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위상 흔들리나…기념관 부친 이름 빠지고, 측근 인사는 교체

중국 정치권 안팎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겉으로는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듯하지만, 내부에서는 이미 ‘대세가 기울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군권은 이미 군 서열 2위인 장유샤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이 대행하고 있고, 정국 운영도 전임자인 후진타오 전 총서기와 원자바오 전 총리에게 넘어갔다는 반체제 언론인들의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최근 중국 산시성 푸핑현(富平縣)에서 발생했다. 이 지역에 새로 문을 연 ‘관중(關中)혁명기념관’이 당초 계획과 달리 시진핑의 부친 시중쉰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시진핑은 1953년 5월 베이징에서 태어났지만 중국 언론에서는 그의 부친 시중쉰이 태어난 산시성을 ‘부친의 고향’, ‘집안의 뿌리’로 언급하며 정치적 연결고리를 강조한다.
또한 이 기념관은 시중쉰 사망 23주기를 맞은 지난 5월 24일 개관했으며, 전시 물품에는 시중쉰의 유물 진품이 다수 포함됐다. 원래 이 지역의 소규모 시중쉰 기념관에 전시되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하지만 관영 신화통신은 개관 소식을 단 몇 문장으로 간략히 보도하는 데 그쳤고, 개관식도 조용히 치러졌다. 특히 이 기념관은 당초 ‘시중쉰 기념관’으로 명명될 예정이었지만, 개관 직전 ‘관중혁명기념관’으로 이름이 바뀐 것으로 전해졌다.
즉 기존의 작은 시중쉰 기념관 대신 새롭게 건설한 기념관을 시중쉰 기념관으로 바꿀 계획이었지만, 갑작스럽게 산시성 중부와 허난성 서쪽 끝을 칭하는 지명인 ‘관중’을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싱가포르 친중 매체인 ‘연합조보’는 이 기념관이 시중쉰의 고향인 푸핑현에 위치해 있고, 개관일도 그의 기일과 겹치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원래는 시중쉰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중국 시사평론가 천포쿵(陳破空)은 “당초 이 기념관은 시중쉰을 기념하는 의미로 수년 전부터 준비된 사업이었고, 내부 전시물도 대부분 그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며 “하지만 개관 직전에 이름이 바뀐 것은 당내 반발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천포쿵은 “이는 시진핑의 정치적 입지가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덧붙였다.
또한 시진핑의 동생 시위안핑(習遠平)이 산시 지역에서 부친의 업적을 조망하려는 활동을 지속해 왔지만, 개관 당일 이름이 바뀌었다는 점에서 현지 당국조차 이에 협조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에 거주 중인 중국 학자 우줘라이(吳祚來)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플랫폼인 X를 통해 “기념관 명칭이 ‘시중쉰’에서 ‘관중혁명’으로 바뀐 것은 정권 교체를 암시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는 기념관 명칭 변경에 중화권 전문가들이 기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최근 시진핑의 권력을 둘러싼 이상 기류가 지속적으로 감지돼 왔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 사례는 지난 27일 포착된 공안부의 인사 변동이다. 이날 장쑤성에서 열린 장쑤성 공산당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후빈천(胡彬郴)이 고위 관리 좌석에서 발견됐다.
후빈천은 중국 공안부 부장 왕샤오훙의 비서실장이다. 그가 장쑤성 회의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공안부의 핵심 참모가 돌연 지방 공산당위원회 관리로 사실상 좌천됐다는 의미다.
공안부는 시진핑 정권의 안정 유지 전략 핵심 부처이며 왕샤오훙 부장 부임 이후 부장 보좌 및 고위 간부가 대거 교체되며 시진핑의 측근들로 채워졌었다.
이번 후빈천의 좌천이 단순한 인사 이동인지, 아니면 정국 변화의 신호탄인지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예사로운 움직임은 아니라는 게 중화권 평론가들의 견해다.
앞서 지난달에는 통일전선부장 스타이펑(石泰峰)과 중앙조직부장 리간제(李干傑)가 서로 자리를 바꾸는 인사가 있있다. 중앙조직부는 인사권을 쥔 실세 조직이며, 리간제는 시진핑의 측근이었다. 즉 시진핑 측의 인사권이 약화된 조치였다.
이를 두고도 외부에서는 “시진핑의 인사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제기된 바 있다. 이번 후빈천의 지방 발령 역시 이와 무관치 않은 움직임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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