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중국을 오해하게 하는 ‘반중 프레임’과 한국 사회·언론
작년 9월 한 '반중 시위' 단체가 명동 주한중국대사관 인근에서 집회를 벌이고 행진을 시작하자 경찰이 명동거리로 향하는 길을 막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해외나 중국 내부에서 각종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표현이 있다. 중국 공산당(중공)이 자주 사용하는 ‘반중 세력’이라는 규정이다. 중국 내부에서 사회적 불안이나 정치적 갈등이 발생할 경우, 중공은 이를 예외 없이 ‘반중 세력의 소행’으로 규정해 왔다.
그러나 중국 체제 내부를 오래 관찰해 온 전문가들과 해외 화교 사회에서는 이 표현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른바 ‘반중 세력’은 실체적 존재라기보다, 중공이 통치 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만들어낸 정치적 개념에 가깝다는 인식이 널리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공 내부 고위층 다수 역시 ‘반중 세력’이 실제로 존재하는 조직이나 세력이 아니라, 책임 전가와 통치 정당화를 위해 활용되는 정치적 도구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반중 세력’이라는 정치적 프레임
‘반중 세력’이라는 표현은 하나의 정치적 프레임으로 기능해 왔다. 중공이 정책 실패를 저지르거나 사회적 불만이 표출될 때, 그 원인을 외부의 ‘반중 세력’으로 전가하는 방식이다. 이는 체제 내부의 문제를 외부 위협으로 치환하는 전형적인 권위주의 통치 수법에 해당한다.
1989년 ‘6·4 톈안먼 사태’ 당시 중공은 이 사건을 “해외 미국의 반중 세력이 국내 소수 야심가들과 결탁해 선동한 반당·반사회주의 음모”로 규정했다. 그러나 해외에서 미국 정부와 오랜 기간 접촉해 온 화교 사회에서는 다른 평가가 지배적이다.
미국 정부는 이 사건에 개입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중공의 무력 진압을 묵인했다는 것이 다수 연구자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이른바 ‘미국 배후설’은 정치적 주장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1999년 파룬궁 탄압도 같은 논리로 정당화됐다. 중공은 파룬궁을 “해외 반중 세력과 서방 반중 세력의 조종을 받는 집단”으로 규정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2019년 홍콩의 ‘범죄인 인도 반대 시위’ 역시 외부 세력 개입설이 제기됐으나,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해당 운동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이처럼 ‘반중 세력’이라는 프레임은 필요할 때마다 등장하며, 내부 문제를 외부 음모로 치환하는 데 활용돼 왔다. 탄압에 명분을 부여하고, 국제 사회의 비판을 무력화하는 정치적 장치로 기능해 온 셈이다.
‘반중 세력’은 중공이 만든 정치적 낙인
중공이 사용하는 ‘반중 세력’이라는 표현은 중국이나 중국인 자체를 겨냥한 개념이 아니다. 중공의 통치 방식과 정책, 인권 침해를 비판하는 주체들을 외부의 적으로 규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치적 낙인에 가깝다.
중공은 위기 상황일수록 외부 적대 세력을 부각해 왔다. 내부 비판과 개혁 요구가 확대될수록, 외부 위협을 강조하는 논리는 체제 결속을 강화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선거를 통한 정당성 확보가 불가능한 체제에서, ‘국민 보호’라는 명분은 통치 정당성을 대체하는 핵심 논리로 작동해 왔다.
사회 갈등이나 경제 침체, 외교적 실패가 발생하면 중공은 이를 ‘외부 적대 세력의 파괴 공작’으로 규정해 왔다. 그 결과 책임은 흐려지고, 사건의 본질은 왜곡된다. 문제의 원인이 체제 내부로 향하지 않도록 여론을 차단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내부 비판을 봉쇄하는 통치 논리
‘반중 세력’이라는 개념의 가장 큰 특징은 적용 범위에 한계가 없다는 점이다.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고, 존재 여부를 입증할 필요도 없다. 반박 역시 사실상 불가능하다. 학문적으로 말하면 이는 ‘반증이 불가능한 주장’에 해당한다.
이 같은 모호한 위협 개념은 내부 비판자를 ‘적과 결탁한 존재’로 낙인찍는 데 활용된다. 국가 안보와 안정이라는 명분 아래 탄압의 문턱은 낮아지고, 공산당에 대한 비판은 자동으로 ‘비도덕적 행위’로 전환된다.
중공은 광범위한 감시와 통제를 ‘외부 세력 침투 차단’이라는 명분으로 정당화해 왔다. 종교·인터넷·인권 영역에서의 탄압은 각각 ‘해외 세력 개입 방지’, ‘적대 세력 유입 차단’, ‘체제 전복 방지’라는 논리로 포장된다. 국제 사회의 비판 역시 ‘반중 세력의 공격’으로 규정된다.
중공은 자신에 대한 비판을 곧바로 ‘중국 전체와 중화 민족에 대한 공격’으로 몰아간다. 정당과 국가, 민족을 의도적으로 혼동시키는 개념 도용이 반복되며, 외부의 적을 설정해 ‘망국의 위기’를 부각시키고 민족 감정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내부 결속을 도모한다.
이 과정에서 경제 문제와 사회 불평등, 인권 문제에 대한 시선은 자연스럽게 외부로 향한다. ‘반중’이라는 프레임은 중공 통치의 취약성을 가리는 방패로 기능해 왔다.
역사상 최대의 ‘반중 세력’은 누구인가
역설적으로 역사상 중국인과 중화 문명에 가장 큰 피해를 입힌 세력은 외부가 아니라 중국 공산당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1949년 정권 장악 이후 중공은 수십 차례의 정치·경제·문화 운동을 통해 전통 문화를 파괴하고, 최소 8천만 명 이상의 중국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연구 결과가 다수 존재한다. 이는 두 차례 세계대전 사망자 수를 합친 것보다 많다는 분석도 있다.
토지개혁, 진반(鎮反), 삼반오반(三反五反), 숙반(肅反), 반우파 운동은 모두 사람을 제거하는 구조적 폭력이었다. 마오쩌둥이 “난징에서 더 많이 죽여야 한다”고 발언한 기록은 이러한 통치 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대약진운동 시기 대기근으로 4천만 명 이상이 아사했고, 문화대혁명 10년 동안 수천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덩샤오핑조차 문화대혁명의 사망자 수는 “영원히 계산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1989년 6·4 사태, 1999년 파룬궁 탄압, 그리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강제 장기적출 의혹과 인권 침해는 모두 중공 체제가 남긴 상흔이다. 이보다 중국인과 중화 문명에 치명적인 피해를 준 세력은 역사적으로 찾아보기 어렵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는 분명히 ‘반공 세력’이 존재한다.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민주 진영에서는 학술, 언론, 시민사회, 문화 전반에서 구조화된 반공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다.
이들은 중공 체제의 인권 침해와 권위주의 통치를 비판하지만, 중국 민족이나 중국인 전체를 적대하지 않는다. 중공이 의도적으로 혼동시키는 ‘반중’과 ‘반공’의 구분이 이 지점에서 분명해진다.
중국과 중공을 분리해 인식할 때
미국 전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는 “역사상 가장 반중적인 세력은 중국 공산당”이라고 말한 바 있다. 중공은 수천만 중국인의 생명을 앗아간 이데올로기 위에 세워졌고, 그 범죄를 지금도 인정하지 않는다.
중국인과 중국 공산당을 분리해 인식하는 순간, 중공의 통치 정당성은 근본부터 흔들린다. 그것이 중공이 가장 두려워하는 지점이며, 동시에 국제사회와 한국 사회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최소한의 상식이다.
한국 사회와 언론이 가져야 할 관점
이제 한국 사회 역시 중국과 중공을 명확히 분리해 인식하는 관점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중국 관련 이슈를 다루는 과정에서 한국 언론이 이러한 구분을 분명히 하지 못할 경우, 중공이 만들어온 프레임을 무비판적으로 재생산할 위험은 더욱 커진다.
중국에서 발생하는 각종 정치·사회·외교적 문제를 곧바로 ‘중국 전체의 문제’로 일반화하는 보도 방식은, 결과적으로 문제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
중공은 자신에 대한 비판을 중국인과 중화 민족에 대한 공격으로 전환해 주장하는 방식을 반복해 왔다. 그러나 정책 실패와 인권 탄압, 대외 갈등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중국 사회와 공산당 체제를 분리해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는 중국을 적대하기 위한 태도가 아니라, 중국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에 해당한다.
이 같은 구분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중국 내부 문제의 본질을 오해할 가능성은 커진다. 중공 체제의 불안정성과 통치 위기를 중국의 민족성이나 문화적 특성으로 설명해 버리면, 외교·경제·안보 판단과 여론 형성 전반에서 왜곡이 불가피해진다. 반대로 중국과 중공을 분리해 인식할 때 책임의 주체와 문제 구조는 더욱 분명해진다.
중국을 정확히 보는 것은 혐오나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와 한국 언론이 대중 외교와 안보, 경제 전략을 설계하고 전달하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현실 인식의 출발점이다.
중국 문제에 대한 왜곡과 오판을 피하기 위해서는 감정이나 선입견이 아닌, 책임의 주체와 문제의 구조를 정확히 짚는 인식이 전제돼야 한다. 결국 중국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중국과 중공을 정확하게 분리해 인식해야 한다.
*이경찬 논설위원은 정치 PR 전문가로, 한국커뮤니케이션에서 정치·선거 전략과 홍보를 담당하며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축적했습니다. 이후 한국정치사회연구소 연구위원과 정치 보좌관으로 활동하며 정책과 정치 현장에 대한 이해를 넓혔고, 에포크타임스 기자로 오랜 기간 활동하며 언론 현장의 최전선을 경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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