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시자 대부분 틀린 中 공무원 시험 문제…“공자의 성(姓)은?”

공자(孔子)는 중국 고대의 대표적인 사상가이자 교육자다. 위대한 스승을 뛰어넘어 성인(聖人)의 반열에 올랐으며, 현대 중국에서는 전통과 역사를 상징하는 인물로 평가된다.
그런데 ‘공자의 성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최근 중국의 한 공무원시험에서 출제돼 눈길을 끌었다. 단순한 상식문제 수준이었지만 수험생 대다수가 오답을 적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지난달 중국 포털 소후닷컴 등에 다르면, 해당 문제는 객관식 사지선다형으로 “공자의 성은 무엇인가(孔子姓什么)?”라는 물음에 ‘A. 자(子), B. 공(孔), C. 이(李), D. 노(老)’라는 4개의 보기가 주어졌다.
쉽게 정답을 골라낼 수 있는 ‘서비스 문제’로 여겨졌지만, 정답률은 처참했다. 정확한 정답률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응시자 대부분이 ‘공(孔)’을 정답으로 골랐고, 일부는 ‘이(李)’, ‘노(老)’라고 응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답은 바로 ‘자(子)’였다.
흔히 고대 중국의 성현들은 성씨 뒤에 존경의 뜻을 담아 ‘자(子)’를 붙여 부른다. 공자, 맹자, 순자 등이다. 실제로 세 스승의 본명은 각각 공구(孔丘), 맹가(孟軻), 순황(荀況)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혼동하기 쉬운 부분이 있다. 지금은 성씨(姓氏)를 하나의 개념으로 여기지만, 고대 중국에서는 성(姓)과 씨(氏)를 구분해서 사용했다는 점이다. ‘성’은 하나의 조상, 즉 혈통이나 종족을 나타내고 ‘씨’는 그 아래에서 파생된 분파나 가계를 나타냈다.
이에 따르면, 공자는 성이 ‘자(子)’, 씨가 ‘공(孔)’이었다. 즉, ‘자’ 종족에 속하는 ‘공’씨 가문 사람이라는 뜻이다. 자(子)는 은나라 왕족이 사용하던 성으로 알려졌다.
공자의 선조는 은나라 초대 군주 ‘탕왕’으로 그의 후손은 모두 ‘자’라는 성을 사용했다. 공자는 32세손에 해당하며, 그의 6세 조부인 ‘공부가(孔父嘉)’ 이후로 후손들이 ‘공’을 씨로 사용하며 가문을 구분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위대한 스승 뒤에 붙는 ‘자(子)’와 은나라 왕족의 성 ‘자(子)’가 같다 보니, 수험생으로서는 더욱 헷갈릴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공자의 ‘공’은 성이 아닌 씨였으며, 진짜 성은 ‘자’였던 셈이다. 하지만 한나라 이후 성씨가 통합돼 이러한 구분은 점차 사라졌고, 오늘날에는 대부분 ‘공자’의 성을 ‘공’으로 알고 있다.
만약 질문이 ‘공자의 성씨는 무엇인가?’였다면 ‘공’도 정답으로 인정됐을지 모른다. 하지만 질문은 ‘공자의 성은 무엇인가?”였다. 쉬어가는 문제가 아니라 ‘함정’ 문제였던 셈이다.
사실 이 문제는 한 번만 출시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작년 하반기 시험에도 출제됐고 올해 6월 시험에도 다시 출제됐다고 한다. 다만, 국가직인지 지방직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춘추전국, 혼란의 시대에서 도덕성 강조한 공자
공자의 이름은 구(丘)다.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은 노나라의 용맹한 장수로 말년에 안징채와의 사이에서 공자를 얻었다. 공자의 어머니가 니구산(尼丘山)에서 기도한 후 그를 잉태했고, 태어날 때 정수리가 움푹 들어간 모양이 그 산과 닮아 이름을 ‘구(丘)’로 지었다고 전해진다.
기원전 551년에 태어나 기원전 479년에 세상을 떠난 공자는 춘추 말기의 혼란한 시대를 살며 도덕과 윤리, 정치, 교육 전반에 걸친 사상을 정립했다.
50세가 넘은 나이에 한때 노나라의 사구(司寇, 법무장관)를 지냈지만, 정치적 견해 차이로 관직을 내려놓고 제(齊), 위(衛), 송(宋), 진(陳), 채(蔡), 초(楚) 등 여러 나라를 유세하며 제자를 길렀다. 그의 제자는 3천 명에 달했고, 이 가운데 72명이 특히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공자의 사상은 중용(中庸),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 등 인간과 사회의 도리를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동아시아 전통문화의 핵심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에도 그는 ‘중국 문화의 뿌리’로 불리며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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