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보수당, “中 선박 계약 관련 10억 달러 대출 철회” 촉구

캐나다 보수당이 연방 정부에 ‘연안 여객 운송업체 BC페리가 중국 국영 조선소에서 제작하는 신규 선박 4척 구매 용도로 신청한 10억 캐나다달러(약 약 1조 4억원) 규모의 대출을 취소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이 대출은 캐나다 연방 인프라은행(CIB)이 제공하는 것으로, 캐나다 보수당은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관세로 자국 산업이 압박받는 상황에서 해당 선박을 자국 내에서 건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캐나다의 피에르 푸알리예브르 보수당 대표는 7월 9일(이하 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고 자유당 정부에 이 같은 요청을 공식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 국영 조선소와의 계약에 대한 자금 지원은 캐나다의 철강, 알루미늄, 조선업 일자리를 외국 국영기업에 외주화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캐나다 인프라은행은 지난 6월 말 BC페리에 대한 10억 달러 대출을 발표하면서 자금 지원이 없을 경우 신규 선박 건조 비용이 전적으로 승객에게 전가될 수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푸알리예브르 대표는 이날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부당하고 불법적인 미국 관세로 인해 캐나다의 철강, 조선업 노동자들이 피해를 입고 있는데 자유당은 중국에 수십억 달러를 보내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며 “중국은 동시에 우리의 농업 및 식품 생산자들에게 가혹한 관세를 부과해 보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대출을 취소하라. 일자리를 BC페리와 캐나다로 되돌려라”고 강조했다.
캐나다 하원 교통위원회는 7월 둘째 주 초 연방정부의 대출에 대한 검토 절차를 시작하자는 보수당의 동의안을 가결했다. 이번 검토 과정에서는 그레고어 로버트슨 주택·인프라부 장관,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교통·내무무역부 장관, 에런 코리 캐나다 인프라은행(CIB) 최고경영자(CEO), 그리고 니콜라스 히메네스 BC페리 CEO가 증인으로 출석해 증언할 예정이다.
동의안을 발의한 보수당 교통담당 비평가 댄 앨버스 의원은 이틀 앞선 7일 열린 교통위원회에서 “국영기관인 캐나다 인프라은행이 캐나다 일자리를 외국에 내주는 데 자금을 대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충격적”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어 “이건 명백히 잘못된 일”이라며 “정부 입장이 무엇인지 명확한 답변이 필요하다. 언론에서는 상반된 보도들이 나오고 있어 혼란스럽다”고 덧붙였다.
BC페리는 지난 6월 중국 국영기업 ‘차이나 머천츠 인더스트리(웨이하이 조선소)’와의 계약을 통해 신규 선박 4척을 건조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 계약은 입찰 경쟁력, 기술 역량, 안전 및 품질 기준, 경험, 비용, 납기 일정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엄격한 글로벌 입찰 절차’를 거쳐 결정됐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이번 입찰에 캐나다 조선소는 단 한 곳도 참여하지 않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州)의 지역 대표 조선소인 ‘시스팬’은 이에 대해 “BC페리가 비용 경쟁력을 지나치게 중시한 결과 산업 기준이 더 낮은 국가들과는 경쟁이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BC페리가 선박 조달 기준을 공개한 직후인 2024년 9월 26일 시스팬은 성명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캐나다와 브리티시컬럼비아의 조선소 및 공급망은 낮은 임금과 느슨한 고용·환경·안전 기준을 가진 국가들과는 경쟁이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히메네스 BC페리 CEO는 캐나다 인프라은행의 대출과 같은 금융 수단이야말로 재정 압박 속에서도 신규 선박에 투자할 수 있는 핵심적인 도구라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수년간 역대 최고 수준의 수요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비용이 수익을 초과하고 기반 시설이 노후화되면서 BC페리는 심각한 재정 압박에 직면해 있다”고 밝혔다.
한편 프릴랜드 연방 교통부 장관은 이번 계약 결정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중국과의 관세 갈등, 국가 안보 우려, 그리고 자국 기업에 대한 우선 지원의 필요성 등을 이유로 들어 중국 조선소에 계약을 맡긴 BC페리의 판단에 문제를 제기했다.
프릴랜드 장관은 지난 6월 16일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마이크 판워스 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 신형 페리 도입에 연방 자금이 단 1센트라도 전용되지 않았다는 점을 최대한 확신을 가지고 검증하고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프릴랜드 장관은 과거 BC페리에 제공된 캐나다 인프라은행의 대출을 언급했지만 향후 자금 지원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이번 10억 캐나다달러 규모의 대출은 올해 3월 초 캐나다 인프라은행 이사회에서 승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데이비드 에비 주총리는 중국 조선소가 최종 선정된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결과는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선박 도입의 시급성과 비용·시간 문제를 고려해 입찰 과정을 다시 열지는 않겠단 입장을 밝혔다.
대신 그는 “향후 추가로 도입될 페리들은 캐나다에서 건조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에비 주총리는 또 동부 대서양 연안 지역과 비교해 태평양에 면한 브리티시컬럼비아 주민들이 훨씬 적은 연방 보조금을 받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BC페리는 불균형한 페리 시스템 아래 운영되고 있으며 대서양 지역 주민들은 오타와로부터 훨씬 큰 보조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캐나다 인프라은행을 관할하는 연방 주택·인프라부 장관실은 이번 사안에 대한 논평 요청에 아직 응답하지 않고 있다.
앞서 프릴랜드 장관은 지난 6월 16일 서한에서 판워스 장관에게 중국발 사이버 보안 위협 등 지속적인 안보 우려를 언급하며 “BC페리가 이러한 안보 리스크를 완화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혀 달라”고 촉구한 바 있다.
보수당 역시 해당 계약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보수당은 “중국이 캐나다에 대한 최대 안보 위협이란 점은 (전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 마크 카니도 언급한 바 있다”면서 “연방 자금이 중국 공산당이 통제하는 기업에 흘러가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우려는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보수당에서도 제기됐다. 해당 당의 교통 담당 비평가인 하르만 방구 주의원은 “중국에서 신규 선박을 건조하는 것은 국가 안보에 중대한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선박들이 운항을 시작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조용히 어떤 데이터를 수집하게 될까? 승객 이동 경로, 여행 패턴, 운영 시스템 정보까지? 우리는 이미 내장된 기술이 어떻게 악용될 수 있는지를 목격했다.”
이는 방구 주의원이 7월 6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남긴 글이다.
BC페리가 계약한 중국 조선소의 모기업인 ‘차이나 머천츠 그룹 리미티드(China Merchants Group Limited)’는 스스로를 “중앙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핵심 국영기업”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 회사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을 통한 ‘채무 함정 외교(debt-trap diplomacy)’ 의혹과 중국 베이징 정부의 전략적 이익을 증진하는 글로벌 활동, 특히 중국 인민해방군의 해군력 확장 지원과 관련해 국제사회의 감시를 받고 있다.
2024년 미국 정부가 발표한 보고서는 중국이 미국 해운산업에 투자하는 것과 관련해 우려를 제기한 바 있다.
보고서는 미국으로 향하는 항만 크레인에서 ‘허가되지 않은 셀룰러 모뎀’이 발견돼 특정 장비 정보를 수집하는 데 사용된 사례를 언급하며 중국산 장비와 기술의 활용에 대한 경계심을 나타냈다.
*이정현 기자가 이 기사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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