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크타임스

왕이, 유럽 방문서 속내…“러 패배하면 미국이 中 겨눌 것”

2025년 07월 04일 오후 12:28
2025년 7월 2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제13차 중-EU 전략대화가 열린 가운데 왕이 중국 외교부장(좌), 카야 칼라스 유럽연합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우)이 대화하고 있다. | Francois Walschaerts/AFP via Getty Images2025년 7월 2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제13차 중-EU 전략대화가 열린 가운데 왕이 중국 외교부장(좌), 카야 칼라스 유럽연합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우)이 대화하고 있다. | Francois Walschaerts/AFP via Getty Images

SCMP “왕이, 中은 러시아의 패전 감당 못 한다고 발언”
러-우 전쟁에 대한 ‘중립’ 위장 사실상 벗어던졌다는 평가

중국 외교부장 왕이(王毅)가 유럽연합(EU) 외교 수장과의 비공개 회담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패배할 경우, 미국의 외교·군사적 압박이 곧바로 중국을 향할 것”이라며, 러시아의 패전을 중국은 감당할 수 없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중국공산당이 그간 국제사회에 내세워 온 ‘중립’ 입장과 배치되는 발언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중국공산당의 안보와 직결된 전략 현안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2일(현지시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 같은 내용을 단독 보도하며, 왕이 부장이 이날 카야 칼라스 신임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와 1대1 회담을 갖고 직접 해당 입장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칼라스 대표는 에스토니아 총리를 지낸 인물로, 러시아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유지해 온 인사다.

중국공산당은 그동안 러시아의 침공에 대해 공식적인 비판을 삼가고, 평화 중재자 역할을 자처해 왔다. 하지만 이번 발언은 유럽 내에서 제기돼 온 ‘중국은 러시아의 전략적 실패를 우려해 전쟁이 길어지기를 바란다’는 시각을 사실상 인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왕이, 회담 도중 EU 대표에 ‘견해 주입’ 시도

SCMP는 익명의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왕이 부장이 4시간 가까이 이어진 회담에서 칼라스 대표에게 ‘현실 정치(Realpolitik)’에 관해 가르치려 했다고 전했다. 그중 하나는 미국이 아시아 문제에 모든 관심을 집중하려 한다는 것이다.

또한 EU 내부에서는 이러한 왕이의 발언을 두고, 중국공산당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가 자신들의 전략적 필요성에 부합한다고 보고 있다는 해석이 제기됐다. 미국이 아시아 문제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힘을 분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중·EU 관계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최대 갈등 요소다. EU는 줄곧 중국이 러시아에 군·민수 겸용 장비를 제공하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공산당 지도부는 이를 부인하며 스스로를 ‘평화 중재자’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러시아와의 밀착 외교 및 경제 협력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양측 갈등은 다음 중·EU 정상회담을 앞두고 더욱 분명해졌다. 왕이 부장은 이날 칼라스 대표에게 “오는 7월 24~25일로 예정된 중·EU 정상회담 일정을 하루로 줄이고 싶다”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24일 베이징에서 시진핑 주석 및 리창 총리와 회담한 뒤, 25일 안후이성 허페이에서 열리는 중·EU 비즈니스 포럼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중국 측 요청에 따라 현재는 베이징 일정 하루만 진행하는 것으로 조정됐다.

“EU도 미국 편 들까” 중국의 불안감 고조

파이낸셜타임스(FT)는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베이징은 최근 EU가 영국처럼 미국과 ‘무역·공급망 협정’을 체결할까 봐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은 최근 미국과 공급망 안정, 수출 통제, 철강·알루미늄 관세 등에 관한 무역 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브뤼셀에 기반을 둔 유럽 정치경제센터(ECIPE)의 이호석(Hosuk Lee-Makiyama) 소장은 “중국 외교부의 최근 강경 성명들은 EU를 겨냥한 것”이라며 “베이징은 EU가 워싱턴 편에 설 가능성을 진지하게 우려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최근 베이징에서 열린 중·EU 고위급 회담에 참석한 바 있다.

EU의 대미 수출 규모는 대중 수출의 2배에 이른다. 협상에서 미국이 훨씬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중·EU 간 갈등은 러시아 제재 문제에서도 불거지고 있다. EU는 대러시아 제18차 제재안에 따라, 러시아와 거래를 지속한 혐의로 중국계 소형 은행 2곳을 제재 대상에 포함시킬 방침이다. 현재 EU 27개국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왕이 부장은 해당 은행들이 실제로 제재를 받게 되면, 중국도 보복에 나설 것이라고 거듭 경고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