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이 핵대결로 치닫고 있다. 북한이 현재의 ‘핵 독주’를 지속한다면 언젠가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2006년 이래 여섯 번이나 핵실험을 한 북한이 이제는 ‘핵사용’은 물론 ‘대남 선제 핵사용’까지 위협하면서 ‘핵강국’ 코스프레를 하고 있음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지만 그에 대한 한국의 반응도 심상치 않다. 1월 11일 국방부·외교부의 2023년도 대통령 업무 보고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만약 핵무장을 하게 된다면 우리의 과학기술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게 핵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미 핵공조 등 현실적으로 가능한 수단을 선택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전제하에 나온 발언이기는 하지만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이래 군통수권자가 공개적으로 핵무장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었기에 국내외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남북한이 ‘핵대결 시대’를 향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있는 원인은 당연이 북핵이다. 북한은 2022년 동안 40여 회에 걸쳐 100여 발의 미사일을 발사함으로써 미사일 발사 신기록을 세웠다. ‘핵무력 정책법’ 제정을 통해 실제 핵사용을 전제하는 핵전략을 표방하고 남쪽을 향해서는 ‘선제 핵사용’을 위협하고 있다. 12월 로동당 제8기 제6차 중앙위전원회의를 통해서는 한국을 ‘명백한 적’으로 규정하고 한·미에 대한 ‘대적 행동’을 발표했다. 북한의 태도가 이럴진대 한국이 미국 핵우산만 믿고 무한정 ‘빈손’으로 북한의 선처만 기대하면서 살 수는 없으며 이런 이치는 미국도 모를 리가 없다.
거듭 ‘핵강국의 길’ 선포한 중앙위전원회의
제8기 제6차 중앙위전원회의는 2022년 동안 초라했던 경제 부문 성과에 대한 평가를 뒤로한 채 국방 분야에서의 ‘풍성한 실적’과 핵 분야의 ‘야심찬 계획’을 한껏 내세운 회의였다. 국방과 관련해서는 “극적인 변화들을 통해 만년대계의 안전담보를 구축하고 전략적 지위를 세계에 명백히 각인시키는 역사적 과제를 해결했다”고 자평했다. ‘극적인 변화들’은 핵무력 정책법 제정, 미 본토 타격용 ICBM 개발, 전술핵 실전화, 한·미 및 한·미·일 안보공조를 압도하는 공세적 능력 등을 의미한다. 그리고 ‘전략적 지위’는 막강한 정치외교적 영향력을 가지는 핵강국으로의 위상을 선전하는 표현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원회의는 핵무기에 억제 및 공세 사명 부여, 신속한 핵반격 능력을 위한 또 다른 대륙간탄도미사일체계 개발, 대남 행동의 핵심수단으로서의 전술핵 운용, 군사용 정찰위성 발사 등 ‘국방력 강화 4대 목표’를 천명했다. 첫 번째와 네 번째 목표는 핵강국의 면모를 갖추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핵무기에 ‘억제 및 공세’ 사명을 부여한다고 함은 종전의 ‘억제 only’ 전략에서 ‘핵사용’ 전략(nuclear war-fighting strategy)을 추가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2013년 ‘핵보유법’과 2022년 ‘핵무력 정책법’에 이어 세 번째로 재확인한 핵전략이며 여기에 더해 정찰위성까지 운용함으로써 핵강국다운 면모를 갖추겠다는 것이다. 두 번째 목표는 발사 준비 시간이 짧은 고체형 다탄두 ICBM을 만들겠다는 것으로, 확연하게 대미(對美)용이다. 즉 핵위협을 통해 70년 숙원인 한미동맹 무력화를 계속 시도하면서 한반도 유사시 미군의 증파를 차단하겠다는 뜻이다. 세 번째 목표는 노골적으로 한국을 겨냥하여 전술핵 및 투발 수단의 대량 생산과 다종화를 선포한 것이며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핵탄두 보유량의 기하급수적 증가’를 지시한 것도 같은 맥락의 대남 위협이다. 종합컨대 2023년에는 평양의 대남 ‘핵 갑질’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발언이 단순한 말폭탄인가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국방부·외교부의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전술핵 재배치와 독자 핵보유를 차례로 언급하면서 그에 앞서 당장은 한·미 양국이 미 핵 자산을 공동 기획·실행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는 취지로 발언했다. 윤 대통령의 이 발언은 그동안 전문가 일각에서 주장해온 ‘단계적 핵균형론’과 같은 내용이다. ‘한국형 3축 체제’를 언급하면서도 “공격을 당하면 백배 천배 때릴 수 있어야 한다”면서 대량응징보복(KMPR) 능력을 강조했다. 이 역시 3축 체제에서 기술적·재정적·정치적 한계성이 상대적으로 많은 선제(kill-chain)나 방어(KAMD)보다는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도 기술적·재정적 수요가 적고 직접적인 억제력을 발휘하는 응징보복(KMPR)에 비중을 두어야 한다는 학계 일각의 주장을 수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상대의 선의에만 의존하는 종전선언보다는 강력한 자위권 행사를 통한 평화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 윤 대통령의 이런 발언에 대해 국방부도 ‘북한 전 지역 파괴 능력 확보’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공세적 대북 억제’에 나서겠다고 했고 2월에는 북핵의 실제 사용을 가정한 ‘확장억제수단운용연습(DSC TTX)’을 그리고 5월엔 한미군이 참여하는 별도의 도상연습(TTX)을 실시하겠다고 보고했다. 한국의 군 통수권자가 북핵에 대해 ‘안보원칙에 입각한 정론적 대응’을 천명하고 나섬은 당연한 일이며 오히려 뒤늦었다고 할 수 있다.
‘남북 핵대결’을 피하는 길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평화공존으로 나오는 것이지만, 현재로서 그럴 가능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이 2021년 1월에 공언했던 ‘5대 전략무기’ 즉 극초음속미사일, 고체연료 대륙간탄도탄, 다탄두(MIRV) 미사일, 핵추진 잠수함, 정찰위성 등을 완성·배치하는 데 박차를 가할 것이며 한·미를 향한 핵공갈(nuclear blackmail)의 강도를 더욱 높여갈 것이 뻔하다. 한국을 향해서는 전술핵 배치를 선전하면서 전술핵 탑재·사용 훈련을 실시한답시고 ‘겁주기’를 할 것이며 미국을 향해서는 본토 타격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스스로의 대미(對美) 위상을 높이고 한반도 유사시 미군의 개입을 차단하려 할 것이다. 이런 북한을 상대해야 하는 한국으로서는 미 확장억제 및 핵우산 강화, 미 전술핵 재배치,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 등 수순들을 단계적으로 밟아 나가지 않을 수 없으며 이런 의미에서 윤 대통령의 발언은 틀리지 않는다.
가야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
남과 북이 핵대치를 하는 경우 그로 인한 불이익과 위험성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럼에도 현재의 핵비대칭(nuclear asymmetry)을 무한정 허용할 때 무릅써야 하는 더 엄청난 불이익과 위험성을 감안하면 한국은 핵균형(nuclear parity)를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그것이 싫든 좋든 한국이 가야 할 길이다. 미 국방부가 “우리는 여전히 한반도 비핵화를 원한다”라고 말한 것은 결코 윤 대통령이 제시한 이 수순들의 당연성을 부인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핵균형이 한·미 간 ‘공개 의제’는 아니라는 의미일 뿐 논의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의 핵무장 언급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서 ‘무책임하고 실속도 없는 말폭탄’으로 비판하고 있음도 사실이다. 모 야권 정치인은 “극소수 국민만이 환호하는 위험한 발언으로 그동안의 남북합의와 한반도 평화를 파괴하고 있다”고 논평했다. 하지만 극소수만이 환호한다는 주장은 심하게 틀린 말이다. 각종 여론조사들을 곁눈질만 해봐도 알 수 있다. 북한이 1953년 정전협정, 1991년 비핵화공동선언, 2018년 군사합의 등을 깡그리 무시하면서 핵무력 증강과 도발을 계속하는데도 우리는 그 과정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망국(亡國)의 위기를 외면한 채 바보처럼 합의들을 지켜야 한다면, 그리고 북핵에는 두 눈을 감은 채 종전선언과 퍼주기나 하는 것이 평화로 가는 길이라고 한다면, 거의 ‘정신 나간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안보정론에 비추어 보면 그렇다는 뜻이다. 대통령의 발언에 ‘실속’을 채우는 것은 지금부터 정부와 국민 그리고 여야(與野) 모두가 힘을 합쳐 해나가야 하는 안보과제이지 정쟁(政爭)의 대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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