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 중지 6년 中 시노백, 나스닥 상폐 위기 속 ‘창고 털기 배당’ 논란
중국의 대표적 백신제조사 시노백의 베이징 실험실에서 한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 PETER PARKS/AFP via Getty Images/연합 창업자 VS 주주연합 경영권 다툼…2019년부터 거래 중지
팬데믹 특수로 매출 30배 ‘대박’쳤지만 개인투자자 배당은 ‘제로’
올해 주총 앞두고 새 이사회 선임안 제출되자 ‘고액 배당안’ 발표
회사는 주주환원 내세웠지만 “상장 폐지 앞둔 현금 빼먹기” 비판도
중국 백신업체 시노백(커싱생물·科興生物)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세계적으로 알려진 기업이지만, 미국 나스닥에서는 6년째 거래가 중단된 상태다. 올해 4월 1주당 55달러(약 8만 1천원)의 깜짝 현금배당 계획을 발표하며 시장의 주목을 받았으나, 혜택을 누린 주주들이 제한된 이유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기록적인 매출을 올리고도 투자자들이 그 이익을 누리지 못한 데는 단순한 상장폐지 위험 이상의 복잡한 사정이 있다. 이 사태의 중심에는 2개의 이사회가 동시에 존재하며 ‘누가 진짜 회사의 주인인가’를 놓고 7년째 다투고 있는 구조적인 경영권 분쟁이 자리 잡고 있다.
시노백은 지난 19일 공시를 통해 “나스닥으로부터 연례보고서 미제출을 사유로 한 상장폐지 결정 서한을 받았다”며 “감사기관 계약 종료 등으로 연례보고서 제출이 지연됐고, 새 회계법인을 선임하고 연차보고서를 조속히 마무리해 규정 요건을 충족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조치에 관한 청문회 신청을 하지 않을 경우 21일부터 상장폐지 절차에 들어갈 것”이라며 상장폐지 결정에 관해 재심의를 요구하는 청문회를 신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경우 나스닥 규정에 따라 15일간 상장폐지가 유예된다. 현재 청문회 신청 절차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노백의 상장폐지 위기가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7년에도 연례보고서 제출 지연으로 같은 통보를 받은 바 있다. 이번 위기를 넘기더라도 잦은 공시 의무 미이행, 회계 불투명성, 복잡한 지배구조 등 중국 바이오기업의 전형적인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되는 것은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우회 상장서 비롯된 비정상적 출발…결국 시장 퇴출로
중국의 대표적 백신 제조사인 시노백은 2001년 설립됐지만, 설립 2년 만인 2003년 미국 증시에 상장됐다. 정식 기업공개(IPO)가 아닌, 캐나다의 페이퍼컴퍼니였던 게임회사와의 역합병을 통한 우회 상장이었다. 장외거래(OTBCC)로 출발해, 아멕스를 거쳐 나스닥에 진출했다.
그러나 상장 요건을 제대로 검증받지 않았고, 회계와 지배구조에 대한 투명한 심사를 거치지 않았고, 이후에도 공시 불이행과 내부 지배구조 논란이 반복되면서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기업으로 남게 된다. 이 구조적 취약성이 훗날 경영권 분쟁의 불쏘시개가 됐다.
공모가 4달러였던 주가는 한때 0.75달러까지 추락했지만, 2009년 신종플루(H1N1) 유행과 함께 중국 백신 수혜주로 각광받으며 반등했다. 같은 해 4월 1달러대였던 주가는 베이징 시정부의 200만명 분 백신 수주 발표를 기점으로 반년 만에 10.47달러(종가 기준)로 최고점을 찍었다.
하지만 선반영된 주가는 한 달 만에 반 토막 났고 지속적으로 하락해 1달러대로 주저앉았다가 등락을 반복하며 5~6달러에 머물렀다. 경영권 다툼에 따른 법적 분쟁 부작용으로 나스닥에 의해 거래 중지된 마지막 거래일(2019년 2월 22일) 종가는 6.47달러였다.
거래 중지의 시발점은 2016년 시노백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인웨이둥 회장의 비상장 전환 결정이었다. 인웨이둥 회장과 중국계 사모펀드들로 구성된 컨소시엄(경영진 측)은 “회사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며 회사를 비상장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들은 당시 시장가보다 20% 높은 6.18달러 가격을 제시하며 주주 지분 매수를 시도했다.
그러나 여기에 반기를 든 또 다른 세력, 소수주주와 또 다른 사모펀드가 결집한 ‘시노바이오 컨소시엄’(이하 주주연합)이 등장하면서 상황은 복잡해졌다. 이들은 “비상장은 동의하되, 현재 경영진이 계속 회사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며 이사회 교체와 경영권 확보에 나섰다.
두 컨소시엄 간 경영권 다툼은 2018년 정기 주주총회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주주연합은 이사회 교체 안건을 상정했고, 약 33% 이상의 지분을 바탕으로 새 이사회 선임안을 통과시켰다. 주주연합은 이를 발표하며 새로운 이사회가 회사를 운영하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경영진 측은 새 이사회 선임이 무효라며 반박했다. 이들은 앞서 2016년 주주연합의 인수 시도에 맞서 발동한 ‘포이즌 필(낮은 가격의 주식을 발행해 적대적 인수 세력의 지분을 낮추는 경영권 방어 전략)’이 유효하다며 새 이사회는 무효라고 맞섰다.
한 회사에서 두 개의 이사회가 서로 진짜라고 주장하는 보기 드문 사태가 벌어졌다. 이러한 상황은 2025년 1월 영국 최고 법원격인 추밀원에서 새 이사회(주주연합) 측 손을 들어주면서 일단락되기까지 7년간 지속됐다.
지배구조가 극도로 불안정해지자 나스닥은 2019년 2월 22일 시노백 주식을 거래 중지시켰다. “포이즌 필 발동으로 인한 주식 발행 절차가 완료될 때까지”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당초 2주 정도로 예상됐던 거래 중지는 지금까지 6년째 이어지고 있다.
팬데믹으로 돈방석, 경영권 분쟁은 격화
경영권 다툼으로 회사가 둘로 갈라진 상황에서도 시노백은 아이러니하게도 기업 역사상 가장 높은 실적을 올렸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지면서다. 코로나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 내수용 A형 간염 백신 정도를 만드는 중견 바이오기업에 불과했지만, 시노백은 전례 없는 속도로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해 내며 글로벌 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에 중국 공산당의 ‘백신 외교’ 정책으로 힘이 실리면서, 동남아와 남미 등지로 백신을 대규모 수출한 시노백은 단숨에 수십 년치 매출을 뛰어넘는 막대한 현금을 손에 쥐게 됐다.
코로나 이전 약 5억 달러 수준이었던 연매출은 2021년 193억 7,500만 달러(약 28조 5천억원)로 37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화이자와 모더나의 매출이 각각 0.9배, 22배 성장한 것과 비교하면 말 그대로 ‘폭증’이었다. 특히 순익은 70배 이상 껑충 뛰었다.
하지만 일반 주주들은 그 폭발적인 실적을 체감할 수 없었다. 주식거래가 중지돼 있기 때문이었다. 한 투자 전문가는 “거래가 재개되면 주가가 50% 상승하고 추후 기업 가치가 4~5배 이상 뛸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거래 재개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사측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다.
그사이 시장은 또 한 번 반전됐다. 팬데믹이 진정 국면에 접어들면서 시노백 실적도 곤두박질쳤다. 이 회사는 2023년 1억 달러 적자를 냈는데, 정부 구매를 믿고 대규모 투자 설비를 단행한 것이 독이 됐다. 중국 공산당은 방역 승리를 조기 선언하며 백신 접종을 축소했기 때문이다.
실적은 축소됐지만, 회사에는 팬데믹 때 벌어들인 막대한 잉여 현금이 남아 있었다. 이때부터 두 컨소시엄의 싸움은 단순한 경영권 분쟁이 아니라 남아 있는 현금을 누가 배당하고 누가 가져갈 권리가 있는가로 성격이 달라졌다.
올해 초 경영진 측(구 이사회)는 연내 임시 주총 개최를 요구했다. 이사회 선임안을 다시 제출하겠다는 이유였다. 회사 가치를 제대로 올릴 수 있는 적임자는 자신들이라고 주주 설득에 나섰다.
거래중지 6년 만에 ‘주가 9배 ‘ 파격 배당
시노백에서 특별 현금 배당 발표는 이러한 상황에서 나왔다. 올해 4월 시노백의 새 이사회는 코로나19 기간 거둔 수익을 주주들에게 돌려주겠다며 1주당 55달러의 현금 배당 계획을 발표했다. 배당금 지급일은 7월 초로 정했다.
5월에는 경영진 측의 요구를 받아들여 임시 주총을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날짜는 7월 8~9일로 예정했다. 배당금 지급일(7월 초) 직후다. 또한 2차(19달러), 3차(20~50달러)의 추가 배당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1주당 55달러의 배당금은 마지막 거래일 당시 주가(6.47달러)에 비하면 약 9배의 금액이다. 이를 2, 3차 배당금과 합산하면 최대 124달러에 달한다. 총 주식 수 6006만 주 기준, 전체 배당금은 최대 74억 5천만 달러(10조 9천억원)다. 사내 잉여 현금 약 100억 달러의 73% 규모다.
시장의 평가는 엇갈렸다. 비주주 투자자는 “6년간 돈이 묶였어도 55달러를 받았다면 텐배거(10배 수익)로 나쁘지 않은 것 아니냐”고 부러움 섞인 반응을 보였다.
반면, 주주들은 보상 계획을 반기면서도 그간의 고통에 비하면 미흡하다는 입장이었다. 미국 시노백 투자자 커뮤니티의 한 주주는 “2014년 4.27달러에 900주를 구매하고는 잊고 지냈다”며 “이제야 주주들이 정당한 몫을 받게 됐지만, 코로나 팬데믹 당시 다른 백신 회사가 난리(주가 급등) 났을 때도 거래 중지였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화가 난다”고 밝혔다.
순수한 주주 환원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중국 상하이의 한 증권 전문 변호사는 “시노백은 코로나 팬데믹 때 막대한 이익을 거둬 2021년에만 사내 보유 현금이 100억 달러에 달했지만 배당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며 “1단계 배당금을 주총 직전에 지급한 것은 단순한 주주 환원보다는 표심 확보용 현금 살포”라고 비판했다.
“우리 없었으면 배당도 없었다”…끝나지 않는 분쟁
새 이사회(주주연합)가 고액 배당 전략으로 나오자, 경영진 측은 이번에는 배당금을 제대로 지급할 적임자는 자신들이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경영진 측 컨소시엄에 참여한 중국계 사모펀드 사이푸(賽富·SAIF) 파트너스는 지난 6월 주주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우리의 개입이 아니었다면, 이사회는 배당을 결정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이사회가 거래 중지로 인한 주주 피해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자신들이 이사회 교체와 임시 주총 개최를 요구하자 그제서야 배당안을 발표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사이푸 파트너스는 또한 더 많은 배당이 가능하다며 새 이사회의 55달러 배당이 오히려 생색내기라는 비판도 곁들였다. 일부 전문가들은 주당 140달러 배당까지 가능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후 7월 열린 시노백 임시 주총 현장은 치열한 공방전이 됐다. 새 이사회와 경영진 측(구 이사회) 사이에서 주총 중단 선언과 재개를 번복하는 ‘이중 주총 사태’가 벌어졌다. 새 이사회는 주총이 연기됐다고 발표했지만, 구 이사회는 주총에서 이사회 교체안이 통과됐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어느 한쪽이 목적을 달성하면 2·3차 배당은 축소되거나 취소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양측 모두 처음부터 주주 환원이 아니라 경영권 확보가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나스닥 상장폐지를 앞두고 막판 ‘창고 털이 배당(清倉式分紅)'”이라는 평가가 유력하다. 이는 중국 경제 기사나 분석 리포트에서 종종 쓰이는 용어다. 중국에서는 기업이 상장폐지를 앞두고 갑자기 대규모 배당을 하거나, 기업의 미래투자를 고려하지 않고 돈잔치 배당을 하는 경우가 흔하다. 경영진이나 대주주가 지분 정리 전 마지막 현금 챙기기 수단으로 동원한다.
실제로 지난 11일 100명 이상의 시노백 소액 주주들은 성명을 내고 “19달러 배당금 지급 계획을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시노백이 내부자와 주요 투자사(사모펀드)에는 19달러 배당금을 지급했지만 우리에게는 지급하지 않았다”며 형평성을 요구했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현재 시노백 주식은 주당 0.1달러에 거래된다. 시가총액은 3810만 달러로 마지막 거래일 대비 94% 쪼그라들었다. 배당에 따른 하락(배당락)과 상장폐지 위기가 겹치며 사실상 회사 가치가 증발했다. 상장유지에 성공하더라도 거래중지 해제까지 거리가 멀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중국 기업들의 지배 구조와 불투명성, 정보 공시 의무 미준수에 대한 우려가 누적돼 왔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2020년 이후 회계 투명성을 확보하지 못한 해외 기업에 대해 상장폐지 또는 거래 제한 조치를 강화해 왔으며, 특히 중국 기업에 대해서는 더욱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
시노백 사태는 단순한 상장폐지 위기를 넘어, 중국 바이오 기업의 구조적 취약성과 주주 권익 보호 문제를 함께 드러낸 사례로 평가된다. 팬데믹 기간 막대한 현금을 벌어들였음에도 투자자들은 정당한 권리를 행사할 기회를 잃었고, 경영진과 대주주는 기업 가치를 높이는 대신 경영권 방어와 내부 권력 다툼에 집중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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