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기관지 1면서 사라진 시진핑…헤드라인엔 “개방해야 발전”

인민일보, 10일자 1면에 화웨이 창업자 런정페이 인터뷰
시진핑 언급 없이 “국가 더 개방해야 우리도 발전” 강조
‘수출 없이 내수로만’ 추진해 온 시진핑 정책과 정면 배치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지난 10일 자 1면에서 시진핑 총서기에 대한 언급 없이 ‘국가가 더 개방될수록 우리는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기사를 싣는 등 이례적 편집을 선보였다. 이를 두고 중국 정치권 내부에 변화의 조짐이 감지된다는 관측이 잇따르고 있다.
이날 인민일보는 1면 우측 하단에 가장 큰 지면을 할애해 화웨이 창업자 런정페이(任正非)와의 인터뷰를 실었다. 화웨이는 국유기업을 뛰어넘어 공산당이 실질적으로 운영한다는 뜻의 ‘당영(黨營)기업’으로 불릴 만큼 중국 공산당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런정페이 또한 공산당 당국의 경제정책을 최전선에서 옹호해 온 인물이다.
하지만 이번 인터뷰 기사는 런정페이의 입을 빌려 “개방”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는 시진핑이 강조해 온 폐쇄적 통제 강화와 ‘자력갱생’ 노선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시진핑 집권 후 중국 공산당은 ‘쌍순환’ 정책에 따라 수출 없이 내수로만 자립할 수 있는 경제 구축을 추진해 왔다. 이 정책은 중국 경제를 국내 순환과 국제 순환으로 구분하며, 국내 순환을 경제 성장의 핵심으로 삼겠다는 취지다.
런정페이는 인터뷰에서 “개방과 발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국가가 점점 더 개방되면, 개방이 우리를 더 발전하게 만든다”고 답했다. 이어 “국가는 당의 영도 아래 있다”고 덧붙였지만, 인터뷰 전체를 통해 ‘시진핑’이라는 이름은 런정페이나 기자에게서 단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았다.
이 인터뷰가 공개된 시점은 미중이 런던에서 무역 협상을 진행 중이던 기간과 맞물린다. 이튿날인 11일(현지시각),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양측이 합의에 도달했다고 발표하며, 중국이 미국에 희토류를 사전 공급하고 시장을 개방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중화권 시사평론가 장펑(江峰)은 “트럼프의 강공에 대응해 베이징은 정면 충돌 대신 ‘저자세 응답’으로 전략을 틀었다”며 “런정페이라는 비(非)정치인의 입을 통해 ‘우리는 그리 강하지 않으니 길을 막지 말라’는 메시지를 미국에 보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장펑은 또한 이 인터뷰에서 시진핑 이름이 전혀 언급되지 않은 점은 ‘탈(脫)시진핑’ 움직임의 일환일 수 있다며, 최근 중국 내부에서 감지되는 ‘탈시진핑’ 정황을 세 가지 나열했다.
우선, 인권 탄압, 특히 반체제 인사 추적과 종교 박해를 전담해 온 세력과의 결별이다. 지난 9일 단행된 공안부 부부장이자 종교탄압조직인 610사무실 부주임이었던 가오이천(高以忱)에 대한 숙청이 대표적 사례다. 그는 겉으로는 부패 혐의 때문이지만, 실상은 시진핑식 강압 통치의 청산 작업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둘째, 경제정책 되돌리기다. 지난 8일, 신화통신은 ‘공급 측 구조개혁’을 재조명하는 기사를 냈다. ‘공급 측 구조개혁’이란, 수요만으로 경제를 이끌 수 없으며 공급과 생산의 질을 향상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리커창 전 총리의 대표적인 경제 노선으로, 시진핑 집권 후 사실상 폐기된 노선이었다.
시진핑은 이와 완전히 반대되는 ‘수요 측 개혁’을 내세웠다. 이는 수요가 커지면 공급은 따라온다는 전제에 따라, 수요 확대를 위한 소득 분배, 특히 서민층 소득 증가에 중점을 둔다. 한국의 소득주도 성장과 비슷하다. 그러나 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가계는 경제 침체 우려에 소비를 줄이고 저축에 주력했다. 내수가 확대되지 않았다.
따라서 관영매체인 신화통신이 ‘공급 측 구조개혁’을 다시 꺼내 든 것은 시진핑의 경제 정책을 폐기하고 리커창 노선으로 되돌아가겠다는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으로 평가된다.
마지막 셋째, 미국과 대결 기조 철회다. 중국 당국은 최근 미국에 희토류 수출을 재개하며 화해 무드로 전환했다. 중화권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비자 제한’ 정책의 효과를 높게 평가한다. 중국의 막후 세력 집단인 당 원로와 그 가족들이 미국 입국이 막히고 유학생활이 중단될 위기에 처하자 양측 사이에서 중재에 나섰다는 것이다.
장펑은 “이 세 가지 조치는 모두 시진핑 체제와의 분명한 선 긋기”라며 “권력 교체를 위한 예열 작업”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시진핑의 하야는 시작에 불과하며, 군부를 장악한 장유샤(張又俠) 중앙군사위 부주석이 중국 공산당 체제의 마지막 집권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인민일보의 1면 구성 자체가 “당 지도부가 이미 교체됐음을 암시하는 것”이라는 급진적인 해석도 제기된다.
중국 민주화 인사로 미국에 망명해 활동 중인 평론가 우젠민(吳建民)은 “시진핑은 지금 과거 화궈펑(華國鋒)이 겪었던 운명을 답습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공산당 원로들이 그를 ‘과도기 지도자’로 규정하고, 질서 있는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화궈펑은 중국 공산당 2대 주석이었지만, 원로들의 압박으로 결국 퇴진했다.
우젠민은 “시진핑이 끝내 당과 함께 몰락하는 길을 택할 수도 있다”며 “그 결과 중국은 ‘공산당 없는 체제’로 전환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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