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지난달 30일 중국을 방문해 딩쉐샹(丁薛祥) 국무원 부총리와 공업·정보화부 부장, 상무부장 등 고위급 인사를 잇달아 만났다. 중국 당국이 비공식 국빈으로 머스크를 환대한 배경에는 ‘정경 분리’ 전략이 숨어 있다. 바이든 대통령과 동맹들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머스크는 휴대전화도 휴대하지 않았고 트위터도 올리지 않았다. 그가 침묵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일론 머스크가 2박 3일간의 중국 방문을 마치고 6월 1일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는 이번을 포함해 10차례나 중국을 방문했지만 이번 방문이 가장 예사롭지 않다. 중국 네티즌들도 그의 방문에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머스크, 이틀간 장관 3명 만나
머스크는 이번 중국 방문 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비밀에 부쳤고, 극히 일부 소식만 공식 채널을 통해 공개했다. 그를 수행한 측근은 주샤오퉁(朱曉彤) 테슬라 글로벌 수석부사장과 타오린(陶琳) 테슬라 중국법인 부총재뿐이었다. 지난 방중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머스크는 중국에 44시간 머무는 동안 일정을 알차게 소화했다. 베이징 도착 당일 친강(秦剛)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머스크를 만났다. 중국 외교부는 “머스크는 ‘미국과 중국의 이익은 샴쌍둥이처럼 서로 얽혀 있어 나눌 수 없다. 테슬라는 디커플링에 반대한다’고 말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머스크 측은 외교부의 주장에 호응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공업·정보화부(공신부)는 5월 31일 성명을 통해 “진좡룽(金壯龍) 부장이 베이징에서 머스크와 만나 신에너지 자동차 및 지능형 커넥티드카 개발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고 밝혔다. 진좡룽 부장은 성명을 발표하기 하루 전에 친강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상무미신문(商務微新聞)은 왕원타오(王文濤) 상무부장이 30일 오후 5시 41분 머스크를 만났고, 양측은 미·중이 경제무역 부문에서 협력하는 문제와 중국에서 테슬라가 발전하는 문제 등에 관해 광범위하고 심도 있게 교류했다고 전했다.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왕원타오는 중국 시장이 어떤 기회를 제공하는지, 정부 차원에서 외국 기업이 장기적·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어떤 지원을 하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이에 머스크는 미·중 관계가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는 데 동의하고, 중국이 테슬라 상하이 공장을 지원한 데 대해 사의를 표하고, 중국의 발전 잠재력과 시장에 대해 확신한다고 화답했다.
머스크는 장관 세 명을 만난 데 이어 딩쉐샹 국무원 부총리와 비공개 만남을 가졌다. 딩쉐샹이 외국 CEO와 1대1 회담을 가진 것은 그의 정치 인생에서 처음이다. 이러한 일련의 행보에서 중국 공산당이 테슬라와의 관계를 얼마나 중시하는지를 알 수 있다.
로이터통신은 이번 방문 기간에 리창 총리와 만났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로이터는 지난 3월 머스크가 중국 방문을 계획하고 있으며 리창 총리와의 면담을 희망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러나 머스크가 ‘오랜 친구’인 리창을 만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중국 공산당이 베푼 ‘파격적인 대우’의 격을 떨어뜨리는 것은 아니다. 이틀 동안 장관 3명과 부총리를 연이어 만났기 때문이다.
비공식 국빈급 대우
이번에 중국 측은 만남의 성격에 따라 ‘대우’의 초점을 달리 맞췄다. 공식 만남에서는 ‘호의’를 표하는 데 맞췄다면, 비공식 만남에서는 환심을 사는 데 맞췄다고 할 수 있다.
친강과 만난 날 저녁, 머스크는 전기차 배터리 기업인 CATL(딩더스다이·寧德時代) 쩡위췬(曾毓群) 회장의 초대를 받아 베이징의 최고급 클럽 화푸회(華府會)에서 만남을 가졌다. 화부회는 베이징 차오양구에 있는 중국풍의 최고급 프라이빗 클럽으로 알려졌다.
이 비공식 만찬의 격은 국빈 만찬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일부 내부자가 소셜미디어(SNS)에 만찬 메뉴를 공개했다. 메뉴판 표지에는 검은 말 두 마리가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에 ‘일마당선(一馬當先·전장에서 선두에 서는 말)’이란 사자성어와 ‘Extraordinary(비범한)’란 단어가 적혀 있었다. ‘마(馬)’와 ‘E’는 머스크의 중국어(馬斯克) 이름과 영어 이름의 첫 글자로, 결국 이 단어들은 머스크를 상징한다.
머스크가 접대받은 만찬 메뉴는 16개 요리로 구성된 코스 요리로, 이탈리아 흑초로 간을 낸 돼지목살을 전채로 시작해 윈난과 차오저우(광동) 스타일로 요리한 각종 야채와 육류, 해산물 등이 제공됐고, 만찬을 마무리하는 요리로는 ‘화부회’에서 특별히 만든 자장면이 제공됐다.
이 만찬은 무려 3시간 동안 지속됐고, 관련 소식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다. “머스크는 베이징에 도착한 첫날 무엇을 먹었을까?” “머스크 만찬의 주식은 자장면” “드디어 머스크와 쩡위췬(曾毓群) 회장이 만났다” 등이 번갈아 인기검색어에 올랐다. 중국 언론은 5월 31일 밤까지 이틀도 안 돼 머스크 관련 화제어가 누적 조회수 1억7000회를 넘어섰다고 전하기도 했다.
워싱턴의 소식통에 따르면 머스크가 방문한 다음 날 ‘머스크와 동일 메뉴’ 패키지를 체험하기 위해 특별히 방문한 고객도 있었다. 머스크는 미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릴 때도 이런 대접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머스크는 상하이를 방문했을 때 자신의 본모습을 되찾은 듯했다. 그는 테슬라의 상하이 공장을 둘러본 뒤 전 직원에게 햄버거를 대접했다. 1일 새벽, 테슬라 중국 법인 부사장 타오린은 웨이보(微博)에 머스크와 상하이 테슬라 공장 직원들이 함께 찍은 사진과 “모든 지원에 감사한다! 수확이 가득한 하루!”라는 글을 남겼다.
머스크가 ‘초국민 대우(자국민이나 자국 기업보다 외국인이나 외국 기업을 더 대우함)’를 받은 데 비하면, 지난 3월 중국을 방문한 팀 쿡 애플 회장이 받은 대접은 초라한 수준이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CEO와 랙스먼 내러시먼 스타벅스 CEO도 머스크와 같은 시기에 중국을 방문했으나, 이들의 중국 방문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머스크는 최고 자원을 가장 많이 보유한 기업가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중국 공산당이 극진한 대접을 했음에도 머스크는 지금까지 이번 방문에 대해 공식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트위터에서 맹활약하던 그는 이틀 동안 단 한 줄의 트윗도 올리지 않았고 휴대전화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중국 당국은 왜 머스크에게 그토록 극진한 호의를 베풀었을까?
웨이보에 머스크 관련 유머가 올라와 인기를 끌었다.
“머스크가 왔다. 반도체 업계는 머스크가 자가용 비행기로 극자외선(EUV) 노광기를 가져왔다고 하고, 소프트웨어 업계는 챗GPT5의 대형 모델 소스코드를 가져왔다고 하고, 제조 업계는 두 개의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부품과 알고리즘을 가져왔다고 하고, 와인 업계는 머스크가 떠날 때 백주(白酒) 원액 1톤을 가져갔다고 한다.”
실로 ‘뼈 있는’ 유머다. 머스크가 보유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자원에 비해 중국 기업들이 보유한 자원이 보잘것없는 데 대해 자조(自嘲)하고, 중국 공산당이 머스크를 비롯한 미국의 기술 및 금융 분야 거물들의 자원을 오매불망 탐내고 있는 사실을 비꼬고 있지 아니한가.
중국 공산당이 머스크를 각별히 환대한 이유는 자명하다. 머스크를 통해 해외의 기술·금융 분야 투자자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다.
‘디커플링은 환영받지 못한다. 세계 선진 산업계는 중국 시장을 떠날 수 없다. 세계 최고 부자인 머스크마저도 행동으로 우리에게 ‘신임표’를 던졌다. 당신들은 뭘 그리 망설이는가?’ 이게 그들이 전하려는 핵심 메시지다.
미국 언론들은 세계 각국의 대기업들이 중국에 투자하기를 꺼린다는 보도를 최근에 잇달아 내보내고 있다. 중국 당국의 글로벌 컨설팅업체 규제, 마이크론에 대한 보복 제재, 지정학적 긴장과 불확실한 투자 전망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지난달 영국상공회의소가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조사에 응한 기업의 70%가 중국에 장기 투자를 하는 문제에 대해 “기다리고 지켜보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답했다.
중국 당국은 어떻게든 “기다리고 지켜보는” 기업들을 흔들어 ‘관망’에서 ‘행동 개시’ 상태로 돌려세우려 한다. 이 일에는 바람잡이가 필요하고, 그래서 머스크를 적임자로 선택했다. 머스크를 통해 ‘중국 경제가 살아나고 있고, 안정적으로 좋아지고 있다’고 위장하려는 것이다.
중국 당국, ‘정경 분리’ 전략에 머스크 이용
중국 당국의 머스크 포섭 전략을 좀 더 심도 있게 파헤치면 ‘정경 분리’ 술책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낡은 수법을 이용해 미국과 유럽의 정계와 산업계를 분리해 상대하겠다는 것이다.
정치·외교·군사 차원에서는 강경한 기조를 유지하는 한편, 경제 차원에서는 상대적으로 유연한 자세를 취해 해외 자본가들을 포섭하는 것이 기본 전술이다. 중국 공산당의 눈에는 이들이 ‘쓸모 있는 바보’이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이 미 국방장관과의 대화는 거부하면서도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장과 만나고 또 머스크를 ‘민간대사’로 초청한 것 등이 전형적인 ‘정경 분리’ 수법이다.
덩샤오핑은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국제사회, 특히 서방 국가들의 집단적 봉쇄와 보이콧에 직면했을 때 바로 이 ‘정경 분리’ 수법을 통해 서방의 봉쇄를 풀고, 이어서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는 데 성공했다.
중국 공산당의 ‘정경 분리’는 정말로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 협력을 발판 삼아 궁극적으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제 이 낡은 무기를 다시 꺼내들었다.
바이든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물론 모든 대기업 총수가 중국 공산당의 ‘초국민 대우’ 미끼를 덥썩 물지는 않을 것이다. 머스크는 방중 과정 내내 침묵했다. 중국 당국이 대신 전달한 ‘빈말’ 외에는 특별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SNS와 전화통신도 중단했다. 이처럼 침묵하는 것 자체가 모종의 태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머스크가 앞으로 신형 모델3을 출시하고, 상하이에 메가팩 배터리 제조공장을 건설하고, 완전자율주행(FSD)를 중국에 도입하는 등 3대 계획을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과연 그럴지는 두고 볼 일이다. 기업인으로서 투자를 하고 사업을 확대하는 것은 나무랄 수 없지만 머스크의 경우는 좀 다르다. 그의 손에 있는 스타링크, 트위터, 첨단 로켓 기술, 자율주행 기술 등은 중국 공산당이 자나깨나 가지고 싶어 하는 것들이다. 100년 동안 없었던 대변화의 신냉전 시대에 양쪽을 다 먹으려는 발상은 위험하다.
어쨌든 중국 공산당이 서방의 포위망을 뚫을 카드를 내밀었으니 바이든과 동맹들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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