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크타임스

말레이시아 ‘화웨이 칩’ 도입 취소…미·중 기술패권 충돌 여파

2025년 05월 23일 오후 2:59

“말레이, 美 제재 우려 화웨이 배제”…中 반발에도 이탈 가속화
전문가 “중국 칩, 성능 낮고 보안 취약…가격 경쟁력도 한계”

미·중 기술패권 경쟁이 동남아시아로 확산되고 있다. 말레이시아가 중국 화웨이의 인공지능(AI) 칩 ‘Ascend(升腾)’의 전면 도입을 선언한 지 하루 만에 이를 철회하면서, 사실상 미국의 기술 규제 압력에 굴복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이에 강하게 반발하며 법적 대응까지 거론하고 있지만, 역효과로 오히려 동남아 국가들의 이탈을 부추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지난 19일, 말레이시아 디지털통신부 차관 테오 니에 칭은 연설을 통해 “전국에 화웨이의 GPU 기반 AI 서버를 도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의 AI 모델 도입 계획도 덧붙였다. 21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그의 사무실은 전날 언론의 질의에 “화웨이 기술을 도입한다는 발언을 철회한다”고 밝혔으며, 그 이유는 공개되지 않았다.

말레이시아 산업부는 “이는 민간 주도의 사업이며 정부 차원에서 추진한 것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고, 화웨이 측도 “Ascend 칩을 말레이시아에 판매한 적이 없으며, 정부의 공식 구매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번 혼선의 배경에는 미국의 강도 높은 반(反)중 기술 통제 정책이 있다. 미국 상무부는 “전 세계 어디에서든 화웨이의 AI 칩 사용은 수출 규제 위반”이라는 지침을 냈다가 해당 문구를 삭제하기도 했다. 그 대신, “화웨이 칩 등 중국산 고성능 반도체 사용은 위험 요소”라고 주의를 촉구했다.

대만 국방안보연구원 수즈윈(蘇紫雲) 소장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술안보 정책이 다시 강화되고 있다”며 “중국이 값싼 칩으로 시장을 공략하지만, 성능은 떨어지고 백도어가 숨겨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홍색 공급망(Red Supply Chain)에 엮인 칩은 디지털 바이러스와 연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홍색 공급망은 과거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삼아 운영돼 온 공급망이다. 이후 한국, 대만 등 경쟁국을 배제하고 중국산으로 대체한 공급망으로 그 의미가 확장됐다.

화웨이는 AI 칩 시장에서 가격을 무기로 영향력을 확장해 왔지만, ‘보안 불안’과 ‘미국 시스템과의 호환 불가’라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전문가들은 “결국 선택의 기로에 선 나라들은 미국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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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와 말레이시아의 관계는 긴밀했다. 말레이시아 총리 안와르 이브라임은 작년 11월 베이징에서 화웨이 고위진과 회동했고, 올해 4월에는 시진핑 주석이 말레이시아를 방문해 신기술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정부는 이번에 미국의 요구에 따라 화웨이와의 협력 계획을 돌연 철회했다.

대만의 경제평론가 황스충은 “미국은 ‘화웨이 시스템을 쓰면 미국 기술은 못 쓴다’는 조건을 내걸었고, 이에 말레이시아는 현실적으로 미국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AI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있어 미국 시스템 없이 가능한 나라는 없다”고 했다.

황스충은 중동 지역도 유사한 경로를 밟았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동을 순방한 뒤, 중동 국가들 역시 미국을 선택했다. 중국이 이를 되돌리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반격에 나섰다. 중국 상무부는 21일 “미국의 수출 규제는 중국을 억제하려는 조치”라며 “이를 따르는 개인이나 단체는 중국의 ‘반외국제재법’을 위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중국의 경고가 실효성이 없다고 본다. 수즈윈 소장은 “중국의 위협은 정치적 메시지에 불과하다”며 “오히려 외국 기업들을 더 강하게 미국 편으로 밀어 넣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황스충 역시 “중국이 보복한다고 해도, 칩 기술의 주도권은 미국에 있고, 각국 정부나 기업은 이를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특히 미국은 최근 말레이시아와 베트남 등지에서 중국산 칩을 우회 수출하거나 ‘원산지 세탁’하는 행위에 대해 철저히 감시 중이다. 수 소장은 “베트남, 말레이시아와의 기술 결별은 미·중 기술전쟁의 바로미터”라고 강조했다.

칩 전쟁에서 고립되는 중국…“내수시장으로도 못 버틴다”

미국은 이미 중동 국가들에 고급 AI 칩인 ‘엔비디아’를 공급하고 있으며, 이들 국가는 곧바로 “중국에 재수출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명확히 했다. 이는 사실상 미국의 시스템에 합류하는 선언으로 해석된다.

미국 정부는 동시에 중국 반도체 기업 ‘SMIC’와 ‘양쯔 메모리(YMTC)’의 계열사를 수출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대만의 경제 전문가 황스충은 “중국은 이제 관세 압박, 기술 봉쇄, 공급망 차단에 동시에 직면했다”며 “경제적으로 사면초가에 몰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수즈윈도 “중국은 기술적으로는 내수시장 외에는 출구가 없는 상태이고, 내수마저 ‘내부 경쟁’에 빠져 경착륙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