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세의 저주’ 확산…기댈 곳 없는 중산층, 中 경제 새 뇌관으로

35세 넘으면 기회 급감…500대 기업 고위직 출신도 구직난
외자철수·외주전환에 회사 밀려난 40대, 재취업 문턱서 좌절
상하이 중심가에 거주하는 41세의 루모씨는 영업직에서 시작해 20년 가까이 경력을 쌓고 글로벌 500대 기업의 중국 총괄 임원에까지 올랐다. 하지만 40세가 되던 해 회사를 떠나고 벌써 3년째 무직 상태다. 루 씨는 현재 외식을 거의 하지 않고, 필수 생계비 외 모든 지출을 줄였다.
그와 비슷한 처지의 쑹모씨는 인테리어 회사의 부총경리 출신이지만, 실직 160일째 되던 지난달 15일 구입가 2200만 원짜리 고급시계를 중고로 팔았다. 그날은 그가 쓰는 신용 결제 서비스 ‘화베이’의 대금 상환 마감일이었다.
중국에서 ’35세의 저주’가 사회 전반에 걸쳐 확산되면서 중산층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지난 19일 중국 시사 전문지 ‘난펑촹(南風窗)’은 35세에서 40대 초반에 이르는 중산층 직장인들, 특히 고위직·전문직 출신들의 ‘대규모 실업 위기’ 실태를 고발했다.
매체는 아직 은퇴까지 한참 남은 중장년 직장인들이 젊은 세대와의 경쟁에서 밀려 노동시장에서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35세를 전후로 새로운 직장을 찾기가 매우 어려워지고,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된다는 ’35세의 저주’가 중국에서 본격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2018년부터였다. 당시에는 주로 개발자 등 업무 강도가 높은 직종에서 ‘젊고 활력 있는 인재’를 선호하는 분위기를 의미했다.
이 용어가 특정 산업 분야가 아닌 중국 사회 전반에 걸친 담론으로 확대된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였다. 대규모 해고와 외국 기업 철수, 경기 위축 속에 대거 회사 밖으로 쫓겨난 고연령 실직자들은 차가운 구직시장 현실을 마주하면서 위기를 절감해야 했다.
18년 경력의 한 헤드헌터는 “40세는 중국 직장에서 넘기 힘든 나이의 벽”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기업들은 전문성을 갖췄더라도 나이가 많은 구직자를 부담스럽게 여기며 아예 면접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는 능력과 경력이 강점이었지만, 지금은 ‘높은 연봉’과 ‘나이에 걸맞은 대우’ 등을 이유로 기피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45세면 폐기되는 느낌”…실직 가장, 밤이면 맥도날드로 피신
베이징 고급 주택가 싼리툰에 사는 40대 부부는 남편이 실직한 이후 두 사람 모두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 양육을 위해 안정된 직장이 절실하지만, 남편은 지난해 구한 새 직장에서 채 1년도 근무하지 못하고 실직했다.
육아를 위해 오래전 직장을 그만둔 아내는 경력이 단절돼 새 직장 구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남편은 차 대신 전기 자전거로 한 시간 떨어진 하이뎬구의 학교까지 아이를 통학시키고 있다.
두 사람은 식비를 줄이려 저녁 할인 시간에 마트를 찾으며 어떻게든 살아가려 하지만, 부부싸움하는 날이 부쩍 늘면서 정신적으로도 지쳐가고 있다. 남편은 감정이 격해지는 날이면, 집을 나가 근처 맥도날드 매장에서 밤을 새운다. 아내는 “45세가 되니 사회에서 버려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외국계 기업의 중국 측 대표였던 한 여성(47)은 올해 1월 미국 본사가 중국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실직했다. 다른 외국계 기업에서도 근무했던 그녀는 미국 본사 회의에 유일하게 중국인으로 참석할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은 인물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아버지의 사망, 사업 파트너의 배신 등 연이은 충격에도 버텼던 그녀는 이제 외국 유학 중인 두 딸의 학비를 위해 또다시 노동 시장에 뛰어들어야 했다. 최근 새 직장을 구했다는 그녀는 그나마 나은 상황에 속한다.
푸젠성 샤먼시에 거주하는 한 남성(42세)은 국유기업의 제품 디자인 책임자였으나, 40세가 된 후 최근 2년간 세 차례 실직했다. 지금은 생활비를 아끼려 도서관에서 더위를 피하며 하루를 보내고, 2위안짜리 찐빵으로 끼니를 때운다. 아직 여윳돈이 아주 없진 않지만 돈 쓰는 것에 두려움이 생겼기 때문이다.
지난해 태풍에 베란다 창문에 금이 가고 창문 하나가 날아갔지만 교체할 생각은 없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아버지를 본 어린 아들은 어느 날 직접 그린 100위안짜리 종이돈을 선물했다.
매일 구직 사이트를 확인하며 수십 곳에 지원했지만 연락이 온 곳은 한 곳도 없다. 디자인 분야에서 구조조정과 외주 용역으로 전환이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직원 채용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들어갔던 회사에서는 한 달 만에 짤렸다.
그는 “사측은 회의 끝에 자체 개발 대신 외주로 돌리기로 했다고 설명했다”며 씁쓸해했다. 그러면서 “몸도 예전 같지 않고, 생계도 급한데 새로운 분야를 공부할 여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난펑촹’은 이들 중 극소수만이 재취업에 성공했으며, 대부분은 어쩔 수 없이 자영업에 도전하거나 자포자기 상태라고 지적했다. 또한 일부는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에 도전하고 있지만, 사실상 무직이라고 전했다.
중국 정부가 추진 중인 연금 수령 연령 상향 정책도 이들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올해 1월 1일 시행된 새 정책에 따르면 연급 수령 개시 연령을 남자는 기존 60세에서 63세로, 여성은 50세에서 55세로 상향한다. 단, 여성 관리자와 전문직은 55세에서 58세로 변경한다.
중국 국가통계국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중산층 기준은 연소득 10만 위안(약 1900만원)에서 50만 위안(약 9700만원) 사이 3인 가구로, 전체 인구의 약 30%로 추정된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제 회복이 더뎌지면서 소득 감소로 인해 저소득층에 진입하는 추세다.
40대에 직장을 떠나게 된 사람들은 연금 수령까지 20년 가까이 기다려야 한다. 실업 기간이 길어지면 의료보험·연금 납부기간 미달로 보장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자녀 교육비와 의료비를 부담하고 고령자를 부양하는 등 중국 사회의 허리 역할을 하는 중산층이 위기에 놓이면서 중국 사회의 또 다른 위험 요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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