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크타임스

[분석] 경주, 세계 질서 재편의 중심 무대가 되다

2025년 10월 29일 오후 1:56
‘APEC 정상회의’ 개막을 앞두고 21개국의 정상이 천년의 도시인 경주로 속속 모여들고 있다. | 사진=경상북도·경주시‘APEC 정상회의’ 개막을 앞두고 21개국의 정상이 천년의 도시인 경주로 속속 모여들고 있다. | 사진=경상북도·경주시

트럼프의 복귀, 시진핑의 시험, 그리고 한국의 선택

천년의 도시 경주가 다시 세계의 중심으로 향하고 있다.

2025년 가을, ‘APEC 정상회의’ 개막을 앞두고 21개국의 정상이 속속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다. 겉으로는 경제협력의 자리지만, 실상은 세계 질서의 향방을 가늠하는 전환점이자 각국의 전략이 맞부딪힐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하게 얽힌 국제 정세 속에서, 이번 회의는 단순한 외교 행사가 아니라 ‘누가 미래의 질서를 설계할 것인가’를 묻는 자리로 평가된다.

트럼프의 복귀, 시진핑의 불안한 리더십, 그리고 한국의 선택 — 세 축이 맞물리며 경주는 세계 정치의 축소판으로 떠오르고 있다.

트럼프의 귀환 — ‘미국 우선주의’의 새로운 버전

모든 시선은 단연 트럼프에게 향한다. 재집권 이후 처음으로 다자무대에 서는 그는 “미국은 더 이상 공짜 점심을 주지 않는다”는 짧지만 상징적인 메시지를 던질 가능성이 높다. 이 말은 곧 ‘미국 중심 질서의 회귀’를 알리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

트럼프의 외교 노선은 변함이 없다. 그는 자유무역보다 실리를, 다자주의보다 주권을 우선시하며 관세, 생산 체계, 에너지 독립을 세 축으로 한 새로운 경제안보 구상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중(對中) 무역정책은 이번 회의의 핵심 의제로 꼽힌다. 트럼프 행정부는 재집권 직후 반도체와 배터리, 전기차 등 첨단 산업 전반에 고율 관세를 유지하고, 중국의 기술 굴기를 견제하기 위한 수출 통제와 보조금 규제를 강화했다. 그 여파는 이미 글로벌 산업 구조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행보를 단순히 고립주의로만 해석하기는 어렵다. 트럼프가 그리는 세계는 ‘미국이 중심이 되되, 동맹국이 실익을 공유하는 구조’다.

즉, 미국의 리더십을 복원하면서도 각국이 그 틀 안에서 자국의 생존 전략을 세워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미국 주도형 자국주의’가 다시 등장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회의에서 그는 동맹의 재검증을 시사할 가능성이 높다. “안보 우산 아래 있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메시지다. 이러한 발언은 유럽뿐 아니라 아시아의 동맹국들에도 직접적인 압박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복귀는 단순한 회귀가 아니다. 실용주의와 보호무역, 정치적 계산이 결합된 ‘트럼프주의 2.0’의 출발점이다. 그 중심에는 기술 동맹이 있다. 한국, 일본, 호주, 대만이 참여하는 이 협력 축은 트럼프 전략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미국의 이익에 기여하는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를 명확히 구분하겠다는 것이다. 이 원칙이 APEC 무대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면, 경주는 각국이 자국의 경제·안보 전략을 새롭게 점검해야 하는 현실적인 시험대가 될 것이다.

시진핑의 시험대 — 균열과 고립의 경계선에서

트럼프가 복귀를 선언하는 무대라면, 시진핑에게 경주는 시험의 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지금 내외의 복합 위기에 직면해 있다. 경기 둔화와 청년 실업, 외환 유출, 부동산 침체, 군부 숙청이 맞물리며 체제 내부의 피로감이 누적되고 있다.

시진핑은 이번 회의에서 “중국은 여전히 세계의 책임 있는 파트너”임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미국의 반도체 제재와 공급망 통제가 이어지며 기술 자립 선언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생산 거점을 동남아와 인도로 옮기고 있으며, ‘세계의 공장’이라는 타이틀은 이제 ‘성장 둔화의 상징’으로 바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진핑은 국제적으로 ‘협력자’의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굴복하지 않는 강대국’의 체면을 세워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위기 국면을 돌파하기 위해 그는 이번 회의에서 ‘중국식 현대화’를 전면에 내세우며, 서방 중심 질서에 맞서는 대안적 모델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 파트너십을 강조하면서도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내부의 불안정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한다면, 경주 무대는 그에게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중국 내부에서는 ‘신냉전의 장기화’에 대한 피로감이 높아지고 있다. 청년층의 불안, 외자 이탈, 지방정부의 부채 위기 등 구조적 문제가 시진핑의 리더십을 흔들고 있다.

그는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대국’의 이미지를 부각하려 하겠지만, 그 접근이 강경한 자국 중심으로 이어질 경우 오히려 세계와의 단절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외자 이탈과 기술 봉쇄가 맞물리면 중국 경제는 더 큰 위기로 빠질 수 있으며, 이번 회의에서의 메시지는 향후 중국의 외교 전략뿐 아니라 체제의 신뢰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결국 경주는 중국이 ‘위기 속의 국가’로 남을지, 아니면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 방향을 전환할지를 가늠하는 결정적 시험대가 되고 있다.

한국의 위치 — 실리로 세우는 외교의 새 축

주최국으로서 한국은 이번 회의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미·중 사이에서 ‘균형자’로 머물던 시대는 이미 저물고 있다. 이제는 명확한 방향을 정해야 할 때다. 한국 사회 내부에서도 “더 이상 양쪽을 다 잡을 수는 없다”는 현실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그동안 한국은 ‘안미경중(安美經中)’이라는 현실적 외교 공식을 유지하며, 미국과 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병행해 왔다. 그러나 기술 패권 경쟁과 공급망 재편, 그리고 불확실성이 커진 안보 환경 속에서 이 균형은 점점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방미 일정에서 “이제는 과거와 같은 태도를 취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언급하며 외교 기조의 변화를 암시했다. 하지만 국내외 정책의 일관성이 아직 뚜렷하게 자리 잡지 못하면서, 한국의 외교 노선은 여전히 과도기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번 경주 회의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이 어떤 전략적 선택을 할 것인지, 그리고 그 방향이 ‘실리 외교’로 정착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전망이다. 한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구상에 보다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AI·반도체·에너지 전환 등 차세대 산업 분야에서 핵심 파트너로 자리매김하려는 전략적 노력이 요구된다.

이러한 방향은 단순히 미국과의 동맹 강화를 넘어, 산업 구조 전반의 안정성과 기술 자립을 확보하기 위한 실질적 조치가 될 것이다.

동시에 중국과의 경제 협력 관계는 ‘의존 탈피’라는 기조 속에서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이는 결별이 아니라 관계의 재정립이며, 한국이 보다 주도적인 실리 외교를 구축하기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다만 이러한 독립적 외교 노선은 미국과의 전략적 연대를 약화시키는 방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한국은 자유 진영의 일원으로서 미국과의 협력 기반을 강화하면서, 그 안에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또한 한국은 이번 회의를 통해 ‘중견국 네트워크’의 허브로서 외교적 위상을 확대할 수 있다. 아세안과 호주, 캐나다 등 중견국들과의 기술 및 안보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미·중 양강 구도 사이의 새로운 중간지대를 주도할 가능성도 크다. 이는 단순한 외교 연대의 차원을 넘어, 기술과 자원, 안보를 포괄하는 실질적 협력 구조로 발전할 여지를 품고 있다.

문화 외교와 민주적 소프트파워 역시 한국이 가진 또 하나의 강점이다. K-콘텐츠와 민주주의 가치, 그리고 개방적 시민사회가 어우러진 한국의 이미지는 국제사회에서 신뢰와 공감의 기반으로 작용하고 있다. 첨단기술 경쟁력과 문화적 영향력을 결합한 ‘브랜드 국가 외교’는 이번 경주 무대에서 그 실질적 효과를 시험받게 된다.

한국이 실리와 원칙을 균형 있게 조율하며 이 기회를 전략적으로 활용한다면, 경주는 단순한 외교 행사가 아니라 새로운 외교 패러다임의 전환을 상징하는 출발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결국 이번 회의는 한국이 과거의 ‘균형자 외교’에서 벗어나, 명확한 방향성과 실질적 이익을 바탕으로 한 ‘주도적 외교국가’로 도약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무대가 되고 있다.

*이경찬 논설위원은 정치 PR 전문가로, 한국커뮤니케이션에서 정치 홍보를 담당하며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쌓았습니다. 이후 정치 보좌관으로 활동하며 정책과 정치 현장을 깊이 이해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에포크타임스 기자로 오랜 기간 활동하며 언론의 최전선을 경험했습니다. 현재는 미디어파이 대표로서, 정무·언론·홍보 전반에 걸친 통합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이끌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