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안전” 강조 이면에는 軍 반란에 대한 두려움

강우찬
2024년 07월 5일 오전 10:42 업데이트: 2024년 07월 5일 오전 11:27

중국 공산당은 2022년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1978년 11기 3중전회에서 제시한 ‘경제건설 중심’의 국정 방향을 사실상 ‘안보 중심’으로 바꾸었다.

그 이후 중국 공산당은 대내외 투쟁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경기 침체, 민생고, 천재지변에 영민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이유다. 그 중심에는 군부의 반란에 대한 두려움이 놓여 있다.

지난달 17~19일 중국 공산당은 혁명성지로 불리는 산시(陝西)성 옌안(延安)에서 중앙군사위 정치공작회의를 소집했다. 이 회의에서 시진핑은 “군대에 대한 당의 절대적 지도력을 견지해야 한다”며 “총대는 언제나 당에 충성하고 믿음직한 자들이 통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집권 이후 지난 12년간 이러한 두 가지를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당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실제로는 시진핑 자신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시 말해, 이는 시진핑이 여전히 군에 대한 장악력에 스스로 의심을 품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 집권 후 지금까지 군의 반란에 대한 불안감을 잠재우지 못한 것이다.

이는 시진핑의 권력 기반에서 비롯된 문제다. 그는 2012년 집권할 때까지 군을 지도한 경험도 없었고 군부 내 인맥도 제한적이었다. 반면, 그가 집권하던 당시 군의 최고 지도부인 군사위 부주석(2인)은 모두 당내 최대 정적인 장쩌민파 인물 쉬차이허우, 궈보슝이 차지하고 있었다.

결국 시진핑은 장쩌민파로부터 군권을 빼앗기 위해 ‘호랑이(고위 부패관리) 사냥’으로 불리는 반부패 투쟁을 실시했다. 그로 인해 군부 내 기반을 다질 수 있었지만, 시진핑 때문에 부귀영화를 잃게 된 많은 부패 장성들의 원망을 사야만 했다.

시진핑에 대한 중국 공산당 인민해방군(이하 중공군)의 저항감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시진핑의 3연임을 사실상 확정 지은 2022년 10월 ’20차 당대회’ 개막 전까지, 반부패 투쟁으로 숙청된 중공군 고위 장성은 무려 170명에 달한다.

이는 1927년 중국 공산당 창당 이후 전쟁과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쓰러진 장성들보다 더 많은 숫자다. 게다가 이는 시진핑 당국의 반부패 사정에 압력을 느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장성들은 포함하지 않은 숫자다. 시진핑에게 보복하려는 군 내부 세력의 규모를 어림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6개월 사이 리상푸(李尚福) 중앙군사위 위원 겸 국방부장, 리위차오(李玉超) 로켓군 사령관(상장·대장급), 딩라이항(丁來杭) 전 공군 사령관(상장) 등 수십여 명의 고위 장성이 비리행위로 숙청됐다. 이들은 모두 시진핑의 최측근 그룹인 ‘시자쥔(習家軍)’ 소속 장성이다.

중국에서 부패로 숙청당했다는 것은 일종의 구실이며 실제로는 권력다툼에서 밀려났거나 최고지도자를 배신했다는 의미다. 시진핑 입장에서 같은 편 고위 장성들의 줄지은 배신은 지난 10년간 축출한 장쩌민파 장성들의 저항보다 더욱 타격이 컸을 수밖에 없다.

군부 숙청과 관련해 최근 가장 눈길을 끄는 인물은 군사 평론가인 류야저우(劉亞洲· 72) 전 공군 상장이다. 류야저우는 태자당 소속으로 중공군 전현직 장성들 중에서도 고위층에 대한 영향력이 매우 막강한 인물이지만 지난 3월 말 종신형에 처해졌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류야저우에 대한 처벌은 시진핑이 자신의 권위에 도전한다면 원로2세 그룹인 태자당에게서도 등을 돌릴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으로 평가된다. 시진핑이 더욱 중국 공산당 권력집단 내부에서 고립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 이 기사는 탕징위안의 칼럼을 참조했습니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