앙을 포기하도록 강요했다.

그들이 눈을 감으면 경찰은 차가운 물을 얼굴에 뿌리거나 귀 근처에 놓인 스피커로 큰 소리를 틀어 괴롭혔다.

이러한 24시간 이어지는 수면 박탈은 약 40일간 계속됐다. 경찰은 친융제와 천루이윈이 근무하던 학교에서 각각 2만 위안(약 460만원)과 1만 위안(약 230만원)의 벌금을 갈취한 후 그들을 풀어줬다. 이 벌금은 두 사람의 급여에서 공제됐다.

20년 넘게 중국 공산당의 감시는 한시도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항상 체포되거나 구타당하거나 투옥되거나 심지어 죽임을 당할까 두려움 속에 살았다”고 친융제는 말했다.

이들이 중국을 탈출한 후에도 경찰은 친융제의 가족들을 수차례 괴롭혔으며 친융제가 살던 동네에서 오랫동안 감시를 이어가며 두 사람을 붙잡으려 시도했다.

웨이팡시의 지속되는 박해

중국 정권의 파룬궁 박해를 기록하는 웹사이트 ‘밍후이’ 보도에 따르면 친융제의 고향 웨이팡시에서는 최소 139명의 파룬궁 수련자가 공산당 박해로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 많은 사례가 정권의 보복을 두려워하는 가족들 때문에 신고되지 않고 있다.

친융제는 신앙을 이유로 박해받아 사망한 파룬궁 수련자 중에서 자신이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만 해도 18명이나 된다고 말했다.

그들 중 일부는 구금 중에 사망했으며 다른 이들은 감옥, 노동수용소 또는 세뇌센터에서 풀려난 직후 목숨을 잃었다.

친융제는 그중 한 명인 장궈보(蔣國波)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고 말했다. 장궈보는 웨이팡 시 정치법률위원회의 전직 관리로 친융제와 같은 노동수용소에서 함께 박해를 받았다.

장궈보는 파룬궁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13차례 체포됐고 세 차례 강제노동형을 선고받았으며 이후 산둥성 남자교도소에서 5년간 수감되면서 약물 고문을 당했다.

출소 후에도 그는 교도소에서 강제로 주입된 알 수 없는 약물의 영향으로 복부 팽창, 허약감, 어지러움, 메스꺼움, 구토, 직장 출혈 등의 증상을 겪었으며 자주 기절하다가 결국 2021년 4월 29일 사망했다고 밍후이는 전했다.

친융제는 고향에서 계속되는 파룬궁 수련자 박해 소식을 알기 위해 명후이를 자주 방문하며 “웨이팡시에서의 박해는 여전히 심각하다”고 말했다.

명후이를 통해 그는 자신의 친구인 우지창(吳繼強)이 지난 4월 18일 쿠이원구 법원에서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의 다른 많은 친구도 여전히 중국 공산당에 의해 구금센터와 감옥에 갇혀 있다.

친융제는 “파룬따파를 지지해 주신 미국 정부와 미국 국민에게 감사드린다. 이러한 지지는 중국에서 박해받는 파룬궁수련생들이 정의를 실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정현 기자가 이 기사의 변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