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불법 이민자에 보상금 지급 논의는 사실” 시인

한동훈
2021년 11월 07일 오전 3:28 업데이트: 2021년 11월 07일 오전 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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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불법 이민자들에게 1인당 최고 45만달러(약 5억3천만원)를 보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가운데 백악관이 보도 내용을 일부 시인했다.

그러나 전날 바이든 대통령이 “(그런 보도는) 쓰레기”라며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한 상황에서, 바로 다음 날 백악관 대변인이 이와 정면으로 반대되는 발언을 내놓는 엇박자 행보가 논란이 됐다.

지난 4일(현지시각)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수석 부대변인은 불법 이민자들에게 돈을 지급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시인했다. 다만, 소송에 따른 세금 손실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앞서 전날 바이든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불법 이민자 보상금 지급과 관련한 질문을 받자 “1인당 45만달러라고 말한 게 맞느냐”고 되묻기까지 하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불과 하루 차이를 두고 대통령과 백악관이 상반된 발언을 한 경위에 대해 장피에르 대변인은 “(대통령이) 보상금 지급 자체를 부인한 것은 아니다”라며 “45만달러라는 금액에 대한 반응”이라고 해명했다.

‘1인당 보상금 45만달러’는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지난 2017년 상반기부터 2018년 하반기까지 집행된 불법 이민자에 대한 무관용 원칙과 관련된 내용이다.

당시 미 국경수비대는 가족 단위 불법 이민자들에게도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이 과정에서 어린 자녀들을 부모와 강제로 분리해 시설에 보호하다가 미국 내 위탁시설이나 가정에 입양시켰다. 이들 중 일부는 기록이 남지 않아 추적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렇게 생이별을 하게 된 불법 이민자 가족은 약 5500여개로 알려졌다.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자식과 생이별한 불법 이민자들이 미국 정부에 소송을 제기하고 있으며, 적정선에서 합의하는 것이 납세자인 국민들에게도 이익이라는 입장이다.

그녀는 “납세자들의 돈을 절약하고 이전 (트럼프) 행정부가 무관용과 가족 분리를 실행한 참담한 역사를 뒤안길로 보낼 수 있다면, 법무부가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사람들과 합의하는 일에 대통령 역시 전적으로 만족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불법 이민자 가정에 가해진 강제 분리 조치에 대해 “잔인하고, 비인간적이며, 부도덕하다”며 전임 트럼프 행정부를 강하게 비난했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강제 분리당한 불법 이민자 가정에 대한 보상금 지급을 정책적으로 추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총 지급 규모는 약 10억달러(약 1조1865억원)로 추산된다.

백악관은 이번 사건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무마했지만, 엄청난 예산이 걸린 사안을 정부가 제대로 추진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자초했다는 지적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요약하면, 백악관이 불법 이민자들에게 45만달러씩 지급할 계획이라는 보도가 나왔는데 조 바이든은 이를 부인했지만 하루 뒤 백악관 관리가 나서서 합의금을 지불하겠다고 말한 것”이라고 트럼프 행정부 시절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마크 메도우스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꼬집었다.

공화당 의원들은 군인들에게 지급되는 보상금보다 많은 액수라며 개별적으로 반대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의원들은 이민정책 연구기관인 ‘미국이민개혁연맹'(FAIR)의 조사자료를 인용해 작전 수행 중 사망한 미군 유가족 혹은 생존자, 억울하게 수감당한 군인들에게 지급하는 보상금보다 더 많은 액수를 바이든 행정부가 불법 이민자들에게 퍼주려 한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어린이나 심지어 젖먹이를 앞세워 국경을 넘은 불법 이민자들이 이제는 미국인 세금으로 돈방석에 앉게 됐다는 신랄한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이미 불법 이민이 급증한 상황에서 어린이나 유아를 데리고 국경을 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리라는 우려도 이어진다.

실제로 미성년자를 동반할 경우, 추방조치가 느슨해질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해 생판 남인 어린이를 데리고 억지로 국경을 넘은 뒤 풀숲에 이들을 유기하고 사라지는 불법 이민자들의 사례가 텍사스 등 미국 남부국경에서 심심찮게 적발되고 있다.

이번 사건을 조사해온 좌파성향 시민권 보호단체인 ‘미국시민자유연합'(ACLU) 소속 변호사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전반적인 보상 정책은 알고 있었으나 구체적인 부분은 충분히 보고받지 못했을 수 있다고 추측했다.

앤서니 로메로 ACLU 대표는 가족을 생이별시킨 범죄에 대한 보상은 정부가 신중하게 고려하고 추진해온 정책이므로 바이든이 모를 리는 없었을 것이라고 이같이 분석했다.

로메로 대표는 또한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과 공화당의 반발이 현재 법무부가 강제 분리당한 불법 이민자 가정과 진행 중인 협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관측했다.

한편, 미 법무부는 이날 저녁 강제 분리당한 가족들과의 합의금 액수가 지급 가능한 규모를 넘어섰다고 가족들에게 통보했으며 협상을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 이 기사는 자카리 스티버 기자가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