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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백악관 안보보좌관 “韓 정부·국회, 쿠팡 공격적 겨냥”…中 영향력도 거론

2025년 12월 25일 오후 12:46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 EPA/Fredrik Persson SWEDEN OUT/연합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 EPA/Fredrik Persson SWEDEN OUT/연합

오브라이언 전 보좌관, 소셜미디어에서 한국의 쿠팡 규제 움직임 비판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확대되는 산업 분야…미국의 강력한 대응 필요” 발언도

전직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한국 국회의 쿠팡 조사·규제 움직임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한미 통상 관계에 미칠 파장을 경고했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보좌관은 23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엑스(X)에 올린 글에서 ‘쿠팡 사태(Coupang incident)’와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과의 무역 관계에서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며 “한국이 미국의 기술 기업을 겨냥함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노력을 훼손한다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불공정한 무역 관행의 개선을 강조해 온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기조에 비춰볼 때, 현재 한국 정부와 국회가 쿠팡에 대해 취하고 있는 조치들이 미국 기술 기업을 겨냥한 불공정 규제로 인식될 수 있음을 부각시킨 발언으로 풀이된다.

오브라이언 전 보좌관은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내며 전통적인 군사 분야뿐 아니라 무역·통상, 기술, 공급망 문제까지 국가안보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관점을 일관되게 유지해 온 인물이다. 대중 강경파로 분류되는 동시에, 동맹국이 미국 기업에 가하는 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해 온 행보도 보여 왔다.

그는 한국 국회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오브라이언은 “한국 국회가 쿠팡을 공격적으로 겨냥하는 것은 향후 KFTC(한국 공정거래위원회)의 차별적 조치와 미국 기업을 향한 광범위한 규제 장벽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 기업에 대한 공정한 대우를 보장하고, 해당 산업 분야에서 확대되고 있는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에 맞서 전략적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강력하고 일관된 대응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오브라이언은 여기서 언급한 ‘해당 산업 분야’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다. 다만 워싱턴 정가, 특히 보수 진영에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는 산업 분야’라는 표현은 중국계 초저가 전자상거래 플랫폼(테무·쉬인)과 대형 온라인 쇼핑몰(알리바바·징둥) 등을 가리킬 때 관용적으로 사용되는 용어다.

이는 단순한 판매·유통 서비스에 국한되지 않고, 중국 기업들이 축적해 온 빅데이터와 물류, 결제 시스템을 통한 영향력 확대까지 아우르는 개념으로 해석된다.

이 같은 맥락에서 오브라이언의 발언은 쿠팡에 대한 한국 정부와 국회의 규제 움직임이 중국 플랫폼의 글로벌 확장과 동맹국 시장 침투에 맞서 전략적 균형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인식과 충돌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를 두고 국내 일각에서는 미국 정치권이 쿠팡 규제 논의를 한미 무역 관계와 미·중 기술·경제 패권 경쟁의 연장선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민노총이 쏘아올린 쿠팡 규제 논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로 급물살

쿠팡은 지난달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 등 개인정보를 포함해 이용자 3370만 명의 정보가 유출됐다고 발표했다. 인증 업무를 담당했던 중국 국적 전 직원이 퇴사 후에도 민감 정보 접근 권한이 폐기되지 않은 점을 악용해, 여러 차례에 걸쳐 개인정보를 빼낸 것으로 파악됐다는 설명이다.

발표 직후 개인정보를 유출한 전 직원에 대한 비난 여론이 제기됐지만, 논란의 초점은 점차 퇴사자 권한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쿠팡의 책임 문제로 옮겨갔다. 한국 정부와 국회에서도 쿠팡의 보안 관리 체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고, 점검 범위는 기업 운영 전반으로 확대됐다.

개인정보 유출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긴 했지만, 쿠팡을 둘러싼 규제 논의는 사태 이전부터 누적돼 왔다. 민노총은 장시간·고강도 노동과 반복되는 산업재해를 지적하며 쿠팡의 새벽배송 폐지를 요구해 왔다. 그러나 소비자 반발 여론이 불거지면서 관련 논의는 한동안 소강 국면에 접어드는 듯했다.

이후 정치권 일부 의원들이 민노총의 문제 제기에 호응하며 국회 토론회와 상임위 질의 등을 통해 새벽배송 구조와 플랫폼 기업의 노동 책임 문제를 주요 의제로 끌어올렸다. 이 시점부터 쿠팡은 노동 착취 논란과 과도한 시장 지배력 문제 등이 집중적으로 거론되며 정치적 논쟁의 중심에 놓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지난달 개인정보 유출 사실이 공개되자, 국회와 규제 당국의 대응은 다시 속도를 냈다. 개인정보 보호와 노동 문제는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었지만, 기업 규제 논의의 명분을 강화하고 점검 대상을 기업 운영 전반으로 확대하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오브라이언, 왜 ‘쿠팡’ 콕 짚었나…뉴욕증시 상장 기업의 상징성

쿠팡은 전체 매출의 90% 이상을 한국 시장에서 올리고 있으나, 지주회사가 미국 델라웨어주에 설립돼 있고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있어 법적·금융적 기준에서는 미국 기업으로 분류된다. 한국 소비자들에게는 국내 플랫폼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지배 구조만 놓고 보면 외국 자본이 소유한 기업에 해당한다.

유사한 사례로는 배달의민족과 요기요가 있다. 배달의민족은 독일 기업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고, 요기요는 해외 사모펀드가 지배하고 있다. 다만 이들 기업은 미국 기업이 아니며, 한국에서 음식 배달 시장을 중심으로 사업을 영위하고 있어 중국계 전자상거래 플랫폼과 직접적인 경쟁 관계에 놓여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점에서 쿠팡은 성격이 다르다. 쿠팡은 한국 시장에서 미국 상장사로서 중국계 전자상거래 기업들과 동일한 소비자 시장을 두고 경쟁하는 구조에 놓여 있다. 오브라이언 전 보좌관의 발언은 미국 정치권 일각에서 이러한 경쟁 구도에 주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미 의회에서도 비슷한 문제의식이 제기된 바 있다. 지난 16일 미 하원 청문회에서 공화당 소속 대럴 이사 하원의원은 “한국 국회가 미국 기업을 괴롭히는 행위(harassment)는 심각한 외교적·경제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오브라이언 전 보좌관은 현재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공식 직책을 맡고 있지는 않다. 다만 트럼프 진영의 핵심 외교·안보 인사로 분류되며, 공화당 내 대중 강경파 인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의 발언은 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니지만, 국내 언론에서 워싱턴 정계 일각의 정치적 메시지로 해석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