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 운하 중국 우호 기념물 철거…미·중 힘겨루기 속 파장
파나마 운하 인근에 설치된 중국풍 기념물(좌)과 심야 철거 장면(우) | NTD 현지 시 당국 “구조물 손상으로 안전 위험” 심야 철거
중국은 반발 “양국 우호 상징 훼손”…파나마 대통령도 비난
파나마 운하 입구 인근에 설치돼 있던 중국-파나마 우호 기념 조형물이 현지 지방정부 결정으로 심야에 철거됐다. 당국은 안전을 위한 조치라고 해명했지만, 운하를 둘러싼 미중 힘겨루기 와중 내려진 조치에 국제적인 관심이 쏠렸다.
AFP통신에 따르면, 파나마 운하 태평양 쪽 입구에 위치한 아라이한 시 당국은 지난 27일 밤 중장비를 동원해 중국풍 패방(牌坊) 형태의 기념물을 철거했다.
패방은 중화권에서 집이나 마을 입구에 세운 아치형의 대형 문을 가리킨다. 이 기념물은 2004년 중국계 이민자들의 파나마 정착 150주년 및 양국 우호 관계를 상징해 세워졌으나, 시 당국은 위험을 일으킬 만한 구조적 손상이 발생해 철거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기념물은 파나마 운하의 태평양 쪽 입구를 가로지르는 다리인 아메리카스 대교를 건너면 바로 보이는 전망대에 위치했다. 주변 풍경과 대비되는 이국적 조형물로 시선을 끌었으며, 일몰 시간대에 운하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장소로도 알려졌다.
중국 정부와 중국계 커뮤니티는 즉각 반발했다. 파나마 주재 중국대사관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불법적이고 부적절한 행위”라며 강력한 항의와 책임자에 대한 조치를 촉구했다.
AFP에 따르면, 파나마 주재 중국 대사는 현장을 직접 찾아 “이는 양국 우정에 대한 중대한 상처이자 파나마에 거주하는 약 30만 명의 중국계 주민에 대한 모욕”이라고 말했다. 현지 언론에서는 일부 중국계 주민들이 철거 현장에 접근하려 했으나 경찰에 제지당하는 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중국 외교부도 공식 입장을 내고 항의 사실을 확인했다.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파나마 지방정부의 조치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중국 관영·준관영 매체들은 이번 철거를 ‘중국-파나마 우호의 상징 훼손’으로 규정하며 비판 수위를 높였다.
반면, 중국 내 온라인 여론은 엇갈렸다. 일부 중국 네티즌들은 민족주의적 반응을 보였으나, 소셜미디어 더우인(틱톡 중국판)에서는 “규탄하는 것 말고 사실 대응할 게 뭐 있나”, “재건 비용을 다시 기부하면 될 듯”이라고 꼬집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이번 논란은 파나마가 미·중 전략 경쟁의 압박을 받는 민감한 시점에 발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두 번째 임기 출범 이후 파나마 운하가 “베이징의 영향 아래 있다”고 주장하며, 1999년 파나마에 이양된 운하 통제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밝혔다.
길이 약 80㎞의 파나마 운하는 전 세계 해상 무역량의 약 5%를 처리하는 전략 요충지다. 현재 미국과 중국이 주요 이용국으로 파나마 운하청(ACP)에 따르면 2024회계연도 기준 미국의 물동량은 1억5706만t이었고 중국(4504만t), 일본(3373만t), 한국(1966만t)이 뒤를 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이후, 홍콩 재벌 리카싱 계열의 CK허치슨홀딩스는 파나마 운하 인근에서 운영하던 두 개의 항만 터미널을 미국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주도하는 컨소시엄에 매각하기로 합의했다. 민간 기업의 결정이었지만 미·중 갈등 구도 속에서 상징적 의미를 지닌 조치로 해석됐다.
한편, 파나마 중앙정부는 이번 철거가 지방정부 결정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호세 라울 물리노 파나마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아라이한 시장의 결정을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야만적 행위”라고 비판하며 기념물 복원 가능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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