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체 비용 높더라도 위험 있는 장비는 안 돼”
지난 3월 배제 방침 발표…조속한 이행 재촉
독일 정부가 자국 통신업체에 비용상의 이점을 포기하더라도 5G 네트워크에서 중국산 장비 배제에 속도를 낼 것을 촉구했다. 화웨이 등의 통신장비가 국가안보를 위협한다는 이유에서다.
낸시 패저 독일연방 내무장관은 18일 현지 경제신문 ‘한델스블라트’와의 인터뷰에서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이 크다면 비용에 상관없이 화웨이, ZTE 등 중국 업체 설비를 제거해야 한다”고 밝혔다.
패저 장관은 독일 최대 이동통신사 도이치 텔레콤 등 자국 사업자를 지목해 “보안에 문제가 있다고 밝혀진 설비와 부품, 구성 요소를 네트워크에서 제거하고 해체해야 한다”며 “높은 비용이 발생한다는 이유로 위험이 있는 설비를 계속 사용하는 것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보안 문제는 놀이가 아니다”라며 “(중국산 네트워크 장비의) 위험은 이미 오랫동안 알려져 왔다”고 강조한 후 “새로운 (정부) 요구에 적응할 시간은 충분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독일 정부는 화웨이 등 중국산 네트워크 장비가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조사를 아직 진행 중이지만, 안보기관들은 중국에 대한 일방적 의존은 위험하다고 여러 차례 경고해왔다.
영국의 기술전문 매체 ‘더 레지스터’는 이러한 독일 정부의 반응을 “극적인 변화”라고 평가했다. 매체는 “4년 전만 해도 독일은 통신 네트워크에서 화웨이를 차단하라는 미국의 요구에 ‘보안 문제를 일으킨다는 증거가 없다’며 거부했다”고 전했다.
2012년부터 미국은 독일 등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 동맹국에 ‘화웨이와 ZTE가 국가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며 두 회사 장비를 사용하지 말고 이미 사용하고 있는 장비 역시 교체할 것을 권고했다. 미국 하원은 같은 해 두 회사가 중국 공산당 인민해방군과 밀접하다는 보고서를 냈다.
미국의 거듭된 경고와 설득, 여기에 파이낸셜 타임스(FT) 등 주요 외신을 통해 화웨이 장비의 위험성에 관한 보도가 이어지면서 영미권 동맹국도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2018년 호주는 국가 안보상의 위협을 고려해 5G네트워크에서 화웨이와 ZTE의 참여를 거부했다. 이후 뉴질랜드, 일본, 영국, 스웨덴, 캐나다 등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였다.
독일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독일 정부는 지난 2019년 화웨이에 대한 조사를 시작해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앙겔라 메르켈 정권은 화웨이에 대한 강경 노선을 피하고 그 대신 “엄격한 심사”를 강조해왔다. 이는 기술적 측면뿐만 아니라 정치적 측면에서도 이익과 위험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꿈쩍 않던 독일의 태도가 달라진 것은 2021년 총선으로 인한 정권 교체가 계기가 됐다.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 기독민주당(CDU) 연합이 중도 좌파인 사회민주당(SPD) 연합에 패배함에 따라 유럽 정상 중 가장 친중파로 평가되던 메르켈 총리 역시 16년 만에 총리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유럽은 전통적으로 공산주의 중국과 경제적으로 협력하더라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가 16년 동안 중국에 우호적인 정책을 견지함으로써 중국 역시 ‘유럽연합(EU)의 맏형’ 독일과의 관계를 이용해 EU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길 수 있었다.
이번에 독일 통신 사업자들의 조속한 이행을 촉구한 패저 장관의 발언은 지난 3월 정부 조치에 따른 후속 행보다. 독일 정부는 화웨이, ZTE가 제조한 중국산 설비를 5G 네트워크 구축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이미 설치된 장비를 제거하고 다른 업체의 장비와 교환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한편 화웨이는 이와 관련한 언론의 논평 요청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웨이는 자사 제품의 보안 위협성을 부인해왔으며 EU 전체에서 화웨이 배제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던 지난 6월 “(보안기관 조사에서) 화웨이 장비에 백도어가 있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는 성명을 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